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기관 내 간행물

  • 간행물 내 검색 검색

여성문학연구

검색결과 :
19
전체선택 Endnote Refworks
이 글은 『여성혐오를 혐오한다』로 대표되는 우에노 치즈코의 번역물에 대한 분석을 중심으로 페미니즘 지식문화의 동아시아적 유동과 변환의 의의를 탐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한국에서 동아시아론은 20여 년간 토론되어 온 지식사회학의 주제이지만 2015년 페미니즘의 대중화에서 두드러지듯 페미니즘은 여전히 한국 사회를 설명하고 설득하고 변화시키기 위한 도구로 집중되고 있다. 이에 본고는 동아시아를 번역 관계적 관점에서 조망하면서 우에노 치즈코의 저작과 함께 1995년의 시간성과 2015년의 시간성을 병치하였다. 이를 통해 2015년 이후 페미니즘의 전례 없는 열풍 속에서 목격되는 일부의 경향을 젠더-본질주의라는 이름으로 문제삼고 이러한 경향이 발전의 대상으로 아시아를 동원하고 이를 국내외적으로 수용한 1995년의 효과임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이는 혐오를 병리화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우에노 치즈코의 저작 『여성혐오를 혐오한다』와 한국 혹은 아시아와 일본의 동시대성을 거부하는 『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가 내재한 문제와 겹쳐진다. 이에 본고는 보편적 여성 인권 담론에 대한 포스트식민주의적 성찰을 통해 젠더 본질주의 페미니즘에 의해 강화되는 아시아 페미니즘을 경계하고 역사적 시간성을 고려한 정치적 저항의 가능성을 만들어낼 것을 촉구하였다.
본고에서는 일본 페미니즘을 대표하는 연구자이자 한국의 페미니즘 운동과 가장 활발히 교류해 온 활동가이기도 한 우에노 지즈코가 한국 페미니즘 연구자들과 나눈 교류의 궤적을 좇았다. 특히 한일간 페미니즘의 소통과 연대를 통한 순환의 가능성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어 온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어떻게 논의되었는지에 주목하여 각각의 교류를 유형화하여 제시했다. 우선 조한혜정과의 교류에서는 아시아의 가부장제, 내셔널리즘에 대한 페미니즘 비판이 공동의 과제로 인식되었고 민족과 국가를 상대화하고 개인과 시민을 강조하는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기반이 공유되었다. 하지만, 공동의 과제이어야 했을 군사주의나 전시 성폭력 문제는 회피된다. 양자의 회피 논리는 가해와 피해의 이분법의 한계, ‘위안부’ 문제의 내셔널리즘에의 종속에 대한 비판이었다. 하지만, 내셔널리즘을 비판하고 젠더 문제에 초점을 맞춘 우에노의 ‘위안부’ 문제 인식이 식민지 지배 책임, 전쟁 책임을 비가시화하여 역사수정주의에 취약하다는 것은 박유하와의 온정주의적인 교류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 근본 원인은 식민주의를 간과하고 보편주의를 강조하여 일본군 ‘위안부’ 운동을 뒷받침해 온 탈식민주의 페미니즘의 문제의식과 어긋난 데에 있다는 것을 김부자와의 논쟁에서 알 수 있다. 결과적으로 우에노 지즈코는 일본군 ‘위안부’ 운동에 관한 한, 한국의 교류 상대자들과 그 차이를 인정하면서 평등한 관계를 전제로 하는 공투에는 지속적으로 실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의 저널리스트 이토 시오리(伊藤詩織)는 2015년 당시 TBS 방송국 워싱톤 지국장이던 야마구치 노리유키(山口敬之)를 준강간 용의로 고발하였고 2016년 불기소처분을 내린 검찰에 이의신청을 했다. 2017년 5월에는 기자회견을 열어 야마구치에 의한 강간 피해를 세상에 알렸고, 그후 책을 간행하여 성폭력 피해뿐만 아니라 일본경찰의 2차가해와 사법제도의 문제점 등을 고발했다. 이토의 고발은 일본 #MeToo 운동의 선구적 사례로 해외에서도 널리 알려졌지만, 한편에서 세련된 외모에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전형적 ‘피해자성’을 벗어나는 이토는 일본사회에서 비난과 협박의 대상이 되었고, 결과적으로 일본을 떠나게 되었다. 이 글에서는 #MeToo 운동의 배경으로서 1990년대 후반 이후 일본 페미니즘과 그 백래시 과정에 주목하면서 사회 전반에 걸친 정치적 보수화와 개개인을 둘러싼 신자유주의적 재편이 어떻게 맞물리면서 #MeToo 운동을 비가시화했는지 살펴본다. 다시 말하면 일본의 #MeToo 운동의 전개과정을 신자유주의-신보수주의 시대 포스트페미니즘의 정동과 함께 검토한다. 한편최근 수년간의 한국의 페미니즘 리부트와 #MeToo 운동이 일본에도 소개되면서 위안부 문제를 매개로 하여 새로운 지적 교류와 정동적 순환이 일어나고 있다. 『82년생 김지영』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을 비롯하여 한국의 페미니즘 작품과 사회운동을 참조대상으로 삼는 일본 페미니즘의 새로운 시선과 그 소통의 가능성 또한 함께 검토한다.
이 논문은 2018년 시작된 미투 운동 이후 한국사회에 어떤 실질적인 변화가 있었는지를 살펴보고, 이를 토대로 포스트 미투 운동 시대를 전망해보고자 했다. 성폭력 관련 사건의 가해자에 대한 법적 처벌 자체도 쉽지 않지만, 법적 판결만으로 미투 운동의 성취를 말해도 좋은지, 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이나 미투 운동의 성공이란 과연 무엇인지 묻고자 했다. 성의 위계질서에 대한 전면적인 문제제기인 미투 운동이 법적 공방으로 납작해지는 동안 공동체에서 사라지는 피해자에 대한 논의는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묻고자 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입각해서 미투 운동이 개별 공동체의 성격에 따라 다른 대처법이 요청되기 시작했음을 지적하고 이에 따른 대처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아울러 가해-피해의 권력 차이로 법적 공방을 거치면서 점차 문단 내 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에 대한 기록이 누락되고 왜곡되는 지점들이 생기기 시작했음을 지적하고 이에 따라 사건의 다시 쓰기와 사건에 대한 아카이빙 작업의 절실한 필요성을 지적했다. 말하기와 쓰기 그리고 연대의 방식으로서의 아카이빙 작업을 통해 미투 운동 이후를 논의할 수 있지 않을까 전망해 보았다.
중국에서 미투는 2018년 년 초부터 ‘지진’처럼 중국사회를 뒤흔들었다. 그러나 중국정부의 신속한 ‘Me Too’검색어 차단으로 미투발생 이후의 전개상황은 검색이 불가능해져 본 연구는 우회적으로 ‘성적 침해’, ‘성적 괴롭힘’, ‘교사의 직업의식’, ‘공익’이라는 네 키워드를 통하여 글로벌 미투운동과 중국사회의 변화를 고찰하였다. 중국 미투는 익명으로 이루어졌으며 ‘교육계’와 ‘공익’영역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하였고 그 해결은 위로부터의 강력한 징계(해고)형식을 띠었다. 그러나 강력한 처벌에도 불구하고 가해자는 범법행위를 인정하지 않고 피해자는 상처를 치유받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미국발 미투에 앞서 중국에서는 2014년 샤먼대학 성침해 고발 사건을 계기로 ‘성 침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달라지기 시작하였고 여성계에는 ‘남녀평등권’과 ‘성적 자유’를 지지하는 상충되지만 ‘발전된’ 입장들이 표명되었다. 이 중국판 미투를 계기로 정책과 학문영역에 새로운 움직임이 가시화되어 법학계에서는 기존의 성중립적이고 행정처리중심인 ‘기율심사’방식의 한계를 지적하며 미국식 소송을 통한 처벌을 차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중국의 미투는 무엇보다 2000년대 이후 시행된 국가발전전략과 밀접한 관련 하에 이해되어야 한다. 수많은 가해자 가운데 ‘선별적’으로 처벌대상이 된 교육계인사들은 공통적으로 ‘장강학자’ 신분으로, 이들은 중국 정부에 의해 막대한 연구 기금 혜택을 누린 대상들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투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인권침해’가 아닌 ‘교사로서의 직업의식’ 결여라는 이유로 처벌되었으며 그 결과 인권침해와 성인지 감수성의 보편적 발전은 어려웠다.
본 논문은 2018년 이후 인터넷을 중심으로 대두한 ‘탈BL’ 담론이 어떤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등장했는지를 고찰하고,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여 분석하고 있다. 탈BL은 보이즈 러브(Boys Love, BL)을 탈출하거나 버리자는 운동으로 BL의 다양한 문제를 비판하고 궁극적으로는 BL의 소비와 창작을 멈추자는 의미를 갖는다. 한국사회에서 BL은 1990년대 일본에서 유입되어 수용되었고, 2000년대에는 문화산업에서 적극적인 소비자로서 BL팬덤이 부각되었다. 이런 배경 위에 2010년대 이후 후조시의 자기성찰과 페미니즘 리부트의 영향권에서 탄생한 탈BL은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는데, 각각 1) 게이와 게이혐오에 기반한 탈BL, 2) BL이 공수관계를 통해 현실 남녀의 권력관계를 강화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탈BL, 3) 구조적으로 여성캐릭터를 배제하는 장르로서 BL을 비판하는 탈BL이 그것이다. 1)과 2)가 상대적으로 BL에 대한 사회적 편견 및 기존 BL연구의 성과와 연관이 있다면 3)의 경우는 세계적인 페미니즘의 조류 속에서 여성서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측면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세 유형의 탈BL은 모두 현실, 표상과 환타지의 복잡한 관계를 단순화하는 경향이 있고, BL의 문제점을 창작자의 문제로 환원하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탈BL 담론의 문제점을 고찰함으로써 대중문화와 여성의 문화적 실천의 관계, 나아가 BL이 갖는 가능성을 보다 적극적으로 탐색할 필요가 있다.
김명순은 한국 근대문학 형성기에 뛰어난 작가 중 한 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전기적 사실-첩의 자식이라는 출신성분, 성폭력 피해 경험, 혼전동거, 영화배우로의 전향, 일본 망명, 비극적 죽음- 때문에 스캔들러스한 사건과 이야깃거리로만 소비되어 문학 작품에 대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 김명순이 한국문학사에서 오랫동안 제대로 다뤄지지 못한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나 여성연구자들에 의해 1980년대부터 시작된 김명순 문학연구를 통해 이제 김명순은 한국 근대 최초의 여성작가이자 1920년대 가장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한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이 논문은 일차적으로 김명순에 대한 이러한 기존논의들을 정리한 뒤, 이에 기반해 김명순 문학 연구가 김명순이라는 텍스트, 즉 김명순의 문학작품과 삶의 이력에 관한 담론들 모두를 포함한 형태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김명순이라는 텍스트’ 연구의 한 사례로 김명순의 소설 전체를 분석 대상으로 김명순 문학의 특징을 정리했다. 김명순 소설을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는 바로 사랑과 연애, 결혼의 불가능성이다. 이러한 주제는 일차적으로는 자신을 ‘성적으로 문란한 신여성’으로 규정하는 세상의 규범에 저항하는 방식이지만 그 과정에서 허구와 실제가 겹쳐진 탄실이라는 인물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를 위해 김명순은 서사 바깥에서 생산되고 유통되는 자신에 관한 스캔들을 소설 속에 기습적으로 배치하고 재구성하고, 소설 속 여성인물들을 소설 바깥의 작가 자신과 교차시키고 착종시킴으로써 실제와 허구, 현실과 서사의 경계를 모호하게 흐린다. 특히 김명순의 자전소설 「탄실이와 주영이」는 김명순의 소설이 가진 이러한 교차성과 모호성, 유동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김명순은 이 소설을 통해 자신의 삶을 서사화함으로써 심층적으로 분석하는 동시에, 성폭력 피해자인 자신을 명예살인하는 현실에 저항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김명순 혹은 탄실은 다양한 주체 위치의 변이를 통해 당대 사회가 부여한 성 정체성을 넘어 자기만의 고유성을 개성을 갖춘 여성인물이 된다.
강경애는 식민지 시기 최고의 사회주의 여성작가로 인정받았고 여성의식 역시 이념적 관점에서 접근되었다. 여성해방의식을 성공적으로 구현했다거나 혹은 사회주의 이념에 구조화된 남성중심성을 수용하였다는 기존 연구의 주장은 평가의 방향은 다르지만, 사회주의라는 단일 이념으로 여성의식을 해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사회주의를 단일한 내용을 갖는 하나의 이념으로 상정하고 그것의 약점과 미덕을 강경애 여성의식의 성패와 연결시키고 있다. 그러나 강경애 작품을 통해 드러나는 여성의식은 이음새 없는 단일한 이념으로서의 사회주의 여성의식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보다는 오히려 사회주의 안에 모순된 이질성을 구조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전근대적인 가부장적 시각과 근대적 계급해방의 이념이 교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같은 사회주의 진영 안에서도 다른 여성주의자들과의 낙차도 발견된다. 이 글은 그간의 연구에서 간과되었던 이러한 이질성과 차이를 당대 신여성 담론과의 관계 속에서 점검해보고자 하였다. 방탕과 허영, 그리고 빈껍데기로 지식인 여성을 비하했던 모던걸 담론이 강경애 소설에 가한 억압과 모순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여성의식을 다시 점검하였다. ‘모던 걸’의 공포가 강경애에게 내면화되면서 사회주의 여성의식 안에 남성중심적 시각을 모순적으로 구조화하고 있으며 사회주의 여성활동가들과도 다른 여성의식의 낙차를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신여성 담론이 자유주의 여성에게만 아니라 사회주의 여성의식에도 모순과 갈등을 야기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여성적 글쓰기(feminine writing) 관점에서 박경리 초기단편소설 속에 나타난 부인(否認)의 원체험이 여성인물에게 어떤 의미이며 이를 어떻게 극복하는지 살펴 박경리 소설의 여성주의적 성과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박경리 초기단편소설 속 여성인물들은 아버지가 부재한 상황이다. 아버지가 없는 상황에서 어머니와 딸로 이뤄진 가정에서 유년을 보낸다. 아버지의 모습은 아예 없거나 무척 부정적인 모습으로 제시된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어머니는 여성성이 제거된 모성만 존재하는 인물로 그려지거나 주변의 멸시에 굴종하는 삶을 산 여인으로 제시되어 여성인물은 어머니를 동일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렇듯 박경리 초기단편소설 속 여성인물은 자신의 기본정체성을 형성하기 위한 심리적 개별화의 어려움을 겪는다. 그리고 제시된 부인(否認)의 원체험은 명예살인에 준하는 고향 내 소문과 이로 인한 탈향이라 할 수 있다. 남녀에게 공히 함께 일어난 연애사건에 대해 여성에게 더욱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며 비난하는 마을 공동체에서 여성인물은 탈향을 선택한다. 연대의 시선을 거부당한 여성인물은 자폐적인 상황으로 내몰리고 그녀가 살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탈향 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박경리 초기소설 속 부인(否認)의 원체험으로는 여성가장으로서 느끼는 성적 대상화와 가난이라는 이중고라 할 수 있다. 자신을 성적 대상화 하는 남성중심적 사회에서 이를 감내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조건에서도 여성인물들은 이를 거부한다. 가부장적 질서와 남성중심적 섹슈얼리티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있는 것이 아닌’ ‘살기 위한’ 방법으로 여성인물이 주체적으로 선택한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박경리 초기소설이 갖는 여성주의적 가치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이후 박경리의 작품 속에서 여성인물들이 보여줄 주체화양상이 가부장제에 비타협적이며 이분법적 여성관을 거부할 것임을 예고한다.
본고는 한국전쟁기 이후 장덕조 대중연애소설의 대표성을 띠는 『격랑』을 중심으로 장덕조 소설의 변화 양상과 ‘연애’를 통해 드러나는 작가의 시대의식을 고찰해 보았다. 이 시기 발표한 대중연애소설의 대부분이 자유연애, 미국식 문물과 사상의 유입을 통해 전근대성과 근대성의 혼성을 재현한다고 볼 때 이러한 사회문화적 코드는 한국사회의 변화와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를 가장 앞서 보여주는 것이 주인공의 변화이다. 한은주는 순수함과 도덕적인 측면에서 전통적인 연애소설의 여주인공으로 손색이 없지만 사랑에 있어 현실적 ‘총명함’을 우선한다. 자신의 위치(여대생-가장)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는 똑똑함과 자기 건설의 자양이 될 수 있는 사랑을 선택하기 위해 열정을 다스린다. 이는 낭만적 사랑에 함몰되지 않는 현실주의적이며 합리적인 삶의 태도이다. 박창렬은 전통적인 연애소설의 관습에 따르면 남근적 인물의 전형에 위치하지만 실상 마음이 깨끗하고 추한 것을 싫어하는 중년의 미학자로서 1950년대 장덕조 연애소설의 새로운 남성주인공형이다. 가난의 고통을 견디면서도 자기 향상을 고집하는 한은주의 합리적 사랑과 그 삶을 정신적, 물질적으로 격려하고 옹호하는 박창렬의 성숙한 사랑에서 새롭고 발전적인 사랑의 배태가 가능한 것이다. 이처럼 『격랑』은 전후사회의 혼란과 불안 속에 변화된 시대상을 대변하는 남녀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이전에 보여준 바 없는 새로운 애정 갈등 양상을 그렸다. 단 이러한 사랑(물질적 원조)이 정당하려면 사랑의 진정성이 전제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물질의 풍요로움에 기반한 중년 남성의 청춘에 대한 성적인 갈망이 아니라 서로의 정신적 요소에 대한 동경과 합일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 시기 소설에서 애정을 물질과 연계시키는 사고가 매우 당당하게 발현되는 경우는 장덕조 소설 외에 쉽게 발견되지 않으며 이것은 당대 현실의 반영태이자 다른 의미에서 이상주의적인 사랑의 양상일 것이다. 『격랑』은 새로운 인간상과 연애관을 제시하며 당시로서는 보기 힘든 애정소설을 구현하였지만 반면 물질적 가치를 대변하는 남성 주인공을 죽음으로 처리하고 사회가 제시하는 도덕적 윤리를 따라야 한다는 것으로 소설은 마무리 된다는 점에서 대중연애소설의 공식에 충실하다. 허위와 타락의 구렁텅이를 빠져나오려는 박창렬의 정신과 오버랩 되는 것은 ‘보수성’, ‘자기 기호나 사상에 완고한 신념’으로 이는 ‘전통적인 한국인의 성격’으로 일반화되고, 자신을 죽여 얻게 되는 ‘몰아적 사랑’은 종교적 신념으로서의 가치를 획득하게 된다. 소설의 중반까지 이 소설이 획득한 독특한 사랑의 양상은 대중연애소설의 전형적 결말 구도에 침몰해 들어가면서 대중연애소설의 전통적 가치와 나를 던져 악인까지 회개하게 만드는 휴머니즘으로 귀결된다.
박완서는 막 성년에 진입한 여성이 전시 서울에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이야기를 반복해왔다. 이 간단한 요약은 박완서 문학에서 전쟁과 젠더, 그리고 지리가 가지고 있는 복잡한 관계를 압축한다. 그것은 전시 서울이라고 하는 시공간 속에서 여성의 성장이 어떻게 수행될 수 있었는지를 문제화한다. 박완서가 그녀의 첫 소설 『나목』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은 바로 전쟁이야기한 탈장소와 그에 따른 주체화다. 전쟁은 장소를 파괴했다. 특히 여성을 보호하는 동시에 통제하는 가정의 영역을 해체했다. 안전과 안정감을 제공하는 ‘장소’의 파괴는 여성을 불안정한 신분과 고독한 자립, 적대성의 세계로 이동시켰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나목』의 여성(이경)은 도시 읽기(city reading)의 주체가 되었다. 탈장소의 상황이 주어진 후, 이경은 일상적으로 도시의 광역(廣域)을 가로지르게 되었다. 그녀는 매일같이 도시의 한 극단에서 다른 극단으로 이동한다. 그럼으로써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서울의 이모저모를 관찰하게 된다. 『나목』의 서사는 여성이 전시 상황에 의해 새롭게 경험하게 된 여러 장소들의 연쇄로 구성된다. 이경은 미군 PX, 옥희도의 집과 황태수의 집, 경서 호텔 등 다양한 장소를 가로지르는데, 각각의 장소로 이동하고, 관찰하고, 경험함으로써 플롯이 전개되는 것이다. 요컨대 『나목』의 이야기는 집에서 벗어난 여성이 마주친 여러 장소들의 연쇄를 통해 조직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 글은 『나목』이 제시하고 있는 여성의 새로운 동선(動線)을 추적하는 한편, 이들이 새롭게 경험한 장소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나목』은 박완서가 이경이라는 행위자를 통해 재구성한 전시 서울의 ‘인식적 지도(cognitive map)’로 나타날 것이다.
이 글은 민족주의라는 비대한 이름의 내부를 분석적으로 고찰해 보려는 의도로 작성되었다. 이를 위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본격화되기 전에 발표되어 ‘위안부’ 운동사의 발전과 함께 개작·재출간된 「에미 이름은 조센삐였다」의 집필 맥락과 개작 양상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에미 이름은 조센삐였다」는 당시의 ‘위안부’ 담론과 밀접한 연관관계를 맺으며 창작·개작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1980년대 초반 일본군 ‘위안부’ 담론은 민족 남성의 민족 수난사 쓰기의 욕망에서 생산되었는데, 이들의 글쓰기가 일본군 병사의 시선이 투영된 문헌에 의존했다는 점은 매우 문제적이다. 「에미 이름은 조센삐였다」는 민족 문제로 ‘위안부’를 다루는 문제틀을 공유할 뿐 아니라, ‘남성의 글쓰기-재현되는 위안부’의 구도를 ‘기록하는 아들-고백하는 어머니’로 반복함으로써 순이의 발화를 아들의 역사(his-story) 쓰기로 함몰시켜버리는 근본적 한계를 가지게 되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본격화된 이후인 1997년 판본에는 피해자로서의 ‘위안부’가 아니라 생존자로서 강인한 ‘위안부’의 모습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남성의 인식/글쓰기로 수렴되는 텍스트 구조 속에서 부각되지 못했다. 한편, 「에미 이름은 조센삐였다」에는 일본인 ‘위안부’, 필리핀 ‘위안부’, 성매매 여성, 기생 등 민족 안팎의 비가시화된 여성이 존재한다. 소설에서 이들은 배경이나 문학적 장치로만 드러나고, 기존 연구에서도 논의되지 못했다. 이 소설이 성폭력 문제를 전면에 다루고 있음에도 이들 존재가 망각되어 온 것은 비판적 성찰이 필요한 대목이다.
1999년 여름, ‘오키나와현 평화기념자료관 전시 조작 사건’으로 불리는 사건이 일어났다. 오키나와현 지사와 부지사의 전시내용 비판을 한 것이 계기가 되어 행정담당자가 감수위원에게 알리지 않고 무단으로 전시내용을 변경하도록 업자에게 지시한 일이다. 그 후 신문 보도로 변경과 삭제가 하나씩 드러났는데 변경 항목 수는 약 230여 개나 되었다. 이러한 조작 사건은 오키나와전의 비참함을 은폐하는 것이었는데, 연구자는 물론 시민들도 반발하자 감수위원이 작성했던 당초의 전시안으로 복원하는 것으로 사건은 대략 정리되었다. 선행연구에서는 변경·삭제되었던 주민에 대한 군대의 폭력이라는 주제가 가장 초점화되었지만, 당시 똑같이 변경·삭제의 대상이 되었던 오키나와전 당시의 ‘위안소’와 미군점령하의 A사인바(미군의 풍속영업시설 허가 기준에 합격한 술집) 전시에 대해서는 논의가 거의 없었다. 본고에서는 ‘위안소’와 A사인바와 같이 섹슈얼리티와 관련성이 짙은 전시에 가해진 전시 변경에 주목하고, 신문기사와 행정자료 데이터를 이용하여 ‘공범화’라는 개념으로 사건을 다시 고찰한다. 먼저 오키나와인이었던 현간부나 행정담당자들이 일으킨 전시 조작 사건의 개요를 살펴보고, 오키나와 지식인들이 역사 조작에 저항하면서도 섹슈얼리티에 관한 전시 조작은 간과했음을 지적했다. ‘위안소’와 A사인바 전시 조작은 군사주의를 비판하는 오키나와 지식인들의 입장에서는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이러한 일련의 문제제기는 군사주의뿐 아니라 식민지주의를 다시 물을 때에도 중요한 힘을 갖는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