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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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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의 목적은 2차 대전 이후 독일의 남서부는 각각의 점령지를 기준으로 연합군에 의해 바덴, 뷔르템베르크-바덴, 뷔르템베르크-호헨촐 레른으로 분열되어 재편성 되었다. 이러한 분열된 편성으로 남서부 지역의 주민들은 1949년 동서독 분단을 경험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분열은 1951년 주민투표를 통해 마침내 하나의 새로운 바덴-뷔르템베르크 주로 통합되게 된다. 독일 남서부 지역에서 서로 다른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었던 바덴과 뷔르템베르크가 하나로 통합되는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서로 다른 정치적 성향과 경제적 기반으로 두 지역 사 이에는 보이지 않은 벽이 있었다. 하지만 2차 대전 이후 패전국 독일이 미래를 향해 나아갈 길은 다양한 지역의 분열을 극복하고 최대한 통합으로 가야한다는 점이었다. 경제적 목적이었던, 정치적 타협이었던 그 들에게는 지나간 과거에 대한 반성을 통해 끊임없이 현재를 바꾸어야 만 했던 것이다. 각기 다른 입장과 목적으로 다양한 통합의 논의와 함께 남 바덴의 헌법재판소 위헌법률 심사제청까지 거치면서 마침내 하나의 ‘작은 통일’을 이룩하였다. 이러한 ‘작은 통일’은 비록 서독이라는 제한된 국가체제 아래에서 이루어져 많은 이들에게 주목받지 못했고 여전히 역사적 평가 역시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이러한 평가와는 다르게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 탄생은 서로 다른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려온 주가 2차 대전 이후 각 지역 주민들 의 합의와 노력에 의해 마침내 하나의 주로 다시 통합했다는 점에서 그 역사적 의의가 매우 높다. 어쩌면 독일 국민들 마음속에는 과거 어두웠 던 역사의 길을 다시는 경험하지 않기 위해 단결과 통합에 무엇보다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독일인들의 모습과 그리고 그들이 이룩한 통일의 실마리를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통합 과 정에서 충분히 엿볼 수 있다.
이 연구는 1960, 70년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에서 전개된 중등학교과정에서의 교육개혁 양상을 다루고 있다. 이 시기 교육개혁은 당시 서구의 사회경제적 변화와 맞물려 이루어졌다. 1950년대부터 나타났던 경제구조의 변화, 민주주의 확대 등의 새로운 경향이 전통적인 교육시스템의 변화를 요구했던 것이다. 서독사회는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을 위해 낡은 체제를 개혁 하는 것이 요구되었다. 교육개혁과 관련된 여러 선행연구들이 존재하고 있는데, 대개 지역단위의 상황을 다루고 있다. 그러한 연구경향은 각 주가 교육주권을 가지는 독일 연방공화국의 특성으로 인해 교육정책이 지역마다 일정한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개혁의 실제 전개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역적 차원의 연구가 우선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은 교육개혁 역사 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그렇지만 기존 연구들은 대개 짧은 시기만을 제한적으로 다루었고, 주제 역시 ‘종합학교’를 둘러싼 논쟁 또는 대립으로 한정하였다. 본고는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의 학교제도 개혁 과정을 보다 장기적인 시각에서 분석하였다. 무엇보다 주요한 개혁과제 및 쟁점들을 기민당과 사민당의 교육정책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1962년부터 1970년까지의 시기에 양 정당은 타협을 통해 비교적 점진적인 개혁을 진행하였다. 폴크스슐레 개혁을 대표적 사례로 들 수 있다. 그러나 양 당이 추구하던 개혁의 목표는 근본적으로 달랐고, 1972년에 주의회에서 벌어진 ‘종합학교’ 도입을 둘러싼 갈등은 격렬한 대립으로 발전한다. 사실상 1973년 이후부터 더 이상의 합의는 어려워진다. 사민당/자민당 연립정권은 1970년대 중반 이후 ‘협력학교’ 도입을 통해 개혁을 관철시키려 했으나, 기민당과 보수진영의 저항 그리고 결국 1978년 ‘국민청원’으로 학교제도 개편이 좌절되면서 교육개혁은 사실상 중단되게 된다. 결국 개혁의 전개 양상은 1960년대 초부터 1970년대 말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거대한 흐름이었다.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베버는 세계 주요종교를 비교 분석하였으며, 그 일환으로 불교에 관한 연구를 남겼다. 사실 그의 불교연구는 서구적 근대성의 출현과 종교의 관계를 밝히고자 한 종교사회학이 비교연구의 차원에서 불교라는 연구대상으로 확장된 것이었다. 이 글은 이런 그의 불교연구가 근대성 창출을 위한 경제윤리 창출에 실패한 불교라는 결론으로 이어졌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였다. 그리고 이런 그의 결론이 도출되는 과정에는 그의 불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깊숙이 작용하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이 글은 이런 그의 불교에 대한 인식이 당시 불교연구자들의 불교이해를 수용한 데 기인하며, 더욱이나 짧은 불교에 대한 연구사로 인해 불교에 대한 충분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못한 시대적 한계에 따른 것이었다는 사실을 밝히고자 했다. 실제 그의 불교연구는 선행한 불교문헌학과 인도학에 주로 의지하고 있었고, 따라서 당시 대부분의 불교전문가들이 가지고 있었던 불교에 대한 부정적 이해를 따르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불교가 지식인의 종교이며, 이로 인해 평신도의 윤리가 발전할 여지를 갖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이었다. 물론 베버는 당시 독일 불교연구자들의 주된 관심분야였던 초기불교를 넘어 세계종교로 발전한 불교를 연구대상으로 삼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양한 발전을 이룬 불교의 문화적 측면을 밝혀내지 못했으며, 불교는 세계 각지역으로의 포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식인을 비롯한 종교적 엘리트의 현실탈피적 구원론으로 머물렀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사실 이는 19세기 지식인으로 베버가 피할 수 없었던, 여전히 아시아의 불교문화 권에 대한 연구가 제한적인 시대적 한계에 따른 것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오늘날 불교는 “하나의 문화체계”이기 때문에 세계의 방대한 지역에서 다양한 세속적, 정신적 영향을 미친 종교로 이해되고 있다. 베버의 경우에서 드러나듯이 과거 서구인들이 동양의 종교를 대하는 데 있어 자기중심적인 타자인식의 한계로 인해 불교를 제한적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었다면 세계종교로 발전해 간 불교의 다양한 문화적 측면과 윤리적 역할을 밝히는 것은 지금까지 베버연구로부터 도출해 낼 수 있는 새로운 과제임에 틀림없다.
최근 5-10년간 국가사회주의의 흑인 피해자를 주인공으로 삼은 소설과 장편영화 등 수많은 픽션들이 출간되었다. 여기에는 흑인 미국인을 나치 강제수용소에 배치하는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아프리카계 캐나다 소설가의 작품, 정치 범죄 이야기로 유명한 프랑스 작가 디디에 대닌크스 (Didier Daeninckx)의 소설, 아프리카계 영국 영화 제작자의 영화가 포함된다. 이 글 에서는 재즈와 “인간동물원”과 같은 일부 텍스트와 주요 비유(trope)에 대해 비판적으로 고찰하며, 마이클 로쓰버그 (Michael Rothberg)의 다방향 메모리 개념의 관점에서 볼 때 그 작품들이 어디까지 이해될 수 있는지를 포함하여, 그들이 21세기의 기억문화의 어느 위치에 있는지를 고찰하고자 한다. 흑인 홀로코스트의 경험에 대한 최근의 역사적 연구를 바탕으로 하는 ‘공통 지식’의 양이 늘어나는 데서 부분적으로는 분명해지고 있듯이, 아 작품들은 또한 홀로코스트, 식민지 경험, 그리고 노예제도 이후의 경험 사이의 흥미로운 삼각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흑인 작가들과 영화제작자들은 아프리카 디아스포라 주체들의 현재 상황에 대해 성찰하기 위해 나치 과거에 대한 그들의 비전을 활용하지만, 그들 각각의 내러티브들은 전세계 흑인 디아스포라들 내의 상이한 입장들로부터 나오고 있기도 하다.
본고는 역사성 범주의 급진화를 통해 역사학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실마리를 얻고자했다. 근대적 의미의 역사란 과부화된 시간의 체계로, 인간의 의지에 의해 초래된 모든 우발적인 사건을 역사의 선형적 궤도 안에 말끔하게 편입시켰지만, 경험공간으로서의 현재의 입지를 극도로 축소시킴으로 써 과거와 현재를 아무런 이념적 매개도 없이 착종시키는 ‘현재주의’라는 역설적 결과를 얻었다. 역사적 시간의 이러한 자기모순을 극복하려면 이념/ 서사를 끊임없이 와해시키는 낯선 타자인 역사성에 관한 제반 이론들로부터 영감을 얻을 필요가 있다. 프로이트의 ‘역사적 트라우마’ 이론은 인류 역사의 시원에 자리하고 있는 근원적 트라우마를 발굴함으로써 반복되는 과거의 생경함을 역사의 본령으로 규정했으며, 하이데거의 ‘본래적 역사성’ 이론도 과거-현재-미래 대신 ‘기재-현재-장래’라는 색다른 시간질서를 제시함으로써 희망찬 미래가 아니라 이미 있어왔던 실존의 반복되는 가능성들에서 역사의 본령을 찾았다. 이들의 이론은 역사학의 궁극적 지시대상이 과거도 미래도 아니고 오로지 현재의 순간에 드러나는 열린 가능성, 즉 역사성임을 깨닫게 해준다. 역사학은 역사성 범주를 새롭게 받아들임으로써 과연 ‘역사적으로 사유’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깊은 성찰의 기회를 얻는다. 역사는 이념/서사로 환원될 수 없으며 늘 외부적 요소의 충격적 개입에 의해 변질된다. 이념/서사의 ‘외부’로서의 역사성은 현재의 거울이나 기원으로서의 과거, 혹은 장밋빛 미래가 아니라 오히려 현재의 한가운데에 출현하는 생경한 과거에 주목하게 만든다. 이를 통해 비로소 구조와 우연의 교차로에서 역사적 진실에 대해 사유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다. 이는 또한 ‘쓰기’라는 역사학 고유의 재현양식에 대한 성찰을 도모하는바, 재현과 그 임계점으로서의 현실 사이에서 진실을 찾는 과정을 통해 역사서술은 역사성의 내적 계기를 이루게 된다. 문화사 서술이야말로 이러한 원리에 가장 부합하는 접근법으로, 기존의 이념/서사 외부의 시간들과 그 시간을 살아온 사람들의 정치적 결단과 행위의 자유를 위한 자리를 마련하고자한다.
이 논문은 1차 세계대전 이후 나치 시기까지 독일로 유학한 식민지 지식인들의 독일인식을 분석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독일인식은 유학생들이 한국에 보낸 글과 귀국 후 회고, 설문 등이 실린 잡지 및 일간지를 중심으로 조사되었다. 일제강점기 독일로의 유학은 의외로 일본과 독일관계가 좋지 않았던 바이마르공화국 시기에 활발히 이루어졌다.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 독일은 유학생들에게 매력적인 곳이었다. 독일은 저렴한 비용으로 유학할 수 있었던 곳이자 배일감정을 공유한 곳이었고, 사회주의 운동을 비롯해 정치활동의 실험장이었다. 이곳에서 유학생들은 전후 정치적 혼란과 경제위기를 이겨 내는 독일인의 국민성을 보았고, 공화국을 지키려는 청년들의 기개를 느낄 수 있었다. 이러한 독일의 국민성에 대해 유학생들은 조국의 재기를 위해 본받아야할 것으로 한국에 소개했다. 국민성은 나치 시기에도 독일유학 지식인들 사이에서 높이 평가받았던 요소였다. 차이가 있다면, 바이마르공화국에서 국민성은 전후 위기의 독일을 재기시킬 수 있던 힘인 반면, 나치 시 기에는 히틀러와 나치로 대변되어 전쟁을 이끄는 힘이 되었다. 일독관계가 동맹체제로 바뀌고 2차 세계대전이 전개되면서 독일의 이미지는 그에 따라 전이되어 식민지에서 소개되었다.
본 연구의 목적은 일찍이 노동시장 불안정과 인구고령화를 경험한 독일의 고령자 사회·경제활동 현황을 파악하고, 고령자 고용촉진정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Initiative 50plus와 Perspective 50plus 정책을 분석하여 우리에게 주는 정책적 시사점을 모색하는데 있다. 분석결과 독일 고령자의 경제 활동참여율이 빠르게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다음과 같은 요인들에 기인한다. 첫째, 2001년에 EU가 채택한 ‘Stockholm target’ 이후 고령근로자의 고용률 50% 달성을 위한 독일 정부와 노·사의 적극적인 노력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둘째, 공적연금 수급연령의 상향조정(65세에서 67세)과 조기연금의 수급요건 강화 및 연금액 삭감이라는 제도적 변화에 기인한다. 셋째, 독일 경제가 2008년 금융위기를 극복하고 강한 경제를 구가하고 있으며, 노동시장 상황도 호전되었다. 넷째, 과거와 비교할 때 현재 고령자 그룹으로 진입하는 구서독 지역 여성 코호트들(cohorts)은 젊었을 때 이미 안정적인 고용상태에 있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다섯째, 지속적인 인구고령화로 인해 1999년 이후 50세 이상 근로자의 경험과 능력이 더욱 중요해졌다. 여섯째, 2007년 이후 고령자 고용률의 급격한 성장은 Initiative 50plus 등 고령자 대상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이 고령근로 활성화에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하였기 때문이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독일의 고령자 고용촉진정책의 분석 및 평가를 통해 다음과 같은 시사점을 제시하였다. 첫째, 실질은퇴연령과 공적연금 수급개 시연령 간 격차를 줄일 수 있는 대책마련이 필요하다. 둘째, 노인일자리 창출을 넘어 각 기업이 실질적으로 고령자를 채용할 수 있도록 재정적 지원을 확대 하는 것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셋째, 독일의 Perspective 50plus에 서 나타난 공공과 민간, 지역과 중앙의 네트워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넷째, 기간제 근로계약 요건의 완화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본 논문은 브레히트의 생산개념을 연구하는 작업이다. 브레히트의 생산 개념은 아주 광범위한 영역에서 확대 적용되어진다. 브레히트의 생산 개념에는 물질적 생산 뿐 아니라, 자유, 정의 등이 포함되고 더 나아가 선한 의지와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자세 및 도움이 되고자 하는 자세도 포함된다. 브레히트는 이렇게 확대된 생산 개념을 표현하는 데 ‘친절’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브레히트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친절이라는 단어에는 벼농사나 기계 제작과 같은 생산 활동도 포함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모든 생산력을 모든 속박으로부터 해방시키려는 투쟁은 인간의 선의 및 친절이 가능한 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브레히트의 생산 개념에 대한 연구는 오늘날 신자유주의의 상황에서 많은 시사점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신자유주의 체제의 극심한 경쟁 하에서 일자리가 불안한 많은 사람들에게 노동은 생존을 위한 수단이 되어 버렸고, 몇 년 전 지하철 안전문을 수리하다 죽은 소년의 예에서 나타난 바 와 같이 생존을 위한 노동을 하면서 생명을 잃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본 연구에서 규명된 브레히트의 생산 개념은 자발성을 바탕으로 한 노동으로 자아실현과 행복한 사회화의 과정을 내포한다. 신자유주의 체제하에서 사람들은 극심한 경쟁과 불안감 속에서 강요된 노동을 하면서 서로에게 무관심하거나 적대적인 존재가 될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상황 속에서 브레히트의 생산 개념은 인간이 서로에게 친구가 될 수 있는 사회상을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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