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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사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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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고군산의 지역 정체성을 주도하는 명소를 대상으로 경관 인식의 논리와 인문경관적 요소를 탐색하는 것이다. 조선 전기까지 인식된 고군산의 지리정보는 배를 감출 곳이 있어 조운선이 순풍을 기다린 다거나, 무덤에서 금은으로 된 그릇이 도굴되었다는 내용에 국한되었다. 1621년 군산도에 고군산진이 설치되어 해방(海防)이 가능해지면서 황금어장으로 몰려든 산업인구가 급격히 증가하게 되었는데, 이는 고군산 지역에 새로운 장소성이 형성되는 계기가 되었다. 고군산도의 발전과 함께 형성된 문화경관의 명소 인식은 『대동지지』, 『호남진지』와 일제시기 『동아일보·도서순례』 등의 자료에 잘 나타나 있었다. 망주봉은 많은 유배인이 고군산도에 들어옴에 따라 충절지사의 지형으로 상징되었고, 선유봉은 무녀도, 삼도와 더불어 선계의 영역에 비의되었다. 이와 더불어 고군산을 둘러친 방파제의 역할을 하는 십이봉은 무산십이봉으로 이름을 바꿔 부름으로써 신선이 사는 이상 장소로 전화되었다. 장자봉은 장자할매 설화의 현장으로 조명되면서 횡경도의 할배바위와 지리적 친연성이 부각된다. 또한 최치원의 사적인 월영봉은 고군산도에서 금도치굴의 경관인식 논리로 발전했는데, 이상을 통해 고군산 지역에는 경물 분포에 따른 다원적 의미구성이 각각의 명소성을 형성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오늘날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문화경관, 문화콘텐츠, 문화재, 문화유산, 현대문화, 전통문화 등 ‘문화(文化)’라는 단어를 매우 빈번하게 사용한다. 그런데 조선시대에 우리 조상들은 ‘文化’라는 단어를 어떤 의미로 사용하였을까? 만약 오늘날과 같은 의미로 ‘文化’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면, 오늘날과 같이 빈번하게 사용하였을까? 이 논문에서는 이러한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 등장하는 ‘文化’ 단어를 조사하고 분석한다. 이 논문에서 참조하는 『조선왕조실록』은 웹사이트에 게시되어 있는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조선왕조실록』이다. 이 『조선왕조실록』은 고종실록·순종실록·순종실록부록을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조선왕조실록』이다. 이 『조선왕조실록』에는 ‘文化’ 단어가 총 261번이나 등장하는데, 이 중에 황해도 지명 ‘文化’가 243번이나 등장하고, 문물과 제도로서의 ‘文化’가 14번 등장하며, 일본의 연호 ‘文化’가 4번 등장한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압도적으로 높은 출현 빈도를 나타내는 지명 ‘文化’는 황해도 문화현을 가리키는 단어였다. 문물과 제도로서의 ‘文化’는 『조선왕조실록』에 단지 14번 등장함으로써 그리 빈번하게 사용하는 단어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하는 문물과 제도로서의 ‘文化’는 ‘어떤 인간 집단이 공유하는 생활양식의 총집합체’로서 0번, ‘공연·전시·음악·예술·문학 활동 등’으로서 2번, ‘발전된 것이나 개화된 것’으로서 12번 등장한다. 그런데 ‘공연·전시·음악·예술·문학 활동’으로서의 ‘文化’는 1921년(순종실록부록 14년)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조선시대에 문물과 제도로서의 ‘文化’는 문명(文明)과 동의어 혹은 유사어로서 ‘발전된 것이나 개화된 것’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본 논문의 목적은 오랫동안 서구인들의 상상력을 자극해왔던 타프로바네에 관한 고대 그리스인들의 기록들을 상세히 검토하는 것이다. 이 글은 우선 타프로바네에 관한 최초의 기록들인 헬레니즘 시대의 세 명의 저자들, 즉 오네시크리토스, 메가스테네스, 그리고 에라토스테네스의 단편들을 살펴보고, 이것들이 제시하는 정보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를 논의한다. 그리고 다음으로 타프로바네에 관한 보다 상세한 정보를 담고 있는 로마 제국 시기의 그리스 문헌들, 즉 『에뤼트라해 주항기』, 스트라본의 『지리학』, 그리고 마지막으로 프톨레마이오스 『지리학』에 나타나는 타프로바네에 대한 기록들을 검토한다. 이 문헌들의 분석을 통해서 본 논문은 타프로바네에 대한 고대 그리스인들의 지리적 지식이 어떻게 생성, 해석, 변화되었는지를 보여주고, 이것을 통해서 고대 지리서의 저자들이 극도로 제한된 정보를 바탕으로 어떻게 지리적 지식을 구성해 내고, 각자의 상이한 관심과 관점을 어떻게 내용에 반영하고 있는지를 밝힘으로써, 고대 동서문명 교류의 한 단면을 구체적으로 제시해보고자 한다.
본 연구는 김사량의 소설 『토성랑』의 일제강점기 도시빈민가 재현 양상을 분석하는데 목적을 둔다. 『토성랑』은 일제강점기 평양에 실재했던 도시빈민가인 토성랑을 장소적 배경으로, 일제강점기 도시빈민들의 삶을 다룬 작품이다. 따라서 『토성랑』은 일제강점기 도시빈민가라는 장소와 그 경관을 재현한 문학지리 텍스트로서 문학지리학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판단된다. 문학 텍스트 분석에 적합하다고 알려진 질적연구 방법론인 van Manen 현상학을 활용하여, 『토성랑』의 텍스트가 도시빈민가 토성랑을 재현하는 양상을 분석하였다. 분석 결과, 『토성랑』의 문학지리적 의미를 해석할 수 있는 3개의 주제를 도출할 수 있었다. 첫째, 토성랑 빈민가는 식민지 조선인이 일제강점기의 부조리한 사회 구조로 인해 도시 빈민으로 몰락하는 장소의 의미를 가진다. 둘째, 토성랑 빈민가는 도시빈민들이 주류 사회로부터 차별받고 배제되는 장소인 동시에, 빈민들 간의 반목과 갈등이 일어나는 장소로도 재현된다. 셋째, 토성랑 빈민가는 일제강점기 도시 빈민들의 불행한 삶과 파국적인 운명을 강요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 같은 연구결과는 일제강점기 문학, 그리고 빈민 문학을 중심으로 문학 작품에 대한 문학지리적 접근과 관련된 의미 있는 논의를 제공한다.
본 논문은 지구가 뜨거워지는 만큼 뜨거운 기대와 관심을 받고 있는 기후사의 현주소를 유럽 소빙하기 연구서들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1990년대 이후 기후사가 관심의 축을 자연적 기후로부터 인간과 사회의 취약성과 적응성으로 뚜렷이 옮겨오게 된 것은 지질연대 개념을 넘어서 하나의 문화적 개념으로 거듭난 인류세의 직관적인 호소력과 영향력 하에서였다. 인류세의 향방이 이미 지질적 힘이 되어버린 인류의 선택과 행동에 전적으로 달려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이러한 기후사 축의 변화는 매우 중요한 전환이다. 기후변화의 미래를 준비하는 데 중요한 것은 기후과학적 지식이 아니라 기후변화에 창의적으로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되거나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인간의 사회문화적 요인들에 대한 깊은 이해이다. 본 논문은 가장 화제가 된 3권의 소빙기 연구서를 통해 이러한 기후사 서술의 축의 전환을 살펴보면서, 기후사의 서술적 진화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어왔던 기후결정론적 시각을 극복하고 기후와 인간의 역동적 되먹임 관계를 서술하는 다양한 방식을 논의해본다.
일본제국은 식민지 조선에 근대적 풍경관과 국립공원 시스템을 도입함으로써 금강산을 ‘국가풍경’으로 전유했다. 본 논문은 일본제국이 내지(內地)와 외지(外地)의 경관을 선택적으로 국립공원으로 지정하는 과정에서 금강산의 ‘국가풍경’ 생산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고찰한다. 구체적으로 일본의 ‘국가풍경’ 담론이 국립공원 풍경 선택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보고, 금강산을 국립공원 풍경으로 선정하는 논의에 초점을 맞췄다. 일본의 국가풍경에 대한 담론에서 다무라 쓰요시(1890-1979)와 같은 전문가들은 금강산이 식민지 조선의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될만한 충분한 풍경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조선총독부 산림부는 1930년과 1931년에 금강산국립공원 지정을 위한 일련의 예비적 행정 절차를 취했다. 이 과정에서 조선총독부는 중앙집중화(centralization)와 영역화(territorialization)를 통해 일본제국의 ‘국가풍경’으로서 틀짓기(framing)하였다. 이러한 국가/제국-자연의 구성 과정은 일본제국의 영토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사할린-대만-조선-만주’의 풍경 속에 금강산을 위치시키는, 즉 일본제국-금강산의 생산 과정이다.
본 연구의 목적은 장항선이 개통된 일제강점기부터 서해선과 연결중인 현재까지의 장항선의 기능 및 연선 지역의 변화를 주요 시기별로 탐색하는 것이다. 시기 구분은 장항선이 개통된 일제강점기, 그리고 광복 이후부터 수도권광역전철의 개통 및 군산선이 장항선에 통합되기 이전과 이후 시기이며, 각 시기별 장항선 철도의 인프라적 상황, 화물 및 여객 운송의 특징, 지역 변화와의 관련성을 분석했다. 연구 결과 일제강점기의 장항선은 간선철도의 배양선 역할을 담당한 사설철도로 건설·운영되었는데, 개통 초기 미곡 반출 등 화물 수송 기능이 우세했으나 점차 여객 수송 기능이 강화되었다. 광복 이후에는 국유철도로 통합되었으나 대도시나 큰 산업단지를 끼고 있지 않았던 장항선은 수도권 광역전철화 및 군산선 통합 전까지 단선비전철 상태가 지속되었고 이로 인해 수송 기능이 도로교통에 밀리게 되었다. 2008년부터 천안 및 아산 구간이 수도권 광역전철 노선에 포함되면서 장항선의 전철화·복선화가 본격화되었고 같은 해 군산선이 장항선에 통합되면서 장항선의 종점이 기존 장항에서 익산까지 연장되었다. 장항선은 조만간 서해선과의 연결을 통해 서해안 산업회랑에 대한 화물 수송 기능이 강화될 것으로 예상되며, 중부권 동서횡단 철도의 건설 계획이 실현된다면 취약했던 동서축 철도망이 보완되고 지역균형발전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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