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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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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에서 기원한 ‘지구적 지성’으로 상정된 불교를 중심으로 동서양의 ‘상호성’에 대한 한 사례연구로서 독일 가톨릭 지식인, 예수회 인도학자 요셉 달만의 불교인식을 검토했다. 달만은 학문적으로 인정받은 인도학자였을 뿐만 아니라, 일생동안 불교를 문헌연구, 여행, 선교활동을 통해 접촉했던 인물이었다. 그가 문화적 타자인 불교를 인식하는데 있어서 나타난 특징들과 한계를 제시하고자 했다. 이때 특히 19세기 후반 독일 인도학자들 대다수가 과학적 근거 없이 비교언어학에서 출발하여 공유했던, 고대인도 문화를 꽃피운 아리아인과 독일인의 기원이 동일하다는 ‘학문적 상상’에 기반을 둔 ‘아리아 인종주의’가 그의 불교인식에서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살펴보고자 했다. 달만의 불교인식에서 첫 번째 특징은 그가 불교의 가르침 자체보다는 불교의 역사적 발전에 관심을 가졌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의 예수회 선교사로서의 정체성과 연결되어 보이는데, 그는 불교의 역사적 발전에 대해서 두 개의 질문을 던졌다.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가 왜 수백 년 후에는 사라졌는지, 정작 인도에서 사라진 불교가 왜 동아시아에서는 확산되었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그는 이 두 문제에 ‘아리아 인종주의’와 가톨릭 신앙으로 답했다. 우선적으로 달만에게 불교는 ‘인도-아리아 문화’, ‘브라만 문화’에서 발전한 것이었으며, 붓다는 ‘정교한 아리아 남성’이었다. 이러한 ‘아리아적 불교’가 인도에서 쇠퇴한 것에 대해서 달만은, 불교가 자신의 아리아적 뿌리에서 멀어질수록, 즉 아리아적 문화기반을 상실할수록, 그리고 인도 불교예술 발전에서 추론해낸 로마가톨릭 전통에서 멀어질수록 세력이 약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요컨대, 달만은 인도 불교의 쇠퇴를 불교에서 ‘아리아적 성격’이 약해지고, 대신 ‘비아리아적 새로움’이 강해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달만은 인도에서 불교가 쇠퇴하는 동안 동아시아에서 불교가 확산된 이유로 ‘인도의 유해숭배’와 ‘니르바나’ 사상을 들었는데, 이 둘은 모두 인도-아리아 문화에 속하는 것으로서 불교 고유의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나아가 그는 불교가 뛰어난 ‘아리아 문화’를 인도 외 지역의 ‘비아리아 민족들에게’ 전파시키는 ‘문화적 사명’을 보유한 것으로 파악했다. 비록 불교가 비인도 민족들과 혼합될수록 ‘쇠퇴’하는 것은 피할 수 없다고 보았지만 말이다. 이처럼 달만의 불교인식에서 그의 아리아 인종주의적 경향은 인도 불교의 발생과 사라짐 그리고 동아시아 불교의 확산을 설명해주는 중요한 배경지식으로서 작동하고 있었다. 달만의 불교인식에서 두 번째 특징은 그가 인도를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들의 서구화와 기독교화를 주창하면서, 서구 중심적 입장에서 동양에 대한 지적, 물적 우월감을 보유한 오리엔탈리즘을 보이고, 비록 문화적인 분야에서이긴 하지만 제국주의적 팽창을 옹호하고 있는 것이다. 이때 특히 ‘독일인’과 ‘가톨릭교회’의 역할을 강조함으로써, 독일 민족주의적 태도와 가톨릭 선교관을 보여주고 있다. 정작 서구에서는 근대문명의 반대편에 서있는 것으로 간주되었던 가톨릭교회가 비유럽 지역에서의 문명화사명과 관련해서는 스스로에게 문명화 사도 역할을 전가하고 있는 것이다. 독일 예수회 인도학자 달만은 불교를 문헌연구, 여행, 선교활동을 통해서 여러 방식으로 접할 기회를 보유했음에도, 그의 불교인식에는 변화가 없었다. 그는 여전히 ‘변함없이’ 서구 문명과 기독교, 특히 가톨릭교회를 중심으로 한 민족주의적, 제국주의적 종교관과 세계관에 머물러 있었으며, 특히 독일인의 ‘자기사랑’의 표현이었던 ‘아리아 인종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이 ‘아리아 인종주의’가 그의 불교인식에서 관심 대상을 결정하고 이에 대해 설명하는데 큰 영향을 끼쳤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근대 국가를 유지하는데 있어 가장 포기할 수 없는 영역인 병역의무에 맞서기로 한 개인의 결정을 병역의무를 제도화한 법으로서 지켜내자는 모순으로 인해 유발된 논란은 독일이 건국된 1949년부터 독일이 징병제를 포기하기로 결정한 2011년까지 70년간 지속되었다. 한편으로 병역거부권은 이미 전쟁 직후 제정된 여러 연방주 법들, 1949년 기본법 제 4조 3항, 그리고 뒤이은 1956년의 병역법 25조를 통해서 법적으로 보장되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냉전 체제하 분단국으로서 안보에 대한 위협이 내정에 있어서 상수로 작용하고 있었고, 병역거부자의 수가 증가하여 징병제가 위태롭게 될 가능성을 차단해야 할 실제적인 필요성이 존재했다. 결국, 병역거부자는 병역 거부에 대한 법적 보장과 그에 대한 행정적 억압 사이의 어딘가에 위태롭게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병역거부를 입법부가 인정하고 사법부가 지속적으로 보장하면서도 동시에 행정부를 통해 최소화시켜야 했던 모순적인 상황은 개인과 국가의 관계에 대한 매우 정교하고 다양한 말의 향연을 가능케 했다. 결국, 사민당을 위시한 여러 정당들, 노조, 평화운동 세력, 청년 단체, 신구교를 망라하는 종교단체, 여러 법률전문가 등 주요 사회세력들이 끊임없이 참여했던 병역거부에 대한 논쟁과정은 독일 사회가 “모든 것 위의 독일(Deutschland über Alles)”를 부르짖던 전체주의 체제에서 벗어나서 냉전 체제의 겁박에도 양보할 수 없는 ‘개인의 자리’를 확보해가는 과정을 생생하고 보여주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검정교과서인 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는 국가가 정한 교육과정 세계사교과 내용체제와 준거안에 의거해 단원이 구성되었다. 세계사 교과서의 과제 중 하나는 서구 중심주의를 극복해야 하는 것이고, 서양사 서술의 비중은 줄어드는 추세이다. 교육과정은 사회의 변화과정 속에서 지속적으로 개선되었고, 세계사 교육은 비중이 약화되었으나, 글로벌 시대에 세계사 교육과정의 필요성과 중요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에 따라 세계사 교육은 단순 암기에서 벗어나 주요 개념이나 주제를 중심으로 학습자에게 파악되어야 할 것이다. 오늘날, 국가 및 지역 사이의 인적. 물적 교류가 역사상 그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활발해져, 지구 전체가 하나의 생활권으로 통합되는 이른바 ‘세계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사’는 대한민국의 청소년을 국가 또는 세계의 균형 잡힌 구성원으로 양성하기 위해 필요한 교과목이다. 그것은 현재의 세계가 형성되는 과정과 그 동인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그 속에서 대한민국과 동아시아가 처한 현실을 냉철하게 이해하게 할뿐 아니라, 나아가 통합이 가속화되는 인류 전체의 평화공존에 필요한 가치를 깨우쳐주기 때문이다. 필자는 본 논문에서 세계사 교과서 중 천재교육, 금성출판사, 비상교육 3종을 비교 분석에서, 2009년 개정교육과정 고등학교 세계사교과서에 나타난 독일의 현대사 서술에 대한 관점을 고찰해 보고자 한다. 독일은 양차대전을 일으킨 국가이고 냉전과 데탕트의 시기를 거쳐 통일을 이루었다. 남북한이 분단되어 있는 한국에서 통일을 논의하는 입장에서, 독일의 역사는 중요하게 평가받는 부분이다. 따라서 세계사교과서에 서술되어 있는 독일 현대사는 통일을 대비하고 통일 전후 역사교육을 대비하는 한국의 교육계에 반드시 필요한 연구일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연구는 세계사 교육과정에서 독일사의 효용가치를 ‘통일과 분단’ 같은 한국사와의 연계성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에 더하여 오늘날 공교육과 교과교육 등 공히 민주시민으로서의 가치인 ‘인권’, ‘평화’에 대한 감수성을 아우슈비츠나 전쟁 일반의 비극을 포함한 독일 현대사를 통해 어떻게 함양할 수 있는가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러한 연구는 독일 역사교과서에서 한국의 분단상황을 어떻게 연구하는지에 대한 비교 분석 및 공동 연구와 함께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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