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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육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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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는 역사 수업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교재이다. 따라서 좋은 역사 교과서를 만들기 위한 연구들은 계속 진행되고 있지만 교과서 수요자 중 학생들의 인식을 볼 수 있는 연구는 미진하다. 교과서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교육과정, 학계의 연구 성과 등 고려해야 하는 요소들이 많다. 하지만 중등학교 학생들은 이러한 부분들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교과서에 대한 학생들의 생각을 살펴보는 것에는 일정부분 한계가 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현재 ‘학생’이면서 미래의 ‘교사’인 예비 역사교사에 주목했다. 34명의 예비 역사들과 현행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5종을 분석 및 평가하고 이를 토대로 현행 <한국사> 교과서에 대한 이들의 인식을 정리하였다. 예비 역사교사들이 교과서를 평가함에 있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들은 교육과정 및 집필기준의 반영, 서술 분량, 가독성, 내용 조직이었고, 본인의 역사이해 방식에 따라 내용 조직에 대한 선호도가 달랐다. 예비 역사교사들의 교과서 평가에 나타난 특징 중 주목해야 할 부분은 교과서를 하나의 텍스트로 보기보다는 성전에 가깝게 인식한다는 점이다. 예비 역사교사들이 생각하는 좋은 교과서는 어떠한 모습일지 알아보기 위하여 교과 서를 집필하도록 하였다. 예비 역사교사들이 서술한 교과서는 기존의 교과서와 수록 자료들이 매우 유사하였지만 학습지 형태로 교과서를 구성하거나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는 교과서를 서술하려는 모습도 나타났다. 또한 본인이 생각하는 역사교육의 목적이나 수업 방법을 교과서 서술에 담아내려는 노력하는 모습도 보였다. 검정 체제로 교과서가 발행되면서 교사의 교재평가 전문성이 강조되고 있는 시점에서 이 연구는 예비 교사의 평가 전문성 교육에 시사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역사영화는 대중적인 관심의 대상이자, 지속적인 역사교육의 연구 대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허구를 담고 있는 역사영화를 역사 학습을 위한 하나의 자료로 인정하는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역사영화를 역사라고 할 수는 없지만, 역사영화 속에는 역사가 담겨 있다. 역사영화 안에 담겨 있는 역사적 사실을 파악하고, 그 이상의 무언가를 찾아낼 수 있다면 역사영화를 통해 역사 학습이 가능할 것이다. 이에 본고에서는 학습 자료로서 역사영화가 가지는 의미와 가치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 역사 수업의 주체라 할 수 있는 역사교사와 학습자들이 역사영화를 어떻게 활용하고 인식하는지에 대하여 설문과 면담 조사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 역사교사들은 동기 유발, 사실 이해의 증진 뿐 아니라 사고력 향상을 위한 도구로서 역사영화를 유용한 학습 자료로 인식하고 있었다. 또한 학습자들은 다양한 요인을 고려하여 역사영화 속 이야기와그 안에 담긴 역사적 사실을 이해하였을 뿐만 아니라 역사영화가 제작된 시대적 상황을 고려 하면서 역사영화를 평가하기도 하였다. 이는 역사영화가 역사 학습을 위하여 폭넓고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는 자료임을 시사한다. 그러나 역사영화와 역사 학습을 위한 역사영화는 다르며, 또 달라야 한다. 연구자가 규정 하는 역사영화의 범위는 매우 넓지만, 역사 학습을 위한 역사영화는 ‘영화’보다 ‘역사’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 역사영화가 갖추어야 할 요건이 역사적 핍진성과 역사적 개연 성이다. 즉 과거의 상황과 당시의 인물을 묘사・재현하는 과정에서 역사영화는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여 실체에 가깝게 재현된 ‘역사적 핍진성’을 가져야 하고, 당시의 상황과 역사적 사실이 라는 맥락 속에서 재현되고 창조되는 ‘역사적 개연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영화 가운데 이러한 요건을 갖추거나 일정한 가공을 거쳐 역사적 핍진성과 역사적 개연성이 높은 것이 바로 ‘역사학습영화’이다.
역사교육은 현재와 ‘가까운 역사’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오늘을 만들어온 ‘가까운 역사’는 학습자의 삶과 직접 관련되기 때문이다. 한국 현대사에서 1987년은 현재 우리 삶의 구조를 만든 중요한 기점이다. 1987년을 역사적 전환기로 바라보는 인식은 ‘87년 체제론’ 과만난다. 6월 항쟁 이후 한국 사회는 형식적 민주주의가 제도화되고 박정희식 발전 체제를 벗어나 대중 사회로 진입해 갔다는 논리이다. 역사교육은 1987년 이후의 역사에서 민주주의 서사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우선, 6월 항쟁 이후 민주화는 한국사회에 질적 변화를 가져왔다. 시민은 스스로를 권리의 주체로 인식하고, 시민사회는 성장해왔다. 동시에 시민들은 국가의 역할을 묻기 시작했다. 또, 민주화는 남북의 적대적 공존을 무너뜨리며 대결적 분위기를 완화 하고 화해 협력의 시대를 열어나갔다. 권위주의 정권의 종말과 함께 개발독재는 끝났으나 1997년 이후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본격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시민은 경제적, 실질적 민주주 의에 대한 논의를 확산시켜 갔다. 1987년 이후부터 역사를 통해 학습자들은 역사를 만들어온 시민의 역할과 책임을 깊이 고민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한국사 교육과정에서 1987년 이후의 역사를 하나의 시간 영역, 독립된 장절로 서술하지 않고 있다. 2009 개정교육과정, 2015 개정교육과정 모두 그러하다. 이에 본고는 1987년 이후의 역사 교육과정안을 제시하였 다. 앞서 강조한 민주주의를 중심 서사로 교육과정안을 구성하였다. 구성안의 내용을 조직하는 과정에서 역사의 논쟁성을 강조하여, 학습자들이 민감한 사회적 논쟁을 교실 수업에서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지식과 기능을 강조하는 방향에서 사료 학습을 발전시키려면 핵심 사료를 선정하고 그에 따라 교육과정󰠏교수학습󰠏평가의 연속선상에서 체계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역사교육의 다양성을 훼손하지 않는 전제에서 좀 더 탐구 학습을 돕는 사료를 탐색하는 방안으로 핵심 사료의 선정을 고려하였다. 이를 위해 우리나라 교육과정을 검토한 결과 교수학습 항목에서 활용을 강조하는 정도였고 어떤 사료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화가 부족하였다. 이에 비해서 미국의 사례를 보면 목록의 제시는 물론 사료의 수준까지 고려하는 시사점을 얻을 수 있었다. 한편 검정 역사 교과서는 다양한 사료를 선정하여 본문이나 탐구 활동에 배치하였으나 내용 이해를 보완하는 기능이 대부분이었다. 2009 개정 교육과 정에 따른 2011년판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6종과 2011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2014년판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8종을 탐색한 결과 각각 과반인 4종 이상과 5종 이상 수록된 사료 110건(모두 과반 50건, 2011년판만 과반 19건, 2014년판만 과반 41건)을 추출하였다. 검정 교과서가 다양성을 추구하는 가운데 이와 같이 공통 사료가 다수 나타난 점에서 향후 핵심 사료 선정의 가능성은 높다고 볼 수 있다. 이제 깊이 있고 의미 있는 사료 학습을 하기 위해서는 교육과정, 교과서, 교수학습, 평가 등에서 핵심 사료를 어떻게 제시하고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궁리가 필요하며, 그러한 방향에서 본고가 수행한 기초 작업이 기여하기를 바란다.
본고에서는 역사박물관 학예사들이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실천하는 전 과정에서의 박물 관과 박물관교육에 대한 인식과 교육 프로그램 운영방법, 그리고 이에 영향을 미친 요인은 무엇 인지 심층면담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연구결과 이들의 인식과 실천에 다양한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전공과 경력, 개인적 신념 및 경험・흥미, 상황적 요인 등이 상호 작용해서 박물관 현장에서 드러나고 있었다. 연구 참여자들은 박물관 교육을 ‘역사교육’의 일환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전공과 경력에 따른 차이로 박물관 교육목표는 다르게 인식하고 있었다. 연구 참여자들은 박물관 교육의큰 틀을 ‘역사교육’안에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필수적인 지식을 역사내용지식과 소장 자료에 대한 이해였다. 이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역사내용지식은 단순한 역사지식이 아닌 역사학의 기본개념과 원리, 그리고 역사의 학문적 구조와 역사가의 태도까지도 포함하는 것이었 고, 전시물외에도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소장 자료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생각하고 있는 박물관의 교육적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 ‘체계적으로 교육 과정’을 설계하려고 했고, ‘학습자의 발달 단계’를 기초로, ‘주제중심 학습’과 ‘인물학습’으로 구성했고, 교수학습방법은 ‘강의법’, ‘제작학습’, ‘체험학습’을 적절하게 혼합해서 활용하고 있었 다. 다만, 경력과 전공・박물관 상황적 요인, 개인적 경험과 신념에 따라 이들의 실천 양상은 차이가 있었고, 실제 기획의도와 다르게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이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경력과 전공, 박물관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르게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이에 따라 몇 가지 박물관 교육학예사 교육에 대한 시사점을 남길 수 있다. 박물관 교육과정 에서 박물관의 특성과 경력, 전공을 고려해야 한다. 초임자와 경력자를 구분하고, 교육학 전공 자와 아닌 자, 역사계 전공자와 아닌 자, 국공립박물관과 사립박물관, 박물관의 규모에 따라 교육담당학예사의 교육이 달라져야 한다. 첫째, 초임 학예사들에게는 각 박물관 차원에서 소장 자료 교육이 따로 이루어져야 한다. 초임자들은 자신의 이론적 경험을 토대로 생각해 왔던 박물관 교육을 실현하고자 하므로 박물관 차원에서 이들에게 새로운 이론적 경험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면, 박물관 내부에서 박물관의 정체성과 교육목표에 대해서 논의할 수 있는 교육도 마련이 되어야 한다. 둘째, 교육 전공자라 하더라도 초임자라면 한 박물관에서 5년 이상 프로그램을 꾸준히 발전 시켜온 경력자의 사례를 공유시킬 필요가 있다. 이러한 간접 경험으로 간접 경력을 더 쌓을 수있을 것이다. 그리고 교육을 담당하는 학예사는 자주 박물관을 바꾸기 보다는 한 박물관에서 오랜 기간 교육프로그램을 개선시킬 필요가 있다. 또한 일반 역사학전공자들의 경력은 역사교육전공자의 교육방법에 대한 이해를 보완해주기도 한다. 실제 경력자는 교육학전공자가 아니지만, 실제 축적된 경험을 토대로 교육방법을 발전시켜왔다. 하지만, 이론적 바탕이 없기 때문에 자신감을 표출 하지 못했다. 이를 근거로, 굳이 교육학 전공자만을 고집하기 보다는 교육학전공자가 아닌 사람 들도 전문성을 꾸준히 향상시킬 수 있도록 교육프로그램 자문단을 구성해서 항시 교육학적・내 용학적 자문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덧붙여, 교육학 이론 재교육 강의를 개설하는 것도 바람직한 방법이다.
이글에서는 인권 관점의 역사수업 방향을 설정하고 인권 관점에 따라 3・1운동 수업을 구성하고 실천한 후 학생 반응을 분석하여 시민역사수업의 시사점을 제시하였다. 3・1운동은 인권의식의 차원에서 자유, 인류평등과 평화의 차원에서 제기된 운동이었 으며, 인권침해 상황의 차원에서는 인간 존엄성이 상실되던 1910년대를 극복하기 위한 운동이었다. 1910년대 조선인들이 사회 정치적 차원에서 자유로운 정서적 욕구의 분출과 법적 권리의 유보 및 배제를 경험을 극복하고자 한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대중의 자발적 참여와 인권의식의 성장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인권운동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하여 인권 관점에 의한 3・1운동 역사수업의 첫 번째 목표는 학생들이 변화하는 인권의 관점에서 3・1운동을 해석함으로써 역사적 행위의 원인과 결과를 비판적으로 평가하도록 하는 것이며, 두 번째 목표는 과거 사람들의 문제해결과정을 추체험하여 인권이 사람들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획득된 것임을 이해함 으로써 참여의지를 함양하는 것이다. 수업 후 학생들은 역사적 사건을 인권의 관점에서 살펴봄으로써 일제강점기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의 모습을 살펴보고 공감할 수 있었으며, 인권침해 상황임을 인식할 수 있었다. 또한 학생들은 3・1운동을 전후한 사람들의 인권의식의 변화를 인식하고 인권 개념을 내면 화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당시 사람들이 혼자서는 결코 할 수 없는 자신의 인권을 스스로 찾는 일을 위해 힘을 모아 행동하였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학생들은 전국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였다는 사실에 고무되었고, 이를 촛불집회에 비유하며 참여 의지를 내보였다. 결론적으로 본 연구는 초등학교 역사수업에서 학생들에게 인권 관점에서 역사적 사건을 바라보게 함으로써 현재까지 지속성과 연관성을 가진 사건으로 3・1운동을 이해하게 되고 더 나은 시민사회를 위한 참여의지를 고취시켰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부교재’란 주교재를 보완하는 보조교재로서, 역사 교과에서는 현재 ‘역사부도’를 역사 교과 서를 보완하는 부교재로 사용하고 있다. 초등학교의 경우 ‘사회과부도’에 역사지도와 자료가 일부분 포함되어 있고,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는 별권의 ‘역사부도’가 사용되고 있다. ‘부도(附圖)’ 란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교과서에 부속된 그림’이라는 뜻이다. 현재의 ‘역사부도’는 지도와 시각자료, 도표 위주로 구성되어 있어 그 명칭에 비교적 충실하다고 할 수 있다. 학교 현장에서 지도와 시각자료 위주로 구성된 역사 ‘부도(附圖)’의 활용도가 현격하게 감소한 것은 최근에 갑자기 나타난 현상은 아니다. 6차 교육과정이 시행되었던 1990년대 후반에도 고등학교에서는 시수 부족 등으로 인해 수업시간에 ‘역사부도’까지 펼쳐볼 여유는 많지 않았다. 특히, 교과서에 다양한 지도와 시각 자료, 탐구 활동 등이 수록되기 시작한 7차 교육과정 이후에는 이러한 경향이 더욱 뚜렷해졌고, 최근에는 역사 교과서에 실린 지도 또는 시각자료가 ‘역사부도’보다 더욱 풍부하고 질적인 면에서도 우수한 경우가 있다. 현재와 같이 교과서와 중복된 자료들을 아무런 맥락없이 주제별로 나열하는 방식의 ‘역사부도’는 주교재인 교과서를 보완하는 부교재로서의 기능을 다하고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먼저 교과서와 부교재를 동시에 집필하고 검정하도록 하는 제도가 개선될 필요가 있다. 교과서의 집필과 검정이 모두 종료된 후, 교과서 내용에 따라서 부교재를 집필할 수 있도록 하여 두 교재간의 내용 연계성을 최대한 높여야 한다. 내용 구성 면에서도 종래와 같이 지도와 시각자료 위주의 ‘부도(附圖)’에서 벗어나, 교과서 이해에 실제로 도움이 되는 내용으로 새롭게 구성할 필요가 있다. 현재와 같은 ‘역 사부도’가 더 이상 학교 현장에서 환영받기 어렵다는 사실은 긴 논쟁을 필요로 하지는 않을 것같다. 현장 교사들도 교과서와 내용상 직접적인 연관성이 강화된 새로운 부교재가 제작되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이제는 기존의 체제대로 만들어진 ‘역사부도’를 그대로 받아 들이고 이를 어떻게든 활용해 보려는 노력보다는, 학교 현장이 필요로 하는 새로운 역사 부교재를 만들기 위한 보다 적극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1988년에 결성된 전국역사교사모임은 역사교육 운동단체이자 역사교육 연구단체이다. 교사모임의 회보에 실린 역사 ‘수업이야기’는 학교 역사 수업의 성격과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자료로서 중요하다. 역사 ‘수업이야기’를 통해 본 교사모임의 역사 수업 실천은 지향의 지속성과 수업 방법의 진화라는 특성이 있다. 역사교사들은 모임 초창기부터 역사과 교육과정 및 교과서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견지하면서 대안을 모색하였다. 교사모임의 지향은 <한국 근・현대사>교과서 파동과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강행 등 역사교육의 위기 국면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분명해지고 견고 해졌다. 역사 ‘수업이야기’의 근현대사 수업 사례가 많아지고, 민주주의, 평화 등의 가치를 지향 하는 내용 재구성이 강조되었다. 교사모임 초기부터 학생의 수업 참여를 북돋우기 위해 강조되었던 사료학습, 극화학습, 토론 학습은 가치 지향적 역사 수업 내용 재구성을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진화되었다. 역사교사들은 이전보다 학생의 수업 반응과 역사 인식을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수업을 성찰하여 배움이 있는 역사 수업을 만들어나갔다. 지난 시기 교사모임의 역사 수업 실천에 있어 가장 큰 변수는 역사과 교육과정 개정과 교과서 개발 등 역사교육내용에 대한 정책 변동과 사회적 논쟁이었다. 이는 교사모임의 역사교육 운동단체로서의 성격을 부각시키고 내부 역량을 집중시켰다. 역사교육 정책의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개선을 비롯한 현장 역사교육의 질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교사모임의 역사교육 연구단체로서의 저력과 성과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교사모임의 역사 수업 실천과 지향을 통해 볼 때 역사수업연구는 역사 수업의 주체와 학교 안팎의 교육 여건 및 관련 논의를 고려하여 총체적이고 복합적인 인식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수행될 필요가 있다. 주제어_역사교사, 전국역사교사모임, 역사 수업 실천, 역사 수업 내용 재구성, 역사 수업 방법 정미란은 교사의 역사 수업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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