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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과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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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im of this paper is to elucidate that Charles Bernstein’s ‘Language Poetry’ makes ‘aesthetic’ element of language ‘visible, heard and intelligible.’ To clarify what ‘aesthetic’ means, this paper will be supported by the ‘aesthetic’ claims by Jacques Rancière. According to Rancière, aesthetics is closely related to poetics which makes sense data ‘visible, heard and intelligible.’ ‘Representative regime’ based on correspondence between poetics and aesthetics will recognize only what is made ‘visible, heard and intelligible’ by poetics. ‘The principle of adequation’ set up by poetics will determine in advance order and occupation and subsequent distribution of time and space in community. In representative regime, poetics will guarantee and legitimize aesthetics, ethics as ethos and politics of community. On the contrary, ‘aesthetic poetics’ makes ‘visible, heard and intelligible what is ‘alien, foreign’ to poetics of representative regime. ‘Aesthetic poetics’ creates alien and foreign ‘aesthetic’ time and space out of time and space allocated and assigned by poetics of representative regime. ‘Aesthetic’ opens possibilities of ‘alien and foreign’ ethics and politics. Charles Bernstein’s ‘Language Poetry’ forges ‘alien, foreign’ and ‘aesthetic’ language. What ‘aesthetic language’ means is language ‘alien, foreign’ use of language in contrast to language practiced by poetics of representative regime. Aesthetic use of language creates always ‘alien and foreign’ uses other than instrumental uses of language in representative regime. Bernstein’s language poetry makes ‘alien, foreign’ and ‘aesthetic uses of language’ visible, heard and intelligible. His poetic language is ‘alien,foreign’ language carved out of mother tongue. ‘Language Poetry’ made of ‘aesthetic use of language’ which is nothing other than ‘use of alien and foreign mother tongue’ within mother tongue is already ethical and political.
미국 영문학계에서 디지털인문학적 방법론을 활용한 영미문학 연구는 비록 주류 학계의 인정이나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1960년대부터 꾸준히 전산적 텍스트 분석의 전통을 이어왔다. 디지털 영문학 연구는 새 세기에 접어들면서 디지털 기술의 급속한 진보와 함께 디지털인문학 담론의 부상으로 새롭게 각광을 받기 시작했 다. 이에 따라 영문학계는 디지털인문학적인 방법론을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이를 연구와 교육에 활발하게 적용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디지털 영문학 연구는 텍스트 분석의 전통과 멀리서 읽기의 전통이 화학적으로 결합하면서 수많은 문학 텍스트로 이루어진 거대 말뭉치의 통계적 분석으로 나아가 그동안 학술적 시야에 들어오지 않던 영미문학의 새로운 측면들을 밝혀주는 성과를 내고 있다. 분석 기법도 다양해져서 전통적인 텍스트 분석 기법에 더해 메타 데이터 분석, 사회 관계망 분석 및 시각화, 토픽 모델링, 기계 학습, 지리정보 분석 등으로 한층 정교화 되고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디지털인문학에 대한 한국 영문학계의 태도는 완전한 무관심과 철저한 외면에 가깝다. 문학을 연구하는 새로운 방법론이 있는데 이를 외면하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정당화될 수 없다. 누군가는 시도해야 하고 그것의 가치와 타당성에 대해 논쟁해야 한다. 이는 분명 한국 영문학계를 풍성하게 할 것이다. 본고는 인문전산학적인 초기 단계부터 2000년대 이후 지금까지 미국 디지털 영문학의 대표적인 연구 성과들을 검토함으로써 한국 영문학계에서 디지털인문학 적인 접근 방식에 대한 논의가 활성화될 수 있는 초석을 닦는다.
It has been argued that our everyday scholarly practices of reading and writing have been saturated with Western theories and ideologies. They are regarded as orientalism within us: we are used to understand even ourselves through the orientalistic schema. Since the 1990s, armed with theories of Edward Said, Gayatri Spivak and Homi Bhabha, we have struggled to outgrow western-centered study and achieve academic autonomy and independence. The question then arises: “Is our study more authentic as we more strip away the western Other within us? It is my contention that to have such a problematic is the very proof that (s)he is still colonialistic, for it is based on the false dichotomies such as we and the other, the East and the West and then the following ideology of self as a unified one, not divided into self and the other. The authentic and subjectivisitic study does not mean the practice of study purified of western theories and influences, In order to be authentic we have to resist the temptation of an unified consciousness. which was a characteristic of colonialists while double consciousness was the lot of those colonialized. Double consciousness unsettles binary terms such as Korean self and Western others, domestic and foreign. As such, double consciousness is not something to be overcome, but something to be acknowledged and be a principle of authentic studies. The author will discuss the case of Yun Chiho in order to prove that if he had not forsaken a double consciousness he would not have become a pro-Japanese.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는 1980년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편람(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 DSM)제 3 판에서 처음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은 정신질환이다. DSM에 포함된 PTSD 개념은 전 세계 정신의학 영역과 대중문화 담론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지금은 전 세계 사람들의 공통어법과 사회적 통념의 일부가 되었다. 그런데 PTSD 의 보편성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최근 역사에서 발생한 세계 여러 나라의 대재난적 사건들에 PTSD가 적용될 때 많은 다양한 부작용과 역효과가 발생하고 있다. 이 같은 문제들은 우리에게 PTSD를 사회, 문화를 비롯한 다양한 맥락과 상관없이 보편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중요한 화두를 던진다. 본 논문은 PTSD가 처음 만들어지는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PTSD의 보편성이 획득되는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이 문제에 대한 답의 실마리를 찾는다. 본 논문은 PTSD가 오늘날과 같이 객관적 과학의 진리로 자리매김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반전운동가 겸 정신의학자들의 연구활동 및 연구결과물을 면밀히 살펴본다. 특히 DSM에 포함시키는 과정에서 이들 정신의학자들이 PTSD의 객관 적인 과학의 지위와 보편성을 입증하기 위해서 제시한 객관적 과학의 논거와 증거를 면밀히 분석한다. 그 작업을 통해 그들이 제시한 의과학적인 증거가 객관적인 질병실체로서의 PTSD, 즉 그 질병의 보편성을 입증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는 점을 설명한다. 이들이 제시한 결과물들에는 베트남 재향군인들의 자전적인 이야기에서 얻은 주관적인 경험자료, 그리고 베트남전 후 재향군에게 나타나는 이상반응이 보편적인 외상 후 스트레스 반응임을 입증하기에 너무 협소한 범위의 임상적인 관찰을 통해 얻은 결과물, 그리고 DSM 제 3판에서 배제하려고 했던 병인론과 증상 형성 과정에서 개입되는 주관적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그럼에도 그런 증상반응들은 PTSD라는 하나의 통일된 질병 명으로 DSM에 등재된후에 객관적 의과학의 산물이라는 인식이 굳어져서 다른 모든 맥락과 상관없이 적용되고 있다. 결론적으 로, PTSD의 탄생기원을 통해 PTSD의 보편성을 검토하는 작업은 그 장애에 대한 보편적인 적용이 적절한지를 냉철하게 생각하고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계기를 마련 해준다.
정신분석을 창시한 프로이트(S. Freud)는 정신병리의 심리적 측면을 강조하였 지만 유기체적 생물학적 측면을 무시하지 않았다. 프로이트의 계승자인 라깡(J. Lacan)은 상징계의 무의식 구성을 강조하고 상징계를 넘어선 실재를 주장하였지만 쾌락원칙을 넘어서는 (죽음)충동을 ‘말하는 존재’로서의 주체에게만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신경과학자 베리지(K. Berridge)는 쾌락과 ‘쾌락 없는 갈망’의 뇌활동 부위가 다르다며, 프로이트와 라깡처럼, 이 둘을 구분하지만, 죽음충동과 닮은 갈망이 말하는 존재에게만 가능한 심리가 아니라 신경전달물질 도파민을 가진 다른 동물들에게도 발견되는 공통적인 현상임을 증명하였다. 상징계의 기능을 정신구 성의 본질로 본 라깡의 정신분석학은 유기체적 생물학적 접근에 문을 열어 놓았던 프로이트와 현대의 신경과학의 연구 성과를 통해 수정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최근에 싹트기 시작한 신경정신분석학의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 거식증 같은 정신 현상에 대한 접근도 심리적 측면과 유기체적 측면을 모두 고려한 통합적 (신경정신 분석적) 관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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