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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육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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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국정 역사교과서(2017) 『고등학교 한국사』와 『중학교 역사 1』의 한국고대사 서술을 분석한 것으로, 구성과 유사역사 문제에 주목하였다. 우선 국정 역사교과서와 검정 역사교과서의 구성을 비교했다. 전반적으로 분량이 대폭 증가했다. 고대사 서술 분량의 증가는 국정 역사교과서 편찬의 방침이었다. 고대사 서술을 강조함으로써 민족주의를 내세우고자 했다고 이해된다. 주제별로 나누어 보면 정치ㆍ군사사와 문화ㆍ교류사가 증가했다. 반면 사회ㆍ경제사는 크게 축소되었다. 사회ㆍ경제사 축소는 학습부담 경감이 이유였다. 하지만 그 결과 고대사회의 구조와 특징이 제대로 설명되지 못한 채 국가서사가 강조되었다. 특히 전쟁을 통해 국왕 중심의 강국ㆍ강대국으로 발전한 모습이 부각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고조선 서술이 주목된다. 여타의 고대국가 서술과 비교해 비중이 높아졌는데, 역시 고조선을 강국ㆍ강대국으로 묘사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리고 중등 교육과정의 교과서임에도 불구하고 주를 통해 학설까지도 소개했다. 그런데 주를 통해 소개하고자 한 것은 근래 활동 중인 유사역사가의 주장이었다. 고조선의 영역과 한사군의 위치 문제가 대표적이다. 주지하다시피 유사역사가의 대부분은 고조선의 영역에 도착적인 모습을 보이는데, 그 기원은 1974년 박정희 정부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로부터 촉발된 ‘고대사파동’에서 찾을 수 있다. ‘고대사파동’은 1970년대 중반~1980년대 역사교과서 서술에 영향을 미쳤다. 국정 역사교과서(2017)의 유사역사 문제는 1970년대 중반~1980년대 이른바 ‘고대사파동’과 그에 따른 국정 국사교과서 서술이 재현된 양상이다. 이 점에서 국정 역사교과서의 한국고대사 서술은 국가주의와 國粹主義가 결합한 또 하나의 사례로 주목된다.
본 논문에서는 박근혜정부의 국정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고려시대사 서술 내용을 중심으로 박근혜정부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문제점들을 살펴보았다. 박근혜정부 국정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고려시대사 내용은 정치사의 영역에 치우쳐 있으며, 국정 『중학교 역사』의 고려시대사 내용과 비슷하게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박근혜정부의 국정 교과서가 정식 교과서로 채택되었다면, 학생들은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동일한 내용을 반복하여 학습해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박근혜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충분한 준비와 진지한 고민 없이 졸속으로 강행되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또한 국정 『고등학교 한국사』의 고려시대사 서술에서는 과거의 학설에 기초한 국왕과 지배층 중심의 역사 인식, 권위주의적 통치자에 대한 미화, 국가주의와 전체주의의 옹호, 박근혜정부의 민생 안정 정책 홍보 등의 특성을 찾을 수 있다. 따라서 박근혜정부 국정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고려시대사 내용은 민주주의 교육에 부적합한 역사 인식의 토대 위에 집필되었다고 판단된다. 앞으로 역사학계와 역사교육학계는 민주주의 시대에 부합하는 역사교과서 서술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특히 왕조 체제와 신분 제도가 공고히 유지되었던 고려시대사 등 전근대시기의 서술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하여 꾸준한 연구와 성찰을 행하여야 할 것이다.
박근혜정부는 2017년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청구 인용이 받아들여지기까지 4년여 동안 국정 역사교과서를 만들기 위해 많은 문제를 만들었다. 박근혜정부의 국정 역사교과서 제작은 역사교육을 과거로 회귀시키는 것은 물론 여론의 지지도 받지 못한 정책이었다. 박근혜정부의 국정 역사교과서는 ‘원고본 → 개고본 → 현장검토본 → 최종본’의 순서로 제작되었다. 『중학교 역사 1』과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전체 내용 중 조선시대사 내용은 17% 정도였다. 두 교과서는 기존 교과서의 조선시대사 서술 한계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했다. 이전 한국사 교과서가 가지고 있던 구조적 문제를 거의 그대로 반복한 것은 물론 2000년대 이후 조선시대사의 연구경향을 전혀 반영하지 못했다. 역사학계가 국정교과서를 반대했던 중요한 이유 중 한 가지는 획일적 역사 교육을 통해 학생들의 창의성을 저해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일정한 틀에 맞춰져 있는 역사 교육이 진행되는 한 학생들에게 역사적 상상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역사학계와 역사교육계는 학생들의 역사 사고력을 키울 수 있는 방안을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 글은 국정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한국근대사 내용을 검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박근혜 정부는 국정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서 한국근현대사 분량을 축소함으로써, 자신들에게 비판적인 역사적 사실을 교과서에서 제외시키고자 했다. 그런데 한국 근대사 영역에서는 사회경제사 부분 삭제됨으로써, 국정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는 침략과 저항만이 남는 구시대의 교과서가 되었다. 다음으로 국정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개항기 영역에서는 고종과 순종을 일제의 침략에 저항한 군주로 부각시키고 갑신정변, 갑오개혁을 주도한 개화파 인사들을 친일적 인사들로 규정함으로써 학계의 다양한 견해를 수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개신교 선교사 활동을 독자적으로 부각시킴으로써 국정 『고등학교 한국사』교과서는 편향적인 서술을 보였다. 마지막으로 정부는 검정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서 미흡하거나 거의 다루지 않았던 외교독립운동과 여성 독립운동가를 『고등학교 한국사』에서 서술하였다고 강조하였다. 하지만 이들 주제는 정부와 뉴라이트 계열 학자들이 검정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편향성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사례들이었다. 결론적으로 박근혜 정부가 지향한 ‘올바른 역사교과서’는 허상에 불과하였으며, 역사교과서의 국정화 시도는 시대착오적 발상이었다.
2017년 1월 공개된 국정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는 국정화 추진 세력의 정치적 욕망, 무리한 추진 과정, 엄청난 사회적 비판 속에 일종의 괴물과 같은 모습으로 탄생하고 말았다. 현대사 부문에 초점을 맞춘다면, 국정교과서의 특징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국정교과서는 냉전반공주의와 발전주의가 혼합된 역사관에 의해 만들어졌다. 광복 직후부터 1950년대까지의 서술에서는 냉전반공주의 사관이 주를 이루며, 5.16쿠데타 이후의 서술에서는 발전주의 사관이 주를 이루고 있다. 국정교과서의 냉전반공주의 사관은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가 보여주는 역사인식과 거의 유사하나, 사회적 비판을 최대한 피해가기 위해 훨씬 교묘한 서술방식으로 활용하였다. 그로 인해 ‘대한민국 건국’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건국절 주장이 기반하고 있는 역사인식은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또한 1960년대 이후의 서술에서는 경제발전만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발전주의를 극단적으로 드러내고 있으며, 이는 현대사 전체 분량의 상당 부문을 광복~1950년대에 할애한 교학사 교과서와 차이를 갖는다. 둘째, 국정교과서는 시작부터 제기된 수많은 사회적 비판과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라는 정치적 상황의 변화로 자신의 역사관을 더욱더 은밀하게 숨기는 쪽으로 수차례 수정되었다. 원고본, 개고본, 현장검토본, 최종본으로 수정되는 과정은 사실 오류를 바로잡거나 완성도를 높이는 과정이라기보다는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을 삭제하고, 사건과 국면의 역사적 의미를 축소하며, 의도를 행간에 숨겨놓는 과정이었다. 그런데 이 모든 과정을 1년 안에 추진하다보니, 완성도 면에서 심각한 문제를 갖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국정교과서는 역사를 국가화 하겠다는 애초의 의도도, 사회 보편의 교육적 요구에 맞추겠다는 명분도, 교과서로서의 자격도 갖추지 못한 ‘괴물’로 탄생하고 말았다. ‘괴물’은 폐기될 수밖에 없다.
2016년에 국정제로 발행한 중학교 역사 교과서의 동양사 부분은 우선 그 설계도 역할을 하고 있는 2015 교육과정부터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기존의 교육과정과 비교할 때 동양사 영역에서는 중국사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동남아시아, 인도, 서아시아,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등지의 역사는 교과서 소거함으로써 서양사는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배우고 동양사는 중국을 중심으로 학습하도록 하였다. 세계사 영역의 동양사 부분에서 중국 이외의 지역을 배제하였으므로 중국사의 입장에서 보면 넓은 지면을 확보하게 되었다. 그런데 중국사 서술 내용을 보면 대부분이 현재 고등학교 세계사에서 다루는 내용 수준으로 구성하였다. 고등학교 교과서의 서술을 거의 그대로 가져온 부분도 적지 않다. 한편 중국사 서술에서는 집필자의 과도한 주관이 개입되어 검증되지 않은 역사적 사실이 기술되기도 하였다. 국정 교과서는 국가에서 추진하는 것이기 때문에 검인정 교과서보다 오류가 덜하다는 인식이 있으나 오히려 집필자에 따라 오류의 가능성이 더 열려 있기도 하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국정 교과서를 만듦으로서 오류를 해결하겠다는 인식 자체도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장 검토본을 거쳐 최종본이 나왔을 때에도 오류가 적지 않게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오류는 국정 교과서를 집필하면서 새롭게 등장한 오류도 있으나 관습적으로 이루어지는 오류도 있다. 가령 연에서 망명한 위만의 문제, 진시황이 확대한 영역 중 남부 지방의 베트남과의 관계 문제에서 한국사와 중국사, 중국사와 베트남사라는 전공 영역의 경계에 있는 부분은 재고의 여지가 있다. 상대적으로 연구에 소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사, 동양사, 서양사라는 3분 체제를 넘어 전공자들의 협력 작업으로 해결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그리고 이러한 분과의 경계를 넘어 학생들이 한국사와 세계사를 통합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주제를 개발하고 교재화하는 작업이 이루어졌으면 한다.
본 연구에서는 초등학생들이 학교수업과 교과서를 통한 공식적 역사학습 외에 다양한 경험을 통해 역사지식을 획득한다는 사실에 주목하며 이와 같은 방식을 통해 경험하는 역사를 총칭하여 비공식적 역사(unofficial history)로 규정한다. 다양한 경로를 통해 제공되는 역사경험은 학생들이 기록으로 존재하는 역사지식을 구체적으로 표상하고 새로운 관점으로 역사를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에는 사실의 진위여부나 해석의 타당성이 검증되지 않은 영역들도 존재하며, 그 중의 일부는 학생의 역사인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에 본 연구의 목적은 초등 역사학습에서 비공식적 역사가 지니는 긍정적 측면에 주목하되, 학생들이 이를 비판적으로 수용하여 다양한 측면에서 역사적 의미를 생성하는 읽기 경험을 제공하는 데 있다. 비공식적 역사읽기 방안을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사료읽기, 다중텍스트 읽기, 비판적 역사읽기 이론을 참고하였다. 구체적인 역사읽기 절차는 ①공식적 역사의 공백을 보완하며 당대의 상황과 맥락에 비추어 의미를 구성하는 맥락적 읽기, ②다양한 역사적 행위자들의 입장에서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는 해석적 읽기, ③역사적 사실을 평가하고 학생의 관점에서 역사적 판단을 수행하는 평가적 읽기, ④텍스트 생산의 의도나 목적, 텍스트 내용의 해석, 텍스트에 깔려 있는 저자의 관점 등을 추론하며 읽는 비판적 읽기로 세분화하였다. 초등학생들에게 비공식적 역사읽기를 적용할 때, 의미 있는 교육적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역사적 사건은 첫째, 공식적 역사에서 언급하지 않거나 혹은 간략하게 서술되어 다른 역사서술의 보충이 필요한 경우, 둘째, 사건의 결과가 당시 여러 계층의 사람들의 삶에 미치는 파급 효과가 큰 경우, 셋째, 해당 역사적 사건에 대해 다양한 평가가 공존하는 경우 등이다. 조사연구에서는 이러한 성격을 가진 ‘고려의 대몽항쟁과 원의 간섭’에 관한 어린이용 역사서를 선정하고 학습 방안을 구체화하였다. 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비공식적 역사읽기 학습을 실행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①학생들은 비공식적 역사읽기를 통해 역사적 사건이 발생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복합적인 요인들이 관여함을 인식하였고, ②다양한 역사적 행위자의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보고, 해석해 보는 기회를 가졌다. ③역사적 인물이나 사건을 평가하는 내용을 읽고 이를 학생의 관점에서 판단하였으며, ④동일한 역사적 사건을 달리 나타낸 여러 텍스트를 비교하며 읽고 역사의 다원성을 체험하였다. ⑤학생들은 텍스트 속에 내재된 저자의 의도를 찾아 읽으며 비판적 역사읽기의 필요성을 인식하였다. 학생들이 역사를 이해하는 과정에는 공식적 역사학습 경험, 기존의 배경지식, 일상생활 속의 역사체험과 같은 복합적인 요인들이 작용한다. 따라서 이러한 역사경험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여 학생의 역사인식으로 나아가는지 살피기 위해서는 그들의 사적 역사(private history)에 대한 다양하고 적극적인 논의가 계속되어야 한다.
역사교육에서 정체성을 다루는 것은 민감한 사안이지만, 그것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학교 역사교육에서 정체성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고 해도, 정체성은 학생들이 역사를 이해하고 평가하는 기반으로 작동한다. 역사교육은 국가ㆍ민족ㆍ종교 등 거대 집단의 정체성을 함양하는데서 벗어나, 갈등 속의 다른 집단에 대한 편견을 줄이고 서로를 연결시켜 주는 정체성들을 발전시키는데 기여해야 한다. 종교라는 하나의 기준으로 세계를 분할함으로 인해 일어나는 테러와 전쟁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듯이, 특정 집단의 단일한 정체성을 바탕으로 세상을 인식하는 것은 갈등과 폭력을 일으키는 근본적인 원인이다. 집단 정체성의 함양에서 벗어나 개인의 정체성 변화ㆍ형성 과정을 탐구하는 학습은 세 가지 목표가 있다. 먼저 학생들이 과거의 사람들이 동일한 가치와 사고방식을 가졌다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지 않고, 특정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각기 다양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해야 한다. 이는 다원적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성을 함양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다음으로 학생들이 개인이라는 작은 대상에 대한 세밀한 탐구를 통해 거시적 주제의 맥락과 의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는 ‘공식적 역사’의 권위와 학습 내용의 ‘단순화ㆍ축소’로 인해, 역사적으로 중요한 주제에서 배제되거나 왜곡된 역사적 사실을 파악하게 해 줄 것이다. 이 학습의 마지막 목표는 학생들이 학습의 대상이 되는 인물과 공감하는 동시에 개인과 집단ㆍ구조 간의 역동적인 관계를 파악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현재 자신들의 삶과 사회적 변화가 무관하지 않음을 인지하게 되며, 이는 학생들의 사회적 참여의 가능성을 높여준다. 우리가 소속한 집단으로 인해 생겨난 특정한 사회적 정체성이 갈등과 폭력을 조장한다고 해도, 그것을 완전히 제거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우리는 문제가 되는 정체성과 경쟁하는 ‘대안적 정체성’을 인식하고 강화함으로써, 문제를 완화할 수는 있다. 역사교육에서도 우리와 그들을 구별하는 정체성을 강조하는 데서 벗어나, 우리와 그들을 연결시켜주는 ‘가교(架橋)’ 역할을 할 정체성을 발굴하고 형성하는데 노력할 필요가 있다. 과거의 타인이 가진 다양한 정체성들을 탐구하는 과정을 통해, 학생들은 타인과 자신이 연결되는 지점을 찾아가는 경험을 해나갈 수 있다. 이러한 노력은 정체성을 협소화시키려는 시도에 비해서는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킬 것이며, 조금 더 사회를 평화롭게 만들 것이다. 이 글에서 사례로 제시한 독립운동사 학습의 경우, 학생들의 반응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독립운동가들의 위대함을 강조하는 것보다는 독립운동가들과 현재 학생들의 공유점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오히려 공동체에 대한 헌신과 참여를 촉진할 수 있다.
독일은 1970년대에 보수 대 진보의 정치적, 사회적 갈등을 겪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전히 민족주의적 패러다임을 고수하고 있었던 역사학과 역사교육은 위기를 경험하게 된다. 민족주의적 패러다임의 역사학과 역사교육은 이제 더 이상 현재의 방향 설정에 쓸모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역사학과 역사교육의 정당성을 제시해야 했던 독일 역사교육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그 중요성이 부각되어졌고 역사연구, 역사이론과 함께 역사학의 한 분야로서 새로이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렇게 새롭게 정립된 독일 역사교육은 이전처럼 역사연구에서 얻어진 역사지식들을 단순히 전달만하는 종속적인 분야가 아니라, 자신의 고유 연구 영역을 지닌 독자적인 분과가 되었다. 새로운 독일 역사교육의 핵심 개념은 바로 ‘역사의식’이었다. 독일 역사교육에서 역사의식에 주목한 선구자적인 역사교육학자 야이스만은 특히 1970년대 독일의 정치적, 사회적 갈등의 극복을 위한 역사교육과 정치교육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였다. 그는 절대성과 전체성을 요구하는 역사상(像)에 대해 상대적이면서 부분적인 유효성을 인정하는 역사의식을 대비시켰다. 그에게 있어서 역사는 지나간 현실의 모사가 아니라, 과거의 증거들로부터 선택되고 해석된 일종의 재구성이다. 이렇게 재구성된 역사해석은 현재의 관심과 방향 설정 욕구와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그에게 역사의식이란 “과거 해석과 현재 이해 그리고 미래 전망의 결합”이었다. 역사 수업에서는 이러한 과거 해석과 현재 관심이나 방향 설정과의 독특한 관계가 비판적으로 다루어져야 한다. 비판적 역사 다루기를 위해 그는 역사가 현재의 가치와 관심 등에 따라 재구성된다는 인식을 가지면서 다양한 역사 해석들에 대해 논쟁하되, 또한 동시에 방법론적인 사료검증을 통해 논증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하였다. 더 나아가 이러한 논쟁과 논증 과정의 목표는 “진리”를 확인하고 가려내는 것에 있지 않고 검증을 거친 다양한 견해들 간의 보충적인 그리고 확장적인 합의를 이루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성찰적인” 역사의식 개념의 도움이 필요하며, 역사의식 개념의 도움으로 하나의 관점의 관철 혹은 상반된 관점의 폐지가 아닌 관점 자체의 풍성함과 다면적이고 다차원적인 역사인식이 가능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야이스만은 역사 수업에서 과거 사실과 현재의 가치와 관심 등이 복잡하게 엮어 있는 역사 해석을 사실분석, 사실판단, 가치판단의 세 작업으로 구별하여 다루기를 제안하였다.
이 논문은 북아일랜드의 역사과 교육과정 개발에 잉글랜드, 아일랜드공화국 그리고 북아일랜드가 공동으로 참여했던 ‘유럽지역학 프로젝트’의 구축 과정에 대해 살펴본다. 1979년에 집권한 영국의 마가렛 대처 정부는 1968년에 시작된 ‘북아일랜드 혼란기’의 폭력 사태와 극도의 사회적 갈등을 아일랜드공화국 정부와의 협조를 통해 해결하고자 하였다. 북아일랜드의 극도로 분열된 사회를 치유하기 위해 영국과 아일랜드공화국 정부는 북아일랜드 학교에서 시행되는 역사과 교육과정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였고, 이에 잉글랜드와 아일랜드공화국 및 북아일랜드에서 각각 6개의 중등학교를 시범적으로 선택한 후, 이에 소속된 11세부터 15세까지의 학생들이 공동 현장 학습, 기숙 교환 및 정보통신 기술 활용을 통해 영국과 아일랜드 역사의 주요한 이슈와 사건들을 유럽이라는 틀 안에서 공부하고 서로 다른 지역의 학생들 및 교사들과 학습 내용을 교류하는 작업을 지원하는 유럽지역학 프로젝트를 출범시키기로 결정하였다. 프로젝트의 원활한 수행을 위하여 총괄책임자 및 각 지역 당 한 명의 현직 교사 출신 현장담당자가 임명되었고, 프로젝트의 전반적인 운영을 평가하고 감독하기 위해 위원장과 총무를 비롯하여 각 지역 당 장학사 1명과 보조장학사 1명, 교육 과정 전문가 1명 등으로 구성된 운영위원회가 설립되었다. 또한 참여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더욱 양질의 역사 교육을 제공하는 것을 돕기 위해 영국사 및 아일랜드사 교육과 관련하여 2년마다 한 차례씩 각 프로젝트 참여국을 대표하는 교육감, 역사 교육 관련 학자들 및 역사 교사들이 참가하여 정해진 주제에 대해 발표하고 워크샵을 진행하는 학회가 개최되었다. 이러한 구축 과정을 거친 유럽지역학 프로젝트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역사적 사건을 피하지 않고 전자메일, 컴퓨터 화상 회의 등 정보통신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원칙에 따라 “노르만족,” “식민,” “분쟁에 대한 반응, 1912-1921” 등 세 과목을 선정, 참여 학생들이 담당 교사들의 도움을 받아 자기 지역에 존재하는 과목 관련 유적 또는 자료 등을 연구하여 그 결과물을 다른 지역 학교의 학생들에게 기숙 교환 또는 정보통신 기술을 통하여 주고받고 비교 분석을 하는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하도록 하였다. 비록 영국의 철수로 공식 출범한지 6년만인 1992년에 만료되었으나 초국경적 협력으로 만들어진 역사과 교육과정을 통하여 북아일랜드의 미래 세대가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여건을 마련해 주고 희망을 불어넣어 주고자 했던 유럽지역학 프로젝트의 도전 정신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이 글은 최근 서로 다른 관점에서 출판된 두 역사교육 논저를 중심으로 역사교육의 목적과 가치와 관련되어 역사교육계에서 이루어진 중요한 논의들을 검토한 비평적 시론이다. 먼저 『역사 인식의 논리와 역사교육』은 역사 고유의 주관성에 주목하면서, 역사교육이 역사가의 인식 과정이나 절차를 가르치는 이른바 인문교육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학문주의적 경향과 달리, 『민주사회와 시민을 위한 역사교육』은 교육의 공적 기능에 천착하며 시민 양성이나 시민적 관점에서 본 역사교육으로의 전환을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저작은 모두 특정한 ‘가치’를 전제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학생들을 교육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또한 이들은 역사를 신화화하거나 교육의 단순한 도구로 제한함으로써 자칫 역사교육에서 역사를 배제하는 위험성 또한 내포한다. 이러한 문제에 주목하면서, 본고는 우리 역사교육의 논의를 확대하고 발전시키는 방안으로서 ‘역사교육학의 역사’를 고구할 것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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