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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 불교학 (2,236건)

여말선초 幻庵混脩 문도의 활동과 千峯卍雨
여말선초 幻庵混脩 문도의 활동과 千峯卍雨
강호선(Kang, Ho sun)
보조사상연구원 / 보조사상 제62권 제1호 / 2022 / 143-177 (35 pages)
인문학>불교학 / KDC : 종교 > 불교 / KCI : 인문학 > 불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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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에서는 여말선초 나옹혜근-환암혼수로 이어지는 법통을 살펴보았다. 여말선초 나옹혜근의 대표적인 제자로 무학자초가 주목받았으나 자초가 전면에 부상하는 것은 환암혼수 입적 이후이다. 자초가 조선건국 직후 왕사에 임명되고, 태조의 각별한 귀의를 받았으며, 세종대 유명한 고승인 득통기화가 자초에게서 수학했기 때문에 조선초 불교계는 자초와 그 문도들이 주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환암혼수 문도들의 활동도 함께 살펴야 조선초 불교 이해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다. 혼수의 경우 현재 그 법맥이 어떻게 계승되는지 거의 확인되지 않지만, 이번 논문에서는 15세기 전반까지의 계보를 재구성할 수 있었다. 특히 「靑龍寺普覺國師圓融塔碑」 비음의 문도 중 상총, 상부, 익륜 등의 활동을 보다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혼수의 대표적인 제자인 삼여소안과 천봉만우도 확인하였다. 조선초 혜근의 법통은 자초에서 기화로 이어지는 계열과 혼수에서 소안 및 만우로 이어지는 계통이 있었던 것인데, 후자는 15세기 전반기 이후의 활동상은 보이지 않는다. 그중 만우는 적어도 계유정난 이전까지는 왕실을 중심으로 상당히 활발한 활동을 하고, 주요 사찰의 주지를 역임하여 불교교단 이끌던 인물이었다. 특히 세종대의 활동과 안평대군과의 관계가 주목된다. 산견되는 만우와 관련된 자료를 모아 정리하는 가운데 역사학이나 불교사학계에서는 주목하지 않았던 안견의 「몽유도원도」와 「비해당소상팔경시첩」이 만년의 만우의 활동과 안평대군과의 각별한 관계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임도 밝혔다.
[서평] 다니엘 베들링거 (편저), 『디지털 인문학과 불교』
[서평] 다니엘 베들링거 (편저), 『디지털 인문학과 불교』
함형석(Ham, Hyoung Seok)
불교학연구회 / 불교학연구 제70권 제1호 / 2022 / 135-146 (12 pages)
인문학>불교학 / KDC : 종교 > 불교 / KCI : 인문학 > 불교학
금하광덕의 도심포교와 보현행원
금하광덕의 도심포교와 보현행원
최원섭(Choe, Won-sup)
보조사상연구원 / 보조사상 제62권 제1호 / 2022 / 11-37 (27 pages)
인문학>불교학 / KDC : 종교 > 불교 / KCI : 인문학 > 불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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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하광덕(1927-1999)은 현대 한국불교의 도심포교를 대표하는 인물임에도 ‘전법사’라는 호칭이 아니라 ‘선사’로서 평가한다. 금하광덕을 ‘선사’이면서 ‘전법사’로 이해하는 시선은 진실과 방편의 틀로 설명할 수 있다. 금하광덕의 ‘선사’의 측면은 한국불교의 전통에 부합하는 금하광덕의 진실에 해당하고, ‘전법사’의 측면은 시대 상황에 맞는 면모를 발휘한 금하광덕의 방편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방편이 바로 진실상이라는 시각을 얹으면 금하광덕의 전법사의 면모가 바로 선사의 면모인 셈이 된다. 이 글은 이런 시각에서 금하광덕을 대표하는 도심포교의 면모를 설명하였다. 금하광덕의 도심포교의 이념과 실천원리를 설명하면서 반야바라밀과 보현행원을 양날개처럼 이야기하지만 사실 금하광덕은 항상 보현행을 거론하였음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전법사의 면모가 바로 선사의 면모가 될 수 있게 하는 매개가 금하광덕의 보현행원에 있음을 제시하였다.
산스크리트 조어(造語) 접사 ‘-tva, -tā’에 대한 P. 5.1.119의 ‘bhāva’ 이해
산스크리트 조어(造語) 접사 ‘-tva, -tā’에 대한 P. 5.1.119의 ‘bhāva’ 이해
김현덕(KIM, Hyeondeog)
불교학연구회 / 불교학연구 제70권 제1호 / 2022 / 59-80 (22 pages)
인문학>불교학 / KDC : 종교 > 불교 / KCI : 인문학 > 불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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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그 동안 당연하여 받아들여 왔던 번역어에 대한 시각이 산스크리트 문법 규칙의 적용을 통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를 살펴보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특히 ‘śūnya-tā, brahma-tvam(-tā), buddha-tvam(-tā), deva-tvam(-tā)’ 등의 단어들에 사용된 2차 파생접사(taddhita) ‘-tva, -tā’에 관해 살펴보았다. 우리는 이들 접사가 추상명사를 만든다는 점에서, 당연히 ‘~성(性)’ 또는 ‘~라는 성질(상태)’로 번역하곤 하였다. 물론 이러한 이해가 전혀 틀린 것은 아니지만 우리들 자신이 가지는 ‘~성’이라는 언어감각으로 이들 접사의 파생어를 이해하려고 하는 태도를 견지했을 때 과연 본래의(또는 바른) 이해가 가능할지는 의심스럽다. 무릇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옮기는 일이나 이해하는 일은 만만하지가 않다. 문법체계가 우리의 그것과는 크게 다른 산스크리트와 같은 고대어와 한역어의 경우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빠니니는 문법규칙 P. 5.1.119(tasya bhāvas tvatalau)에서 ‘-tva, -tā’접사의 도입을 규정하고 있다. 이에 본문에서는 이들 접사의 적용 조건인 ‘bhāva’의 의미를 우선 고찰하였다. 이를 통해 일반적으로 ‘완성된 행위’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는 이 단어가, 본 논문이 고찰하는 문맥에서는 말의 사용 근거(pravṛtti-nimitta)로서 기능함을 명시하였다. 또한 인도 문법학 전통에 따르면, 실체에 대한 말의 사용 근거는 셋(jāti, guṇa, kriyā) 또는 넷(jāti, guṇa, kriyā, yadṛcchā)으로 분류된다. 결국 ‘-tva, -tā’의 사용, 즉 어기(語基, prakṛti)에의 적용과 관련해서는 이러한 다양한 적용 근거가 고려되어야 함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적용 근거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가(artha)’라는 측면보다는 ‘무엇을 이유(nimitta)로 그러한 말이 사용되었는가’에 초점을 맞춘 것임을 주장한다.
인공지능 ‘자유의지’ 논의에 대한 선결조건
인공지능 ‘자유의지’ 논의에 대한 선결조건
김성옥(KIM, Seong Ock);이관수(LEE, Kwan Soo)
불교학연구회 / 불교학연구 제70권 제1호 / 2022 / 109-134 (26 pages)
인문학>불교학 / KDC : 종교 > 불교 / KCI : 인문학 > 불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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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2015년 알렉스 가랜드 감독의 영화 <엑스마키나(Ex Machina)>를 통해, 인공지능의 자유의지 문제를 바라볼 때 놓치지 말아야 할 조건들을 다룬다. 우선 자유의지가 자아에서 비롯한다고 믿는 관념에 대하여, 불교의 무아설이 지니는 의미를 살펴보았다. 이에 대해 과학적으로 확인된 사실과 기술적인 외형 구현이 가능한 것을 중심으로 이 영화를 바라보는 불교와 과학의 접점을 논의하였다. 불교의 무아설은 아트만과 같은 행위자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행위자 없는 행위’를 해명하기 위해서는 ‘유용한 허구로서의 자아’라는 개념이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나’라고 하는 통합된 내적 표상이나 일반적 사고 능력은 그 유용성의 다른 표현이 될 것이다. 에이바는 인간이 활동하는 공간에서 인간처럼 움직이는 데 전혀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에이바의 자기 모델은 사람의 자기 모델과 동일한 수준의 유용성을 확보했다고 볼 수 있다. 인공지능이 인간과 다르게 구성되었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을 지닐 수 없다고 논증하는 것은 더이상 가능하지 않은 듯하다. 유정물과 무정물을 가르는 경계가 모호해지고, 그 층위가 보다 촘촘해졌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양자의 인지적 구조에는 명백한 차이점이 있다. 현재 인공지능 기술은 감정표현을 판독・분석・재현할 수 있지만, 감정을 경험하고 자기를 인식하는 인공지능은 현실적・이론적으로 구현할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인공지능의 자유의지 논의에 있어서 아트만적 자아의 관념을 전제할 필요는 없지만, 감정의 경험이나 의식의 발생은 자유의지 문제를 탐구하기에 앞서 반드시 살펴보아야 할 조건들인 셈이다.
지눌에게 경절문이 성적등지문보다 우위인가?
지눌에게 경절문이 성적등지문보다 우위인가?
이길산(Lee, Gil san)
보조사상연구원 / 보조사상 제62권 제1호 / 2022 / 115-142 (28 pages)
인문학>불교학 / KDC : 종교 > 불교 / KCI : 인문학 > 불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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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에서는 지눌에게 있어 경절문이 성적등지문보다 우위라는 일각의 통념에 반대한다. 지눌 입적 후 김군수가 『조계산수선사불일보조국사비명』에서 제시한 성적등지문·원돈신해문·경절문의 3문의 구도가 보조사상의 전체 구도를 가장 잘 드러낸다는 점 자체에 대해서는 연구자 사이에 대체로 합의가 모아져 왔으나 이 구도 자체를 의심하는 소수의견들 또한 있었다. 이에 특히 3문 전체나 일부를 아예 거부하는 입장들을 살펴본 결과, 그들의 논의에 내재적·외재적 결함이 많음을 확인하였다. 이어 3문의 구도가 가장 잘 나타난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 자체를 본격적인 분석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연구들 중에서 여전히 성적등지문보다 경절문이 우월하다고 보는 경우를 소개한 다음, 그들이 염두에 두었을 법한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의 관련 구절을 재검토하여 그들의 독해가 공유하는 문제점을 보였다. 이어 경절문의 우위 주장과 관련해 추가로 제출될 수 있는 논리를 구성해보고 다시 그에 대한 재반론을 실시하였다.
조선후기 금강산 일대의 비구니 암자와 비구니의 활동
조선후기 금강산 일대의 비구니 암자와 비구니의 활동
탁효정(TAK, Hyojeong)
불교학연구회 / 불교학연구 제70권 제1호 / 2022 / 25-58 (34 pages)
인문학>불교학 / KDC : 종교 > 불교 / KCI : 인문학 > 불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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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에서는 『유점사본말사지』에 기재된 비구니 명단을 토대로 조선후기 금강산 일대의 비구니의 거주 암자와 비구니 활동의 특징을 고찰하였다. 『유점사본말사지』에는 총 156건의 조선시대 비구니 명단이 기재돼 있는데, 중복되는 법명을 정리하면 총 136명이다. 조선전기에 활동한 비구니는 확인되지 않으며, 17세기에 활동한 비구니가 1명, 18세기는 6명, 19세기는 52명, 20세기는 77명으로 조사되었다. 『유점사본말사지』에 나타난 비구니 암자와 비구니 활동의 특징은 다섯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유점사 본말사와 부속암자 가운데 비구니 거주 암자는 총 9개로, 대부분 19~20세기 초 비구니의 주도로 건립되었다. 둘째, 비구니는 비구니 암자뿐만 아니라 소속사찰과 주요 수행처의 화주 또는 시주자로 역할을 하였다. 셋째, 비구니 암자의 건물 구성은 요사를 중심으로 배치되었고, 요사에서는 주거와 수행이 함께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넷째, 비구니 암자의 주지는 소속사찰의 주지가 겸임했다. 다섯째, 비구와 비구니는 한 사찰에 소속돼 있을 경우에도 별개의 문파로 구별되었다. 본고에서는 이 같은 내용을 통해 금강산에 여성출가자들의 수행문화가 이어져왔고, 비구니들이 금강산 사찰 운영의 한 축을 담당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현공 윤주일의『불교입교문답』에 나타난 사상 연구
현공 윤주일의『불교입교문답』에 나타난 사상 연구
이병욱(Lee Byung Wook)
보조사상연구원 / 보조사상 제62권 제1호 / 2022 / 75-111 (37 pages)
인문학>불교학 / KDC : 종교 > 불교 / KCI : 인문학 > 불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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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현공 윤주일의 『불교입교문답』의 내용을 4가지 사항으로 검토한다. 2장에서는 현공이 유, 불, 도 삼교의 동일점과 차이점을 주장했지만, 그렇지만 조선조 500년 동안 유교의 역할에 대해서 비판적이었다는 점을 밝힌다. 3장에서는 현공이 자력신앙과 타력신앙의 관점에서 불교를 바라본 내용을 소개한다. 불교는 자력신앙과 타력신앙의 요소를 겸비하고 있고, 또 타력신앙의 관점에서도 불교의 특색이 있다. 4장에서는 현공이 불교의 사회적 기능에 대한 비판적 견해에 대해 반론하고, ‘생산적 불교’와 ‘대중불교’를 계승한 점을 검토한다. 불교가 경제발전에 방해가 된다는 주장에 대해 반론하고, 또 불교가 염세의 종교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반론한다. 그리고 현공은 일제강점기 불교개혁론에서 주장한 ‘생산적 불교’와 ‘대중불교’를 수용하고, 그것을 조금 더 진전된 형태로 바꾼다. 5장에서는 현공이 ‘일상생활이 곧 수행’이라는 관점을 주장한 것을 알아본다. 이는 해탈과 열반이 출세간의 영역에 있는 것이 아니고, 일상생활 속에서 증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공은 세속적인 사업을 한다고 해도, 남을 구제하겠다는 정신으로 한다면 그것은 불교의 수행에 포함된다고 한다. 그리고 현공은 ‘일상생활이 곧 수행’이라는 관점을 구체화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이 방법으로 자신의 수행경지가 어느 정도 향상되었는지 점검하는 내용도 제시하고 있다.
[서평] 그레고리 쇼펜, 오다니 노부치요 일본어역, 임은정 한국어역. 2021. 『대승불교 흥기시대 인도의 사원 생활 『근본설일체유부율』을 중심으로』, 서울: 운주사
[서평] 그레고리 쇼펜, 오다니 노부치요 일본어역, 임은정 한국어역. 2021. 『대승불교 흥기시대 인도의 사원 생활 『근본설일체유부율』을 중심으로』, 서울: 운주사
이영진(Youngjin LEE)
불교학연구회 / 불교학연구 제70권 제1호 / 2022 / 147-153 (7 pages)
인문학>불교학 / KDC : 종교 > 불교 / KCI : 인문학 > 불교학
초기불교 무아설의 유형에 대한 검토와 분류 Ⅱ
초기불교 무아설의 유형에 대한 검토와 분류 Ⅱ
임승택(LIM, Seung-taek)
불교학연구회 / 불교학연구 제70권 제1호 / 2022 / 1-24 (24 pages)
인문학>불교학 / KDC : 종교 > 불교 / KCI : 인문학 > 불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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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초기불교 당시 유통된 무아설의 유형을 3가지 부류의 12가지로 파악한다. 선행 논문인 『초기불교 무아설의 유형에 대한 검토와 분류 I』에서는 이들 중 첫 두 부류에 속한 6가지 유형에 대해 살펴보았고, 본 논문에서는 세 번째 부류로 귀속되는 6가지 유형을 설명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필자의 판단에 따르면 첫 번째 부류의 3가지 무아 유형은 ‘나의 것’ 등을 부정하면서 비아(非我)에 가까운 무아의 의미를 표방한다. 이러한 서술방식에 따르면 무아란 자아에 대한 존재론적 부정이 아니며 다만 경험적 현상들과의 탈동일시(disidentification)를 가리킬 뿐이다. 두 번째 부류에 속한 3가지는 사변적 견해를 비판하면서 무아에 대한 견해나 주장마저도 극복의 대상으로 간주한다. 또한 무아라는 개념에 대한 집착을 경계하면서 어떠한 형태로든 ‘나’라는 생각에 빠지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한편 본 논문에서 집중적으로 다루는 세 번째 부류의 6가지 유형은 형이상학적 무아 담론의 성격을 지닌다. 이들은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방식으로 무아에 대한 사변적 해설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이들 세 번째 부류의 무아 유형은 니까야(Nikāya)에서는 주류적 방식이 아니지만 아비달마구사론(阿毘達磨俱舍論, Abhidharmakośabhāṣya) 등 후대의 문헌들로 내려오면서 그 영향력을 확장시켜 나간 듯하다. 필자는 두 편의 논문으로 구성되는 본 연구를 통해 3가지 부류의 12가지 무아 유형의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한다. 이들은 초기불교 무아설의 일반적 양상을 확인시켜주는 동시에 그 변용이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를 되짚어보게 해준다.
사띠의 분노조절 메커니즘
사띠의 분노조절 메커니즘
박정아(PARK, Junga);임승택(LIM, Seungtaek)
불교학연구회 / 불교학연구 제70권 제1호 / 2022 / 81-107 (27 pages)
인문학>불교학 / KDC : 종교 > 불교 / KCI : 인문학 > 불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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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정신의학에서는 역기능적 분노 표현이 인지 작용의 결과이며, 관리가 힘든 정서로 분류한다. 불교에서는 분노를 주요 번뇌로 취급하고, 수행자가 사띠(sati)로 분노를 조절할 수 있다고 본다. 본 연구에서는 분노의 과정에 사띠가 언제 어떻게 개입될 수 있는가를 확인하는 것이다. 본 연구를 위해 빨리(Palī) 문헌 및 관련 연구를 토대로 분노의 발생 과정을 고찰한다. 그리고 분노의 조절 과정에 대한 논의는 『맛지마 니까야(Majjhima Nikāya)』의 「화살 경(Salla sutta)」을 근거로 한다. 분노는 상응하는 조건이 있을 때,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첫 번째 화살이다. 그러나 이미 일어난 분노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한다면, 두 번째 화살을 맞게 된다. 두 번째 화살은 분노가 아닌 이미 분노에 대한 생각이 주인공이다. 이와 같은 생각에 휘둘리고 함몰되는 것은 분노의 싹을 틔우는 기름진 토양을 만드는 것이다. 분노의 첫 화살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사띠는 분노에 대한 인식을 통제함으로써 이미 일어난 분노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경험하게 하고, 인식의 불건전한 흐름을 막는다. 설령 이러한 불건전한 흐름을 막지 못하고 두 번째 화살을 맞게 되더라도, 인내심을 발휘한 사띠는 분노에 대한 생각들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분노의 씨앗을 뿌리지 않게 한다. 이러한 결과는 이미 일어난 감정 그 자체가 주체일 때, 단지 그것의 힘이 저절로 약해지도록 둘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감정에 대항하는 생각이 주체가 되도록 하여, 그것에 휩쓸릴 것인가를 의미한다. 본 연구를 통해 사띠는 분노를 인식해 나가는 과정 동안 개입된다면, 조절하는 것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분노의 불같은 특성을 고려한다면, 현대인이 이를 실천한다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이들이 실천 가능한 방식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모색이 필요하다. 본 연구는 분노라는 강렬한 감정을 사띠로 조절 가능한가에 대한 도전적 탐구를 남방불교 문헌을 통해 시도하고, 그 가능성을 확인하였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
김달진의 불교학 硏鑽과 譯經 활동
김달진의 불교학 硏鑽과 譯經 활동
김경집(Kim, kyung-jib)
보조사상연구원 / 보조사상 제62권 제1호 / 2022 / 39-73 (35 pages)
인문학>불교학 / KDC : 종교 > 불교 / KCI : 인문학 > 불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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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달진은 시인으로 널리 알려져 오래전부터 문학적 조명이 활발하였다. 그러나 생애를 보면 승려로서 수행생활을 하였고 중앙불전에서 체계적으로 불교학을 배웠다. 광복 후 환속과 함께 교직에 전념한 까닭에 불교계 활동은 활발하지 않았지만 그의 사상은 불교에 뿌리를 두고 있다. 가까운 지인의 죽음에서 시작된 사색이 마침내 불교로 이어지면서 1934년 4월 유점사에서 출가하였다. 용성이 세운 화과원에서 수행하면서 불교에 대한 생각을 성숙시켰다. 1936년 시작된 중앙불전 3년은 불교학을 비롯해서 동양사상과 문학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힌 시기였다. 문예지와 불교계 잡지에 시를 발표하여 시인으로서의 입지를 높였다. 광복 후 잠시 기자생활을 하면서 불교와 문학 단체에서 활동을 하다가 향리로 돌아가 교직생활에 전념하였다. 1962년 퇴직 후 운허를 만나 20여 년 동안 역경위원으로 활동하였다. 그의 역경은 모든 불자들에게 남침반이 되는 경전 번역과 한국불교에 크게 기여한 고승의 저술 번역으로 나눌 수 있다. 그 외 고전번역에도 심혈을 기우렸다. 고전을 통해 종교적 영혼의 세계와 철학적 예지의 영역에 교섭하여 자기의 참 얼굴을 만나고, 각계각층 인물들의 신비한 음파를 전달하려고 노력한 것이다. 그런 글을 통해 문명의 공해에 시달리며 사회적 정치적 동요 속에 있는 우리에게 삶이 무엇인가를 되돌아보게 하려는 김달진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십지경』 제7지와 8지의 비유를 통해 본 대승(mahāyāna): 오해와 은폐
『십지경』 제7지와 8지의 비유를 통해 본 대승(mahāyāna): 오해와 은폐
이영진(Lee, Young Jin)
한국불교연구원 / 불교연구 제56권 제1호 / 2022 / 9-40 (32 pages)
인문학>불교학 / KDC : 종교 > 불교 / KCI : 인문학 > 불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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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십지경』 제7지와 8지에 나타난 다양한 비유를 통해 대승(mahāyāna)이라는 용어를 고찰한 ‘문헌학적’ 논문이다. 이 논문은 한편으로는 텍스트 스스로 소리내게 하여 대승에 관한 오해를 드러내게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텍스트의 변천과정상에서 은폐된 요소를 찾아내어 그 의도를 추리한다는 의미에서 ‘문헌학적’ 작업이다. 결론을 언급하자면, 적어도 『십지경』의 맥락에서는 ‘자리(自利)만을 추구하는 소승(小乘)에 비해 대승은 수많은 중생을 태워 미혹의 세계로부터 깨달음의 세계로 나아가는 이타(利他)가 강조된다’는 인식은 섣부른 오해이다. 『십지경』에서 대승은 성문승, 벽지불승, 바라밀승, 보살승과 함께 각종 ‘탈 것’으로 비유되지만, 그 본질은 수행도(mārga)이다. 대승과 나머지 탈 것의 차이는 수행도의 질적 차이이지 승객(≒중생)의 유무와 규모에 관해서는 직접적인 언급도 간접적인 암시도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십지경』에서 삼승(三乘)은 보살에 귀속된 ‘보살행’ 혹은 불세존에 귀속된 ‘대승’이 성문승과 벽지불승에 덧붙여진 형태로, 성문승·벽지불승·보살승이라는 전형이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보살승은 제7지까지의 보살이 타는 수단(=수행도)인 바라밀승과 비교되어 제8지 이상의 보살이 지니는 ‘완전한’ 수행도로 묘사되고 있다. 더욱이 다양한 자료를 비교하여 검토했을 때, 적어도 성문승과 대승은 ‘성문들의 지혜’와 ‘위대한 [자의] 지혜’를 의미하거나 바꾸어 쓸 수 있는 용어로 보인다. 제8지의 비유에서는 ‘mahājñānabodhisattvacaryāsāgaras’(위대한 [자의] 지혜를 갖춘 바다와 같은 보살행)에서 ‘jñāna’가 빠져나간 ‘mahābodhisattvacaryāsāgaras’(바다와 같은 대(大)보살행)이라는 복합어가 나타난다. 이는 붓다의 깨달음[菩提]을 오롯이 추구한다는 자리(自利)에 중심을 둔 ‘mahājñāna’(위대한 [자의] 지혜)를 은폐함을 통해 보살은 그 추구의 도상에서도 중생구제를 해야 한다는 이타적 측면으로 무게중심을 이동하고자 하는 의도 혹은 흐름아래서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추정하였다. 그리고 그 시기는 본래 ‘mahājñāna’로 바꾸어 이해할 수 있는 ‘mahāyāna’가 그 의미를 상실하고 커다란 탈 것 으로 고정화된 시기(『십지경론』의 제작 시기 혹은 그 직후인 5세기 무렵?)에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측하였다.
조선 건국초 무학의 興法과 奠都
조선 건국초 무학의 興法과 奠都
황인규(Hwang, In Gyu)
한국불교연구원 / 불교연구 제56권 제1호 / 2022 / 105-134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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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태종과 세종대 불교 탄압시책 이전인 조선 건국초 왕사 무학의 興法과 奠都에 대하여 살펴본 것이다. 무학은 이성계의 탄신일에 왕사로 책봉되어 그의 스승 지공이 터를 잡고 스승 나옹과 함께 흥법하고자 했던 양주 회암사에 머물렀다. 무학은 회암사에서 태조의 권유에 따라 계룡산의 지세를 살피는데 동행하였으나 “능히 알 수 없다.”고 하여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하고 회암사로 돌아왔다. 무학은 그 후 1년여 동안 고려의 국도였던 개성에 머물면서 고려말 숭유억불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던 연복사의 탑을 낙성하였을 뿐만 아니라 고려 태조 왕건이 희사해 지은 개성 광명사에서 불사를 주관하는 등 흥법을 펼쳤다. 이는 후에 이성계로 하여금 흥덕사를 한양에 창건하게 하였다고 생각되며, 흥덕사는 교종의 도회소가 되기에 이른다. 그런 후 양주 회암사로 가서 스승 지공과 나옹의 탑명을 새기고 불교계의 조파를 새롭게 확정하여 『불조종파지도』를 편찬하였다. 이렇듯 무학은 나옹을 중심으로 하는 법계를 정립하여 불교계의 재편을 꾀하였다고 생각된다. 그 후 국도 후보 터가 제기되었지만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후보지인 고려의 남경 터나 그 일대인 무악과 한양의 지세를 살피는데 참여하였다. 무악의 지세를 살필 때 무학의 의견은 알려진 바 없으나 남경의 터에서는 “도읍을 정할 만하다.”고 하면서도 신료들의 의견을 따라 결정하라고 하였다. 비문에 의하면 이성계가 무학에게 “세상 사람들의 터 잡는 것이 도사의 눈만 하겠는가.”라고 하였으며, 무학은 계룡산과 한양 등 국도 후보지의 지세를 살필 때 이성계와 함께 하였다. 이렇듯 무학은 한양을 국도를 선정하는데 적지 않은 기여를 하였음을 알 수 있다.
『법원주림(法苑珠林)』 권제6(卷第六) 육도편(六道篇) 귀신부(鬼神部)의 구성과 특징
『법원주림(法苑珠林)』 권제6(卷第六) 육도편(六道篇) 귀신부(鬼神部)의 구성과 특징
손진(Son, Jin)
한국불교연구원 / 불교연구 제56권 제1호 / 2022 / 73-103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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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당대(唐代)에 편찬된 중국의 대표적인 불교유서인 『법원주림(法苑珠林)』 권6의 육도편(六道篇) 제4 귀신부(鬼神部)의 편찬 구조를 분석하였다. 이를 통하여 귀신부 마지막 부분에 있는 감응연(感應緣) 배열의 의도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육도편에는 ‘육도(六道)’에 당연히 있어야 할 ‘아귀부(餓鬼部)’가 아니라 그 대신에 귀신부를 두고 있다. 즉, 중국에는 불교가 전래되기 이전부터 독자적인 귀(鬼)와 명계(冥界)에 관한 관념과 문화가 오래 동안 축적되어 왔기 때문에 그러한 전통적 관념과 문화를 무시하고 불교적 개념만을 바탕으로 한 아귀부(餓鬼部)를 편찬하는 것은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귀신이라는 상위 개념 속에 육도 중의 아귀를 넣고, 불교 이전부터의 전통적인 명계관과 불교적 명계관 양쪽을 포괄하는 ‘귀신부’를 세운 것으로 보인다. 귀신부 감응연은 우선 아귀와 명관(冥官)이라는 두 종류의 귀신이 연속하여 등장하는 「송 사마문선(宋司馬文宣)」 설화로 시작된다. 이어서 조령(祖靈)으로서의 귀신이 사람에게 명계를 보여주면서 불교에 귀의할 것을 말하는 「송 왕호(宋王胡)」 이야기를 배치하였다. 다음으로 그 두 이야기의 주제를 반복하면서 불교에 의한 구제를 더욱 강조한 「송 이단(宋李旦)」 설화와 마찬가지로 시작 부분의 두 이야기의 주제를 역사상 인물의 설화로 반복한 「영양 정선지(滎陽鄭鮮之)」를 배치하여 불교 설화적 의의를 좀 더 명확히 하였다. 그리고 전통적인 명계관과 불교적 명계관의 융합을 통하여 새로운 귀신의 형상을 그려낸 「당 목인천(唐眭仁蒨)」으로 『법원주림(法苑珠林)』 권6 육도편 제4 귀신부 감응연(感應緣)의 불교설화 부분을 정리하였다.
유식학파의 실재ㆍ형상ㆍ존재에 관한 진리론적 논증
유식학파의 실재ㆍ형상ㆍ존재에 관한 진리론적 논증
박기열(Park, Ki Yeal)
한국불교연구원 / 불교연구 제56권 제1호 / 2022 / 41-72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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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 실재란 개별적 존재로서 독자상(=자상)을 본질로 하는 것이다. 존재란 개념적 존재로서 일반상(=공상)을 본질로 하는 것이다. 유가행파는 이 두 가지 모두가 형상에 의해서 인식된다고 주장한다. 본고는 사제수습에 있어 형상을 논증하여 유식학파에 있어 실재, 형상,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유가행파(=유식학파)의 형상(ākāra)은 사제현관에서는 일반적으로 현장의 한역, 行相으로 통용된다. 제2장에서는 『대비바사론』, 『구사론』, 『구사론소』에서의 설일체유부와 세친의 행상에 관한 견해를 고찰한다. 제3장에서는 안혜의 『중변분별론석소』에 나타난 유가행파의 심·심소상응설을 검증한다. 이것은 유가행파는 설일체유부와는 다르게 하나의 심과 다수의 심소가 한 찰나에 일어날 경우 그 숫자만큼의 행상을 가진다는 것을 검증하기 위함이다. 『해심밀경』에서는 유식소현을 비유한 영상설에서 ‘영상’을 행상의 관점에서 분석한다. 제4장에서는 안혜의 『유식삼십송석론』 제27-28게의 가행위와 통달위 수습에서의 행상을 고찰한다. 가행위에서는 행상은 유식을 소행으로 하는 능행이다. 이 능행에 의해서 유식이라는 소행이 이해(파악)되기에 행상을 유행상이라고도 한다. 따라서 가행위의 수행자는 소행과 능행으로서의 소취와 능취라는 二相性에 의해서 유식이 지각된 것처럼 생각한다. 통달위에서는 소행의 비존재에 의해서 능행이 비존재가 되기에 소취도 능취도 없는 상태, 즉 無相에 들게 된다. 따라서 가행위에서는 진리(=사제)를 행상의 二相性에 의해서 직증을 반복해야 한다. 이것은 두 가지 행상에 의지하여 유식을 관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가행위의 행상은 삼성설에 의해서 분류가 가능하다. 유식은 원성실, 행상은 의타기이다. 행상이 의타기라는 것은 능행과 소행에 의지하여 유행상(=소행에 대한 이해)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나아가 행상(ākāra)의 원인은 변계소집으로서 당연히 아라야식으로부터 소환된(ā-√kṛ) 것이다.
원효의 화쟁과 양자간 협상
원효의 화쟁과 양자간 협상
김영일(Kim, Yeong Il)
한국불교연구원 / 불교연구 제56권 제1호 / 2022 / 135-165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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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의 핵심사상이라고 할 수 있는 화쟁은 한국의 대표적인 불교문화유산 중의 하나이다. 본고는 원효가 실제로 제설을 화쟁에 사용하였던 방법론을 활용하여, 현대사회에서 다양한 형태로 보이는 현실적인 갈등을 완화 내지 해소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겪는 현실적인 갈등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본고에서는 ‘양자적 협상’으로 범위를 축소하여 놓고 이에 관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첫째, 원효의 화쟁을 양자간 협상에 적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논의하였다. 이미 학계에서는 이에 관한 논의가 있어서 검토하여보니, 적용가능설이 다수설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점에 대해서, 목적, 내용, 방법이라는 논자 나름대로의 비교기준을 설정하여놓고, 원효의 화쟁과 양자간 협상을 서로 비교하는 작업을 수행하였다. 그 결과 논자는 적용가능설, 그 중에서도 일부적용설을 지지하고 있다. 둘째, 화쟁을 협상에 적용하는데 있어서 고려하여야 할 사항들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우선, 화쟁과 협상은 추구하는 이념이 각각 진리, 상식[정의]으로 다르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하지만 내용에 있어서는 인간의 심성체계의 일종인 이성, 의지, 감성이라는 측면에서 서로 통하는 영역이 존재하였고, 방법에 있어서도 원효의 화쟁방식을 협상방식으로 적용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셋째, 화쟁을 협상에 적용하는 구체적인 상황을 제시해 보았다. 인식의 영역에서는 진리에 부합여부를 선언하는 화쟁방식을 치킨게임과 관련된 간단한 모의사례에 적용해 보았고, 행위의 영역에서는 입장ㆍ의도를 고려하는 화쟁방식을 자기중심주의적인 편견과 관련된 모의사례에 적용해 보았으며, 신뢰의 영역에서는 언어에 집착하지 않는 화쟁방식을 생생함 편견과 관련된 모의사례에 적용해 보았다.
위대한 [자의] 지혜(Mahājñāna)에서 커다란 수레(Mahāyāna)로
위대한 [자의] 지혜(Mahājñāna)에서 커다란 수레(Mahāyāna)로
이영진(LEE, Youngjin)
불교학연구회 / 불교학연구 제69권 제1호 / 2021 / 55-80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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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십지경』 제1지의 열 종류로 이루어진 위대한 맹세[大願 mahāpraṇidhāna] 중 여덟 번째와 열 번째에 나타난 ‘mahājñāna’와 ‘mahāyāna’의 혼동을 다루는 논문이다. 본 논문은 이를 위해서 산스크리트 5종, 티벳역 4종, 한역 7종의 총 16종의 자료를 비교분석하는 방법을 채택하였다. 이 중 특히 번역 연대가 명확히 밝혀진 한역들을 통해 ‘『십지경』에서 대지와 대승의 혼란은 본래 위대한 [자의] 지혜[大智]를 의미했던 용어를 커다란 수레[大乘]로 의도적으로 바꾸고자 했던 『십지경론』 저자로 인해 초래했다’는 작업가설을 세우고 이를 검증하고자 『십지경론』의 주석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제10대원의 주석에서 “위대한 [자의] 지혜를 완성하기 위하여”라는 인용을 “커다란 수레를 완성하기 위하여”로 바꾸어 쓴다는 증거를 토대로, 세친이 대지를 의도적으로 대승으로 변형시켰음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십지경론』 이후의 자료들 특히 산문 리센션 『십지경』의 경우 세친의 영향을 받아 대지와 대승의 혼란이 초래되었다고 가설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이와 더불어 제 8대원을 일으키는 대표 목적이 “대지/대승에 들어가게 하기 위하여”인 『십지경』의 모든 버전들과 달리 세친의 주석이 “보살들과 동일한 의향과 동일한 노력을 갖추기 위하여”로 바뀌는 점, 그리고 제 10대원 역시 무상정등각이 대표 목적으로 부각된다는 점이 『보살지』의 서술과 일치한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를 통해 『십지경론』의 저자 세친은 이러한 『보살지』 등의 초기유가행파의 견해에 입각하여 『십지경』을 주석하였을 것으로 추론하였다. 마지막으로 이 논문은 다르마락샤가 산스크리트 ‘mahājñāna’에 상응하는 용어를 ‘大聖慧’로 번역한다는 사실과 더불어, 세친이 주석에서 ‘mahājñāna’를 ‘*buddhajñāna’로 바꾸어 쓴다는 점에 기반하여, 이 용어가 위대한 지혜 뿐 아니라 위대한 자=붓다의 지혜로도 해석할 수 있음을 증명하였다.
공성과 아이온의 시간
공성과 아이온의 시간
조석효(Jo, Sokhyo)
불교학연구회 / 불교학연구 제69권 제1호 / 2021 / 81-111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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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낭빠와 닝마빠는 각각 깔라짜끄라 딴뜨라와 족첸이라는 딴뜨라 수행을 통해 체득되는 공성을 수뜨라의 연장선 상에서 설명한다. 두 교파는 이러한 체험적 공성의 묘사에서 동일한 용어와 개념을 공유하지만, 수행의 상이한 접근과 단계에 있어 차이가 있다. 가령 공의 묘사인 락/공(樂空)의 경우에, 조낭빠는 궁극적 실재에 대한 초월적 체험, 닝마빠의 경우 공과 현상의 불가분성 설명에 초점이 있다. 이러한 공의 체험과 해석은 수행에서 핵심적인 이슈인 시간과 불가분인데, 그 묘사 역시 비슷하면서 다르다. 양자는 초월과 내재를 동일한 평면에 둠으로써 근원적인 비시성의 차원을 설명한다. 조낭빠의 경우, 점진적 수행을 통한 정화를 통해 일반적인 마음의 미혹이 제거되어 근원적 상태가 드러나는 깨달음의 상태를 궁극적 실재에 대한 체험이라 한다. 이것은 일반적인 시간 차원과는 다른 차원인 본초불 아디붓다(Ādibuddha)의 근원적 시간에 대한 묘사이다. 반면, 닝마빠의 경우, 일체의 개념적인 분별을 부정하는 궁극적인 차원의 비결정성을 강조한다. 족첸에서 일반적인 마음은 본래적 마음과 다르지도 같지도 않으며, 시간을 통한 비시간적 차원의 체험 차원이다. 족첸에서 삼세(三世)를 초월하는 ‘제 4시’인 비시간의 시간은 일반적 시간과 불가분인 본초불 사만타바드라(Samantabhadra)의 시간이다. 시간적 차원은 원래 비시간의 근원적 시간 차원으로 환원되지만, 그 근원적 시간은 불확정적 차원에 있다. 이러한 차이에도, 시간성의 차원과 맞물리는 두 교파의 공성 체험에 있어서, 실재는 일반적인 흐르는 크로노스가 아닌 공의 비시간의 시간 즉 아이온이라는 점, 또한 아이온은 흐르는 시간 내에서 흐르지 않는 동시적 시간으로서 체험적 공성의 평면이라는 점은 양자 모두 동일하다고 보인다.
초기불교 무아설의 유형에 대한 검토와 분류
초기불교 무아설의 유형에 대한 검토와 분류
임승택(Lim, Seungtaek)
불교학연구회 / 불교학연구 제69권 제1호 / 2021 / 1-22 (2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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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아의 의미에 관한 논의는 이미 많은 학자들에 의해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특히 한국불교계에서는 ‘무아윤회’라는 독특한 이론이 크게 유행하였고, 최근에 이르러서는 ‘무아윤회’의 논리에 내재된 문제점이 지속적으로 지적되고 있다. 필자는 ‘무아윤회’에 대한 비판적 입장에서 초기불교 본래의 무아로 되돌아가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였고, 그러한 이유에서 니까야(Nikāya)에서 설해지는 무아의 구체적 양상을 확인하는 작업에 나서게 되었다. 본 연구는 무아(anattan)라는 용어의 격변화 형태에 주목했던 선행 연구를 뒤잇는 것으로, 무아라는 말이 등장하는 구절이나 문장을 검토하면서 무아에 대한 유형별 구분을 시도한다. 여기에는 무아라는 낱말 자체가 등장하지는 않지만 무아설로 귀속시킬 수 있는 구절이나 문장 등도 포함된다. 필자는 초기불교 당시 유통되었던 무아설을 3가지 부류의 11가지 유형으로 세분화할 수 있다고 본다. 본 논문은 지면 관계상 이들 중 첫 두 부류의 6가지 무아 유형에만 논의의 초점을 모은다. 첫 번째 부류의 3가지 무아 유형은 무아의 실제 의미가 ‘동일시의 부정’ 즉 비아(非我)에 가깝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이들 중에는 ‘나의 것’에 대한 부정을 묘사하는 와중에 오히려 ‘나’의 존재를 부각시키는 사례도 나타나며, 바로 그것을 무아의 의미로 형식화하여 해설하는 경우도 확인된다. 한편 두 번째 부류의 3가지 유형은 사변적 견해를 비판하면서 무아에 대한 견해나 주장마저도 극복의 대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또한 언어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어떠한 형태로든 ‘나’라는 생각에 빠지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필자는 이들 6가지 유형들이야말로 초기불교에서 가르친 무아설의 주류(mainstream)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