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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구석기학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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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에 전곡리가 최초로 발굴된 이래 임진-한탄강 유역 주먹도끼가 약 30만년의 연대를 가진다는 주장인 소위 ‘중기홍적세설’이 지속되어 왔다. 이러한 중기홍적세설은 전곡리 유물 포함층의 연대를 결정하는데 다양한 논쟁을 불러왔으며, K-Ar 연대측정법의 본질적 한계와 용암 분출 이후 불과 짧은 시간이 지나고 주먹도끼가 제작되었다는 순진한 전제를 기반으로 한다. 따라서 주먹도끼의 액면 연대를 실연대보다 한참 올려보게 만들어 왔다. 지난 40년 동안 임진-한탄강 유역 주먹도끼 연구사를 조망하면서 중기홍적세설의 여섯 가지 전제를 검토한 결과, 이 지역 주먹도끼의 연대는 실제 발견 고도보다 한참 아래에 해당하는 잘못된 유물 포함층의 정보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렇게 잘못된 유물 포함층 정보 때문에 실제보다 훨씬 오래된 연대로 측정될 수 밖에 없는 기본적인 한계가 있다. 임진-한탄강 유역의 다양한 절대연대 측정치와 지질학적 해석은 주먹도끼의 정확한 위치 정보에 좌우되지만, 아직까지 이러한 주먹도끼의 원퇴적상은 연대 측정에 거의 반영되지 못 한 셈이다. 2009년에 발굴된 전곡리 중2-5호선 지구의 주먹도끼 분포 고도(59-60m)를 기준으로 하면, 실제 주먹도끼 연대는 기존의 중기홍적세설에 근거한 연대보다 훨씬 어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전곡과 차탄현무암으로 구분되는 두 개의 용암대지 연대는 상부 토양층의 주먹도끼 연대를 결정하는 데 아무런 기여를 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아직까지 주먹도끼의 결정적인 연대는 파악할 수 없지만, 현재까지 발견된 퇴적층 내 주먹도끼의 위치가 AT를 반출하는 첫번째 땅갈라짐면 바로 아래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그 연대는 적어도 후기홍적세 상한을(125kya) 상회하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또한 기존의 중기홍적세설은 많은 문제와 착오를 안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학계에 확산되는 것을 방지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임진-한탄강 유역 주먹도끼의 대안적 설명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더 이상 중기홍적세설의 신뢰도를 인정하지 않고 파기하는 것이 적절한 선택일 것이다. 따라서 전곡리 발굴 40주년은 이 지역의 새로운 연구시작 영년으로 새롭게 기념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찍개(chopper and chopping-tool)란 주로 찍는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 날을 제작한 석기를 말하며, 찍개를 연구하는 방법은 찍개를 외면찍개와 양면찍개로 나누어 분석하려는 방법과 이 두 가지 유형의 석기를 찍개라는 단일 명칭을 사용하면서 그에 따른 제작기법이나 형태상의 특징을 밝히려는 연구방법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찍개가 처음 확인된 공주 석장리유적에서 최근까지 여러 구석기유적에서 찍개가 출토되었고, 그동안 찍개에 관한 연구는 주로 그 개념 및 형식 분류에 관한 연구가 진행됐었다. 이러한 연구는 기존에 유적별·연구자별로 개념 및 형식 분류기준이 다르게 적용되어왔다. 따라서 앞으로 구석기유적에서 출토되는 찍개를 체계 있게 분석하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기준을 설정하고 제시하는 작업이 꼭 필요할 것이다. 본 글에서는 객관적인 기준을 설정하기 위해 청원 만수리 구석기유적 1·2지점에서 출토된 찍개 80점(층위가 연결되는 것으로 파악된 1지점 3유물층 출토 찍개 29점, 2지점 1유물층 출토 찍개 51점)을 연구대상으로 하여, 찍개의 형태적·기술적인 특징을 밝힐 수 있는 여러 가지 속성들을 크게 몸체의 성격, 크기와 무게, 날의 성격 등으로 나누어 분석하였다. 나아가, 청원 만수리 구석기유적 1·2지점의 찍개를 진천 송두리 구석기 유적 1문화층(44점)과 대전 용호동 구석기유적 4문화층(112점)에서 출토된 찍개와 비교·분석해 각 유적 간의 차이점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찍개를 제작하는데 사용된 돌감의 성격에서는 유적별로 차이를 보인 반면에 찍개의 크기와 무게, 날의 성격에서는 세 유적 모두 비슷한 양상을 보이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유적별로 돌감의 성격이 다른 이유는 각 유적이 위치한 지역의 지질환경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생각되며, 유적이 속해 있는 주변 환경이 유적마다 다르므로 나타난 결과로 생각된다. 크기와 무게, 그리고 날의 성격이 비슷한 양상을 띠는 이유는 각 유적의 석기제작 집단이 찍개의 기능과 연관된 유사한 석기제작 전통을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198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흑요석 연구를 통해 흑요석은 주로 좀돌날 제작을 위해 효율적으로 이용되었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그러나 기존의 연구는 흑요석제 석기의 시·공간적 변화상을 규명하는 데 미흡하였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층위를 기준으로 한 시간적 차원에서 흑요석 원석의 획득에서부터 석기 제작과 폐기에 이르는 과정의 공간성을 밝히고자 하였다. 석기군 구성의 차이는 층위라는 시간적 요소에 따른 제작 기술적 발전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흑요석은 최소한 남한 지역 내에서는 충분히 공급될 수 없는 돌감이었으므로 유적으로 반입된 흑요석의 양, 석기 형식, 제작 유무 등이 각 유적의 흑요석제 석기군을 상이하게 만드는 또다른 요소로 작용하였다. 유적별 석기 수량과 총 무게를 기준으로 공간적 차원을 이해하였을 때, 각 유적의 흑요석은 단발적으로 이용되었다는 공통점이 확인된다. 원석이 반입된 유적을 중심으로 다양한 석기군 유형이 혼재되어 있다. 그러나 늦은 시기로 갈수록 더욱 넓은 범위에서 흑요석제 석기가 확인된다. 결국 단발적으로 이용된 흑요석을 토대로 구성된 석기군은 각 유적으로 반입된 돌감의 양에 영향을 받았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희소한 돌감인 만큼 시간이 지나며 점차 제작 기술의 진전과 공간적 이용 범위의 확장이 이루어졌던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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