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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구석기학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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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연이굴 유적은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 구래리에 자리한 동굴유적으로, 연세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2015년 6월말부터 약 30일간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발굴을 통해 석기와 동물화석을 수습하였고 몇몇 층위에서 약 14,000~17,000 BP에 해당하는 절대연대값을 얻었다. 연이굴 유적은 지금까지 발굴·조사된 다른 구석기시대 동굴유적과 연계하여 분석할 수 있는 자료이다. 이 글을 통해 연이굴 유적에서 출토된 동물화석의 종적 구성을 정리하여 유적이 형성된 시기의 동물상과 자연환경을 밝히고자 한다. 연이굴 유적에서 출토된 동물화석은 총 182점으로 나타났으며, 이 가운데 대형포유류에 속하는 뼈는 83점이었다. 종적 구성은 사향노루(Moschus moschiferus), 노루(Capreolus capreolus), 사슴(Cervus sp.), 산양(Naemorhedus goral), 곰(Ursus arctos), 토끼(Lepus sp.), 뒤쥐(Sorex sp.), 비단털쥐(Cricetulus sp.), 갈밭쥐(Microtus sp.), 박쥐(미분석), 지빠귀(Turdus naumanni)로 이루어져 있다. 최대뼈대수가 가장 많은 종은 사향노루(36점, 43.4%)와 산양(32점, 38.6%)으로, 두 종의 뼈대수가 대형포유류 뼈 전체의 82%를 차지한다. 어린 개체를 포함한 종별 최소마리수는 산양 6마리, 사향노루 6마리, 곰 3마리, 사슴 3마리, 노루 1마리, 토끼 1마리로 총 20마리를 확인하였다. 자른 자국(Cut marks)은 산양, 사향노루, 곰, 사슴의 뼈에서 확인하였으며, 자국이 나타난 뼈의 개수는 30점(20.8%)이다. 자국 유형은 긴뼈의 대롱 부분에 산발적으로 분포한 짧고 얕은 자국이 대부분으로, 자국의 위치와 유형을 고려했을 때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도살·해체 행위가 이루어지진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 글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다룬 대형포유류는 산양과 사향노루이다. 지금까지 발굴·조사된 구석기시대 동굴유적에서 가장 많이 확인된 동물이 사슴과(科) 동물인데 반해 연이굴 유적에서는 산양과 사향노루가 가장 높은 출토 비율을 차지한다. 이러한 차이가 생긴 원인은 각각의 동물이 가지는 서식 특성과 관계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를 분석하면 유적이 형성될 당시의 자연환경을 복원하는 것이 가능하다. 따라서 연이굴 유적 주변의 자연환경은 산양과 사향노루가 살기 적합한 서늘한 기후의 가파른 산악지대였다고 추정할 수 있다.
이번 연구는 최근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경기 광주 유정리 구석기유적을 대상으로 GIS분석을 시도하였다. GIS분석을 통해 유적의 지형, 지질, 입지 변화 양상, 지형 기복 현황 등을 종합하여 유적의 형성과정과 범위 추정을 위한 시험적인 연구를 진행하였다. 광주 유정리 구석기유적은 경기도 광주시 도척면 유정리 426번지 일원에 위치하고 있다.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총 7개의 지층이 드러났으며, 이 안에서 3개의 유물층이 확인되었다. 1유물층과 2유물층에서 나온 대부분의 유물은 조각과 부스러기이며, 잔손질된 도구는 각각 50여 점 정도이다. 3유물층에서는 몸돌과 격지, 조각을 포함하여 대체로 몸체 큰 석기가 출토되었다. 이러한 광주 유정리 구석기유적을 대상으로 GIS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유적의 형성과정을 유추하였으며, 나아가 유적의 추가적인 범위를 예상해보고자 하였다. 그 결과, 광주 유정리 구석기유적은 뒤쪽(남쪽)으로 선캠브리아기 흑운모편마암의 산악지가 배후를 막아주고, 앞(남쪽)으로는 남서에서 북동방향으로 형성된 넓은 홍적대지가 형성되어 있다. 홍적대지를 너머 북쪽에는 비교적 넓은 유량을 가지는 노곡천이 흐르고 있어 용수를 취득하거나 석재 및 식량을 채집하기 용이한 좋은 입지 조건을 가지는 것으로 판단된다. 광주 유정리 구석기유적의 형성과정을 북반구 기후변화 곡선과 연관하여 검토하면, MIS 3기에서 최종빙기최성기(LGM)을 지나 점차 온난한 기후까지 총 3개의 유물층이 확인되었다. 이러한 유물층별 양상은 GIS분석을 통해 기복현황, 퇴적양상, 유물분포 등의 변화와 형성과정을 파악할 수 있었다. 나아가 유적의 범위가 남쪽과 서쪽으로 확장되는 비교적 큰 규모에 해당될 것으로 추정하였다. 이번 연구를 통해 과거 지형자료, 지질도, 토양도 등으로 부족했던 고지형에 대한 복원을 드론를 활용한 현장조사 및 GIS분석 결과를 통해 보다 명확한 자료를 제시할 수 있었다.
이번 연구는 청주 오송 만수리와 봉산리 유적군 일대의 형성시기 및 유적의 연대에 대하여 검토해보고 새로운 해석 방법을 시도 하고자 하였다. 유적군의 퇴적층은 절대연대측정 결과로 미루어 보아 최소 10만년 전∼1.5만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판단되는데, 각 유물층간 석기의 제작기술적인 차이가 거의 없다. 고인류가 다기간동안 점유하여 폐기된 석기들에 의해 순차적으로 구석기 문화층이 형성된 것 보다는 최소 약 10만년 전, MIS 5기 이상의 이른 시기에 유사한 석기 문화를 가진 인류의 점유가 이루어 졌고, 그 시기동안 집중적으로 석기 사용이 이루어졌음이 추정된다. 그리고 그 석기들이 폐기된 후 여러 층에서 재퇴적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석기들의 이동이 이루어 졌음이 확인된다. 그 근거로는 구석기유적의 변형과정 및 유적형성모델에 따라 석기유물의 집중도와 밀집도가 상대적으로 매우 낮게 나타났으며, 소형석기 비율 역시 매우 낮게 나타났다. 석기 제작과 관련하여 석기제작소라 할 만한 석기집중부가 거의 확인되지 않았을 뿐더러 부합유물 또한 거의 확인되지 않았다. 부합 유물은 지역 일대 전체 유물의 약 0.006% 정도로 매우 소량 확인되었는데, 부합유물 중 일부는 약 2만년의 시간차를 둔 것으로 추정되는 서로 다른 퇴적층에서 69m 거리에 떨어져 확인된 바도 있기 때문에 유적의 형성과정에서 석기의 이동이 발생했다는 근거를 더하여 준다. 석기의 이동의 근거는 석기 표면에 발생한 마모도에서도 확인되었다. 오송 봉산리 유적에서 실시한 마모도 분석 결과 상부 퇴적층 유물의 마모도가 하부 퇴적층 유물의 마모도보다 더 높은 것으로 확인된다. 구석기 유적은 대부분 수 만년 동안의 자연변화를 겪은 퇴적층과 잔류성 유물의 집합적인 문화유산이다. 앞으로 후퇴적과정을 통해 형성된 유적의 해석이 대한 다양한 고고학적 연구들이 지속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선사시대 인간이 보편적으로 제작하고 사용하였던 도구인 석기는 인류의 물질문화와 진화를 파악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연구 대상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므로 현재 고고학자들은 선사인들에 의해 남겨진 석기를 바탕으로 그들의 생활상을 복원하는데 있어서 다양한 연구 방법을 적용하고 있다. 이 가운데 쓴자국 분석(use-wear analysis, traceology)을 통한 기능 연구는 당시 선사 사람들이 다양한 작업 활동에서 사용하였던 석기에 남겨진 미세 흔적들을 현미경을 통해 분석함으로써 선사 도구의 쓰임새를 유추학고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석기의 기능 연구는 당시 선사인들의 삶의 모습과 생계 방식을 재구성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해 준다. 공주 석장리 유적에서 출토된 석기 가운데 416점을 선별해 석기 쓴자국 분석을 하였다. 그 결과 47점 (약 11.3%)에서 사용에 의해 형성된 것으로 볼 수 있는 흔적들이 관찰되었다. 단단한 동물재료와 관련된 흔적들은 긁개, 밀개, 새기개, 격지 등 여러 종류의 석기에서 관찰되었으며, 부드러운 동물재료는 밀개에서 주로 확인되었다. 도구의 사용 방법으로는 긁기, 자르기, 다듬기 등 여러 형태로 사용되었다. 한편, 잔손질석기의 경우 장시간 사용되면서 흔적이 형성되는 반면, 격지의 경우 필요에 따라 단시간 일회성으로 사용되어 잘 발달한 흔적이 드문 것으로 확인되었다. 우리나라 및 유럽의 다른 유적에서 실시한 석기 쓴자국 분석과 비교한 결과 석장리 유적은 선사인들에게 장기간 점유된 거주 중심의 유적으로 볼 수 있다.
논문은 구석기시대 주먹도끼와 관련한 몇 가지 문제를 진화이론의 시각에서 검토하고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주먹도끼는 아프리카와 유럽, 그리고 아시아에서 장구한 시간 동안 여러 돌감으로 만들어지고 쓰였다. 주먹도끼라는 석기형식에도 폭넓은 변이가 있다. 특히 후기 아슐리안 석기전통의 여러 유물은 단순히 기능적인 효율성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들 만큼 정교하고 균형 잡힌 형태를 갖추고 있다. 몇 유적에서는 양면으로 가공했으면서도 쓰이지 않은 것이 분명한 유물이 놀랄 만큼 많이 있기도 하다. 이 같은 일견 모순된 현상을 설명하고자 몇몇 연구자들은 성선택이나 인지능력의 진화와 같은 측면을 강조한 바 있다. 이 글은 여기서 더 나아가 진화이론에 입각한 설명모델을 제안한다. 특히 “값비싼 신호(costly signaling)”와 “낭비적 광고(wasteful advertising, 또는 과시적소비)” 모델과 개념을 바탕으로 과잉디자인과 지나치게 많은 유물의 문제에 접근한다. 값비싼 신호와 신뢰를 얻는 행위는 동물 및 영장류에서도 널리 보이기에 초기인류의 행위패턴으로 자리 잡았을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르면, 사회적 경쟁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값비싼 신호, 그리고 과도한 물적 소비와 전시 행위는 사회적 위신이나 짝짓기 기회를 높일 뿐 아니라 집단의 규모, 곧 인구를 적정한 수준으로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예측하기 힘든 환경에서 “낭비 행위”는 그렇지 않은 행위보다 더 적응도가 높다. 당장의 비생산적 영역에 투여하는 행위는 일견 낭비적일 수 있지만, 예측할 수 없이 좋지 않은 환경조건이 지속된다면 어렵지 않게 생산적 행위로 전환할 수 있기에 진화적으로도 안정된 전략(evolutionarily stable strategy)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것이다. 한편, 그토록 오랜 시간, 광대한 지역에서 다양한 돌감으로 만들어진 기본토대는 “다용도 기능”을 가진 도구이자 격지 생산에도 유용한 몸돌이었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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