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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환 목사는 구약 교수, 성서 번역가, 민권 운동가, 그리고 시인으로 다양한 면모를 보여준 인물이다. 이 글은 그의 탄신 100주년을 기념하여 신학적 특징을 다룬다. 문익환의 신학은 일상어 신학과 빈자가 된 신학으로 요약할 수 있다. 특히 일상어란 vernacular를 반영한 것으로 늦봄의 생애 후반기에 완성된 입말로서 학문적 글쓰기 혹은 글말에 대조된다. 이 논문의 방법론은 그가 소개한 번역 이론에 바탕을 둔다. 늦봄은 서구의 전통적인 문법 이론이 성서 번역에 적절하지 않다고 보고 나이다이론을 모델로 삼는다. 일반 문법은 명사, 동사, 형용사, 전치사 등 품사로 범주화하여 설명하지만 번역에는 한계가 있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늦봄은 경험과 인지 차원의 보다 보편적인 범주를 찾아낸다. 곧 추상어, 객체어, 사건어, 관계어 등이다. 문익환은 성서를 연구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고 논문과 글을 남겼다. 그러나 조국은 그를 텍스트에서 콘텍스트 곧 역사의 현장으로 불러냈다. 하지만 그에게 텍스트와 콘텍스트는 분리된 공간이 아니라 자유롭게 넘나드는 하나의 현장이었다. 그가 주장한 대로 ‘텍스트와 콘텍스트는 나와 너가 만나는 현장’이기 때문에 둘 사이의 구분은 있을 수 없었다. 늦봄의 일상어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입말이며, 그의 신학 여정은 타자를 위한 헌신으로 자신이 ‘땅끝 사람’이 되는 삶이자 예언자적 실천이었다.
문익환 목사는 한국 현대사의 재야운동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한국 재야운동의 지도자로 등장하기 이전 그는 신학자이자 목회자로서 조용한 삶을 살았다. 그는 특별히 성서 번역에 지대한 열의를 갖고 있었고, 1968년 이후 성서 공동 번역에 몰두하였다. 그 즈음부터 그는 시인으로서 이름을 알리게 된다. 문익환 목사의 삶이 전환되는 계기는 장준하의 죽음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준하의 죽음 이후 문익환은 1976년 3·1 명동 구국선언을 주도함으로써 재야운동의 지도자로 등장하게 되었고, 1994년 죽음을 맞이하기 전까지 한국의 민주화와 통일을 위한 운동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그 까닭에 문익환 목사의 삶에서 신학자이자 목회자로서의 면모와 재야운동의 지도자로서의 면모는 질적으로 다른 것처럼 인식되어 왔다. 이 글은 신학자이자 목회자로서의 문익환의 삶에 초점을 맞추면서, 그 삶이 재야운동의 지도자로서의 삶을 형성한 밑바탕이었다는 점을 주목한다. 그의 삶의 양 측면은 단절되어 있다기보다는 연속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를 규명하기 위해 이 글은 문익환 목사의 정신 세계를 형성한 계기들을 주목하고 그의 신학사상의 얼개를 그려보고자 한다. 나아가 그의 정신 세계를 형성한 모태인 한국 기독교계에 남긴 유산들을 재평가함으로써 목회자이자 신학자로서 그의 삶의 의의를 재조명한다.
이 논문은 문익환의 통일 사상의 주요 쟁점을 검토하고 그 현재적 의의를 논한다. 문익환의 통일 사상에 대한 기존 연구는 그 역사적 발전 과정을 상세하게 해명했지만, 그 사상 체계에 대한 분석은 많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글은 문익환의 통일 사상을 변혁론, 통일 방법론, 실천론 등으로 나눠 설명했다. 문익환의 통일 사상은 변혁론에서는 민주와 통일의 병행 추진, 통일 방법론에서는 단계적 통일과 국가연합 단계의 도입, 실천론에서는 민이 주도하는 통일 과정을 핵심 내용으로 한다. 이 논문은 한반도가 대전환의 문턱에 서 있는 현 시점에서 문익환의 통일 사상이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첫째, 한반도 대전환, 즉 분단 체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내부의 사회 개혁이, 즉 민주화가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 둘째, 남북 협력을 안정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남북 통합을 위한 방안에 대한 논의와 합의가 필요하다. 셋째, 남북 연합이 진전되면 민이 주도하는 통일 과정이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민관이 협력적 혹은 상호 보완적 관계를 구축하고 민이 주도하는 합법적 남북 교류 공간이 확대되기 때문이다.
이 논문은 인공지능에 의해 효율성과 생산성이 극대화하는 자동화 사회에서 일자리가 감소되고, 양극화가 심화될 때, 하나님 나라의 실현, 즉 회복된 낙원을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지를 논의한다. 본고는 과학기술에 대한 전면적 부정이 아니라 과학 기술의 발전을 기독교 신앙의 오래된 약속, 즉 복락원을 실현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함을 강조한다. 인공지능의 시대에 모든 분야에서 자동화가 진행·심화되면서 인간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양극화가 확대될 때, 노동자들은 경제적 고통과 더불어, 정치 참여의 의지와 기회가 축소되고, 자신과 타인을 물화시키며 인간 존재의 가치를 부정할 위험성이 크다. 인공지능과 자동화가 초래하는 실업과 양극화, 그리고 그에 수반된 인간 가치의 하락을 고려할 때, 본고는 노동에 대한 근원적인 재개념화가 필요하며, 기독교적 개념으로는 실낙원의 저주받은 노동에서 복락원의 창조적 노동으로 전환이 필요하며, 유급 노동만이 유의미한 노동처럼 여겨지는 현 시대에 관심과 돌봄의 무급 노동의 가치와 중요성을 발견하고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노동의 변혁적 이해는 기본 소득의 바탕 위에 정립 가능하다. 기본 소득을 통해서 무급 노동을 주변화시키는 유급 노동 중심의 사회를 관계와 돌봄을 추구하는 무급 노동 중심의 사회로 만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향으로 인공지능의 시대를 대처하면 기독교는 실낙원에서 복락원으로의 귀환이라는 새로운 희망과 변혁적 시야를 사회에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 사회는 위험이 일상화된 위험 사회다. 최첨단 과학 기술 사회인 현대 사회는 위험요소를 태생적으로 내재하고 있으며, 각종 자연 재난과 사회 재난, 환경 재앙이 우리를 불안과 공포에 몰아넣고 있다. 재난은 자연적이고 운명적으로 보이지만 많은 경우 인간의 윤리적 무책임과 사회정책의 잘못에 책임이 있는 인재(人災)다. 우리가 경험하는 각종 재난과 대형사고는 생명 경시풍조, 기업의 탐욕, 무능하고 무책임한 국가, 그리고 사회 구성원의 책임 윤리나 공동체 의식의 결여와 관계되어 있다. 그래서 위험 사회를 극복하고 안전 사회를 이룩하려면 윤리적 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 위험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핵심 가치가 되면서 사회는 새로운 모양으로 변해가기 때문에 이에 대한 기독교의 통찰과 비판이 요청된다. 첫째, 안전 지상주의 사회에서 국가는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제한하고 위협하는 경찰국가나 통제국가로 변질될 위험이 있어서 이에 대한 기독교의 예언자적 비판과 감시가 요청된다. 둘째, 위험 사회에 등장하는 재난자본주의 경제는 재난조차 이윤추구의 기회로 삼으려 한다. 기독교는 재난자본주에 맞서 안전이라는 공적 가치의 사유화를 막고 부유한 계층과 가난한 계층 사이에 존재하는 위험 불평등을 해소하여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데 힘써야 한다. 셋째,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생겨난 보험제도나 복지 국가의 이념은 안전 사회를 형성하는 데 불완전하고 불충분하다. 교회는 디아코니아 섬김 활동을 통해 보험제도나 복지 국가로부터 소외된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안전망을 제공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위험 사회가 추구하는 안전 사회란 하나의 신화로서 실현하기 힘든 테크노피아 환상이다. 기독교는 기술주의와 진보 낙관주의에 대한 신학적 비판력을 길러야 한다.
이 논문은 종교 개혁 500주년에 즈음하여 최근 한국 교회에서 크게 논의되고 있는 개신교의 개혁과 관련한 ‘개신교 적폐’의 양상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그 토대 위에서 한국 교회의 새로운 방향을 교육 목회의 차원에서 제시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이러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본 논문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문제를 성찰하였다. 첫째, 한국 개신교의 적폐 양상은 무엇인가? 둘째, 한국 개신교의 적폐 청산을 위한 교육 목적과 교육 목표는 어떻게 세분화될 수 있는가? 우선 첫 번째 주제와 관련하여 한국 개신교의 적폐는 세 가지로 분석되었다. 그것은 ① 교회의 사유화와 재벌 기업화의 적폐, ② 제국주의적-문화 폭력적 선교 방식의 적폐, ③ 교회 연합 기관의 아노미와 남성-권위주의적 적폐이다. 다음으로 두 번째 주제와 관련하여 본 논문은 교육 목적으로 다섯 가지를 제안하였다. ① 교회의 공공성 회복, ② 만인 사제설의 실현, ③ 작은 교회에게 희망을, ④ 사회적 영성과 이웃 종교와의 평화, 그리고 ⑤ 사회적 약자와 의 연대이다.
본 연구는 최근 한국 교회의 침체와 더불어 증가하고 있는 임지가 없는 목회의 현실을 직시하면서 신학대학 학생들의 진로 교육에 고심하는 소규모 신학대학 커리큘럼의 미래에 합당한 모델을 제시하고자 한다. 지금 한국 교회는 목회자 과잉 공급과 목회자의 자질 부족 문제로 상당한 어려움에 봉착해 있다. 그런데 전반적으로 목회 임지가 부족해지면서 세상 직업을 함께 갖는“이중직 목회자”가 점점 많이 나타나고 있는 현실이다. 한국 교회는 이중직 목회의 필연적 현실성을 두고 찬반 논쟁과 더불어 이중직 목회에 대한 신학적 논의도 함께 진행되고 있다. 이에 사도 바울의 천막 제조업이 이중직의 성경적 근거로 제시되고 있고, 이중직 목회의 신학적 근거로 만인 제사장설, 직업 소명설, Missio Dei(하나님의 선교)가 제시되고 있다. 김승호는 이중 소명을 받은 사역자가 목회직과 세속직을 동시에 수행하는 것이 미래 목회의 한 유형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런 논의를 살펴보면서 이제 한국 교회는 이중직 목회를 위한 목회 모델을 구상할 때가 되었고 이를 뒷받침 할 신학대학의 커리큘럼 개발의 필요성이 반드시 대두된다고 여겨진다. 한국 교회의 현실들로 인해 신학대학에 지원하는 학생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소규모 신학대학의 생존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것은 너무나 분명한 일이다. 그러므로 이제 학생들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의 사역자들을 위해서라도 신학대학이 이중직 목회 모델을 위해 커리큘럼을 개발해서 제시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학생들의 진로 문제를 개인이 능력껏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돌리는 것은 대학의 책임이 너무 무책임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졸업 후의 진로도 확보해 주고, 또 학령 인구 감소에 따른 정원 모집에 고민하고 있는 소규모 신학대학이 현실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 전략도 필요한데 이 생존 전략과 더불어 이중직 목회의 모델을 연구하고 커리큘럼을 개발하여 소규모 신학대학뿐만 아니라 비슷한 규모의 종립대학까지도 적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한국 교회는 지하 경제에 속하며 무법 완전 경쟁 시장에 임하고 있다. 이러한 경제 사회적 환경에서 교회의 기업화와 사유화, 폐쇄적 운영, 분쟁과 분열, 교회의 세습 등의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 현상들은 개인 기업이 아닌 하나님의 교회에서 바람직하지 못한 것들이다. 이 현상들의 근본 원인은 목사들이 목사직을 생계 수단으로 인식하는 것이고, 이에 따라 먼저 결혼하여 자신의 가정부터 이루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명에 대한 깊은 성찰과 함께 초대 사도들과 같은 독신 생활이 요구되고 있다. 이 현상들의 제도적 원인은 목사의 개인 소유가 된 교회가 비민주적으로 운영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가 철저히 교인 중심의 민주 체제를 갖출 필요가 있다. 특히 세습 교회는 북한의 정권 세습과 근본적으로 동일한 것으로 이에 대한 여론을 환기하여 한국 교회에서 완전히 퇴치하는 방안이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필자는 본 연구에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에 나타난 국가론을 고찰하였다. 이를 위해 본 연구는 자료층을 『초판 신국론』(1~3권), 『중판신국론』(4~5권), 『최종판 신국론』(19권) 등 세 가지로 구분하여 통시적으로 접근하였다. 이런 방법론은 종래 국내 및 해외 연구와는 전혀 다른 독자적인 접근법이다. 『초판 신국론』(1~3권)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로마의 역사를 해부하며 로마인들의 야만성을 강도 떼보다 더 사악하게 묘사한다. 『중판 신국론』의 4권은 앗시리아와 로마를 강도 떼로 낙인찍는다. 『중판 신국론』의 5권에서 로마인들의 덕을 칭찬하는 측면도 있지만, 로마인들의 덕성이란 근본적으로 악덕에 불과하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최종판 신국론』 19권에서 정치 질서를 사람이 사람을 지배하는 불의한 평화로 규정한다. 불의한 평화는 인간의 욕망과 갈등이 자기 파멸에 이르지 않도록 조절해 주는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에 필요악이다. 다시 말해, 국가는 필요악이다. 국가를 필요악으로 규정하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국가론은 창세기 1장 26절에 대한 해석을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이 논문은 1920년대 사회주의와 기독교의 관계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일제강점기 사회 현실이라는 외적인 상황 가운데 민족주의에 대응하는 사회주의와 기독교의 내적 논리를 통해 분석하였다. 상호 대립적인 사회주의와 기독교는 1920년대 중반에 민족 공동체의 회복과 독립을 위한 협력과 연대를 추구하는 민족 협동 전선의 맥락에서 민족주의의 매개를 통해 포용적인 입장을 취하였으나, 1920년 후반 이후 민족 운동 세력이 분열하고 사회주의 이념이 교조화되면서 좌우대립이 심화될 때 사회주의의 반기독교 운동과 기독교의 반공주의가 격화되었다. 사회주의에 대한 기독교의 인식과 대응은 신학적 입장과 민족주의 성향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났다.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적 입장은 정통주의와 보수적 신학에 근거하여 기독교 신앙을 변호하고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신학적 비판의 성격을 띠었고, 민족주의와 관련성은 적었다. 사회주의를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입장은 사회복음주의와 기독교 사회주의에 기반하여 사회 개조 운동을 전개하였고, 실력 양성을 통해 민족의 독립과 회복을 추구하는 문화 민족 운동과 연결되었다. 사회주의를 수용하는 입장은 사회주의 이념으로 기독교를 새롭게 이해하고 기독교의 가치를 사회주의를 통해 실현하고자 하였으며, 민중이 주체가 되는 급진적 민족운동과 연결되었다. 이로 보건대, 1920년대 기독교와 사회주의 관계를 매개하고 사회적 실천과 기독교 신앙을 매개하는 주요 변수는 민족주의였다. 1920년대 기독교와 사회주의의 다양한 관계에 대한 역사적 고찰은 한국 사회에서 이념 대립을 극복하고 화해와 평화를 이루는 교회의 역할을 성찰하는 데 기여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최근 한국 사회 전반에서 ‘미투운동’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개신교내에서는 ‘미투운동’이 꽤 소극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소극적인 흐름이 개신교와 목회자가 성범죄에서 자유롭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목회자에게 부여된 강력한 영적 권위와 힘, 그리고 한국 교회의 목회자와 성도간의 절대적 힘의 불균형의 관계 때문에 목회자들은 성범죄에 연루될 가능성이 높다. 목회자 성범죄는 개인의 성적 또는 영적 일탈이라는 선형적 요인(linear causation)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자기애적 병리, 사회 문화적, 그리고 종교적 차원에서의 힘의 악용이 서로 얽혀 만들어낸 체계적(systemic) 문제다. 먼저, 목회자의 성범죄는 자기애적 힘의 남용이다. 자기애적 인격 장애 성향의 목회자는 교인들과의 성적인 관계를 통해 자신의 남성 정체성을 과시하고자 하며, 자신의 욕구 만족을 위해 성적으로 대인관계적 착취를 하며, 성범죄 피해자들에 대한 공감 부족을 보이고 있다. 둘째, 목회자의 성범죄는 한국 사회의 남성 중심 가부장적 힘의 남용이다. 한국사회의 남성들은 가정의 지배자요, 직장에서는 여성을 지배할 힘과 사회적 지위를 한국 사회와 문화로부터 부여받아 사회 문화적 힘의 약자인 여성을 성적으로 지배하고 착취하였다. 셋째, 목회자 성범죄는 영적 권력의 남용이다. 자기애적 힘의 남용과 남성 중심 가부장적 힘의 남용을 소유한 목회자는 강력한 영적 권력을 통하여 힘이 없는 여성 교인을 성적으로 지배하고 착취하는 영적 권력을 남용하는 성범죄를 저지른다. 이처럼, 목회자 성범죄는 심리적 자기애적 힘의 남용, 남성 지배적 가부장적 힘의 남용, 그리고 영적 권력의 남용으로서 교회 권력의 힘의 남용을 통해 교묘히 보호받고 있다. 목회자 성범죄는 어느 특정한 목회자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애적 힘, 남성 중심적 가부장적 힘, 그리고 영적 권위주의를 지향하는 많은 목회자들에게도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에, 목회자 성범죄에 대한 철저한 예방 교육과 성범죄 가해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
이 논문은 폭력과 성찬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주장으로 시작된다. 성찬에서 우리는 예수에게 가해진 폭력과 죽음을 기억하지만 그 과정에서 고통의 결과는 역전된다. 폭력은 원자화된 개인을 만들지만 성찬은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다. 폭력이 테러와 불신을 일으키는 바로 그곳에서 성찬은 인간이 가진 두려움을 좇아 낸다. 성찬을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하나님의 통치의 약속에 참여하게 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이 될 때 성찬은 참여자들로 하나가 되게 하는데 이는 희생자의 죽음이 갖는 의미를 갖는 유일한 상황이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고 부활한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우리 몸으로 먹고 마시는 육체적 방식으로 참여한다. 그러나 우리는 성찬 테이블 너머에 있는 세상 속에서만이 우리의 몸이 진실한 그리스도의 몸이 된다. 성찬의 기억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과 연대하여 그 시대에 정치적 위협이 되었던 한 인물에 대한 기억이고 그 인물을 살인한 폭력에 대한 기억이다. 함께 나누는 식사와 감사의 잔치에서 기독교인들은 예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기념한다. 이 논문에서 필자는 성찬이 단순한 기억을 넘어서 이 세상의 폭력에 대한 교회의 반응이고 이 세상의 폭력적 방식에 저항하는 그리스도인들의 희망이라고 주장한다.
본 논문은 독일 제3제국의 나치주의자 로젠베르크의 세계관을 분석한 글이다. 특히 그의 『20세기 신화』를 중심으로, 역사관으로서 종족 투쟁과 종족 전쟁을, 나치 교회 정책 논쟁과 개신교 내의 나치 세력인 독일적 그리스도인과의 갈등을, 마지막으로 『20세기 신화』가 개신교에 일으킨 반응과 고백교회의 『20세기 신화』에 대한 비판을 통해 로젠베르크 세계관을 분석한다. 로젠베르크에 의하면 세계관이라는 것은 하나의 “정해진 관점”(bestimmte Haltung)이다. 그것은 인간의 관점이며 영적(seelisch)이고 특질(Charakter)에 관한 것이다. 그런데 인간특질과 영이 특별한 피와 결합되어 있다. 그래서 나치 세계관은 구체적 인간성, 인간특질, 인간역사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로젠베르크는 기독교신조가 삶의 모든 영역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한다. 모든 행위의 중심에 있는 기독교신조와 도그마로부터 출발하여 삶의 전 영역에 대한 사상들이 이루어진다. 나치운동의 세계관은 이제 교회가 미래전망이 없기 때문에 이를 대치해야 한다. 로젠베르크는 새로운 세계가 탄생했으므로, 세계사를 새로 써야한다고 한다. 그의 세계관은 종족주의 세계관이며, 그의 역사관은 종족과 종족의 투쟁사이다. 그의 『20세기 신화』는 자신의 정치적 세계관적 희망을 잘 보여준다. 그에 의하면 역사는 더 이상 계급 투쟁이 아니며, 교회도그마와 도그마의 싸움도 아니다, 오히려 피와 피, 종족과 종족, 민족과 민족의 싸움이며, 영적 가치에 대한 영적 가치의 싸움이다. 그의 세계관은 “종족 투쟁으로서의 역사관”이다.
본 연구는 봉경 이원영 목사의 성서적이며 실용주의적 개혁가로서의 면모를 그의 설교에 근거하여 밝힌 것이다. 그는 구한말 안동의 강한 유교적 배경에서 성장했지만, 드물게 실용적인 신식교육을 받아서 일찍부터 실용주의, 즉 전통, 사상, 교리보다는 실천, 행동, 결과를 중시하는 태도를 익힌 것을 검증했다. 이런 실용주의적 태도로 인하여 그의 신앙생활 초기부터 기독교의 이론적인 측면이 아니라, 실천적 측면을 강조했고, 홀로 선비처럼 수행하기보다는 공동체로서의 교회를 세우고 돌보는 일에 신명을 바칠 수 있었다. 봉경은 신앙이 단순하게 교회에서 예배를 보는 것 혹은 교리를 수긍하는 것만이 아니라, “생활 개선”인 것으로 강조했는데, 이는 그의 실용주의적 신앙이해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 나아가서 생활 개선의 방법을 논의함에 있어서도 실천 가능성을 중시하는 실용주의적 방법을 제시했다. 봉경은 기독교인의 삶을 십자가(고난)의 삶이라고 규정했는데, 이 역시 그의 실용주의적 신앙 이해를 잘 드러낸 것이다. 그는 신앙에 수반하는 고난을 감추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앙의 결과를 중시하는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신앙에는 자연스럽게 고난이 따른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는 또한 영적 고난의 삶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영적 양식인 성경 공부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는데, 이 역시 그의 실용주의적 성경이해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 이원영은 유례가 흔치 않은 바 성서적이며 실용주의적 개혁가였다. 당시 교회 밖으로는 독립이나 공산주의와 같은 정치적 이념이 중요했고, 교회 내에서는 부흥주의와 말세주의가 횡행했었지만, 봉경은 이런 조류보다는 성서의 실용주의적 메시지에 충실한 데서 그의 성경적이며 실용주의적 개혁가로서의 면모는 더욱 빛이 난다. 또한 그는 일제의 신사참배, 창씨개명 및 황민화에 반대한 이유로 거의 순교를 당하면서까지 자신의 기독교를 지켰는데, 이것 역시 그의 성경적이며 실용주의적 개혁가로서 면모를 더욱 참된 것으로 증명해주었다.
이 연구는 평생을 차별과 편견에 맞서며 ‘만인 평등’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실현하고자 애썼던 여성 법조인 이태영의 삶과 신념, 시대인식을 들여다본다. 이태영의 삶은 크게 4시기로 구분되며, 기독교를 통해 배운 만인 평등 사상이 삶 전체를 관통한다. 성장기 성차별에 대한 문제 의식을 갖게했고, 해방 후 첫 여성 법조인으로서 여성의 법적 권리를 위한 여성 운동에 나서게 했다. 이 과정에서 여성의 고통은 가정의 고통으로 이어지고 사회문제로 연결된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되었다. 동시에 불의한 권력이 지배하는 사회의 억압구조 안에서는 만인 평등을 보장한 헌법이 제대로 작동할 수 없으며 어떤 개인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온전히 보장받지 못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이는 민주화 운동의 합류로 이어졌고,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도록 만들었다. 한마디로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게 태어난다는 기독교의 가르침을 ‘법’이라는 ‘사회적 도구’를 통해 실현하고자 했던 것이 여성 법조인 이태영이 선택한 삶이었다. 동시에 법조인이었지만 법조인에 머무르지 않고, 여성 운동가였지만 여성 운동에 머무르지 않고, 기독교인이었지만 기독교의 틀에 갇히지 않았던 열린 신념은 그가 ‘만인 평등’이라는 인류의 보편가치에 얼마나 충실했는지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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