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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전여성문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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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자살공화국’ 대한민국의 오늘을 사는 사람들은 공감과 치유의 언어를 자유로이 구사하는 탁월한 이야기 치료사로서 고전 <덴동어미화 전가>의 주인공 덴동어미를 호출했다. 자기 시대 서발턴 여성의 대표성을 띤 덴동어미는 화전놀이 하는 날 청춘과부의 정답 없는 질문이라는 외부적 계기를 통해 자기의 신산스러운 과거를 하나의 의미 있는 기억 서사로 꿰어낸다. 덴동어미가 현장에서 얼굴을 마주보고 인생 ‘스토리’를 ‘텔링’하는 행위는 위로와 공감을 생성하는 스토리텔링 치료의 현장이었다. 청춘과부는 네 번이나 상부한 덴동어미의 간난신고 인생담을 들으면 서 “십육세 요사 임뿐이요 십칠 세 과부 나뿐이지”라며 자기 불행을 절대화하던 주관성의 동굴에서 문제를 문제 바깥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덴동어미의 말은 그녀 개인의 말이면서 동시에 침묵을 지키는 혹은 침묵을 강요당하는 수많은 서발턴 여성들의 말이기도 하다. 서발턴 여성의 말을 잘 듣기 위해서는 ‘결을 거슬러 읽는 독법’이 필요하다.「덴동어미전」은 <덴동어미화전가>의 화전놀이 여정을 준비과정부터 추억하는 시점까지 시공간을 확장하여 그려낸 소설로서 <덴동어미화전가>의 미적 특징과 문학 치료적 가치를 최대한 살리고자 애썼다. 또한 ‘결을 거슬러 읽는 독법’의 일환으로 거듭 개가를 말리고 수절을 권하는 덴동어미의 말에서 ‘보이지 않는 이면’을 드러내고자 했다. 이를테면 덴동어미의 수절 권유에서 여자의 운명을 시집 혹은 남편에게 얽매는 가부장제 프레임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학업과 사회진출 등 삶의 다른 가능성에 대한 도전을 시사하도록 했다. 덴동어미 캐릭터의 핵심적 특징은 일원적 중심성을 벗어나 무한히 다시 태어나는 치유적 생기에 있다. 그러므로 이 캐릭터는 치유적 생기가 필요한 모든 곳에서 거듭 되살려낼 가치가 있다. 덴동어미처럼 무애자재 한 캐릭터야말로 캐서린 헤일스가 말한 ‘또 다른 포스트휴먼’의 자질일 것이다.
본고는 많은 선행연구들이 주목하였던 필기의 인물들 가운데 15, 16세기의 여성 인물에 다시 관심을 가져보고자 한다. 조선전기의 필기집을 중심으로 살피면서, 야담의 서막을 열었으나 아직 필기적 성향이 강한 어우야담을 대상으로 논의를 한정할 것이다. 사회경제적 조건이 발달한 조선후기의 경우 필기와 야담은 서사성의 강화와 함께 다양한 인물 유형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매혹적이다. 하지만 15, 16세기가 중심인 조선 전기의 필기 양식에서도 생생한 여성 인물들의 모습과 목소리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 특기하고자 한다. 필기는 기본적으로 사대부라는 문인지식층이자 관료들의 관심사를 기록했다는 점에서 그 양식적 프레임을 통해 자신의 동료들에 주목하였다. 이는 남성의 시각과 목소리를 대변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때 그들 주변의 독특한 인물들을 포착한 사실에 유의하려 한다. 드물기는 하지만 다양한 인물들이 얼굴과 목소리를 드러내며, 사회적 주목을 받지 못했던 여성의 존재도 등장하기 때문이다. 다만 필기의 양식적 프레임을 걷어내고 볼 때, 유가 사회의 하층이었던 여성의 목소리와 행동이 비로소 드러난다. 물론 이들 여성 하위주체들은 유교 사회의 남녀에게 경종을 울리고자 기록에 오른 것이다. 그럼에도 그 기록의 한편에는 여성 하위주체들의 ‘인간 정욕에 대한 긍정’의 목소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사실 정욕의 문제는 남녀가 공유하는 것이고, 다만 정도의 차이가 사회의 제재를 받는 것이며 하필 여성에게 특별하게 강조되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러한 강조와 강압, 그리고 회유의 사회적 구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자그만 목소리와 모습들을 소중하게 보듬어 갈무리할 의무가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기울어진 사회적 구조 속에서 하위주체였던 여성들이 흥미로운 전환적 발상의 논리와 목소리를 통해 상층 필기 양식에 틈입하여 균열을 내는 장면들을 발견하고자 한다
디지털 게임은 영웅 신화의 원형을 디지털 기술로 구현한 융합 콘텐츠이다. 이제까지 디지털 게임의 영웅이란 주로 남성이었으며, 여성의 경우에는 ‘구해야할 대상’ 혹은 ‘보상으로서의 대상’으로만 재현되어 왔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디지털 게임에서 타자적 위치에 있는 여성영웅 캐릭터를 원형성에 따라서 구분하고 그 특징을 분석했다. 여성영웅은 그 존재성을 타자와의 관계 회복과 주어진 임무 수행에서 찾는가, 혹은 자아에의 집중과 세계의 탐구에서 찾는가에 따라서 크게 관계지향적 성취가와 주체지향적 탐구가로 구분된다. 디지털 게임에서 관계지향적 성취가는 ‘아버지가 부재한 딸’ 혹은 ‘남편이 부재한 아내’로 재현된다. 이 경우 여성영웅은 유사남성으로서 여정을 완료한 후에도 세계로부터 진정한 영웅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한편 주체지향적 탐구가의 경우 광활한 게임 세계를 관찰하고 탐험하면서 주체성을 획득하게 된다. 퀘스트 수행의 결과 새로운 질서와 가치를 발견한 뒤 상징적 죽음을 맞이하기도 한다. 디지털 게임에 등장하는 여성영웅의 유형에 따라서 게임의 장르도 각각 차별적으로 생성된다. 먼저 전형적인 여화위남을 구현한 여성영웅의 경우 주로 상업적 어드벤처 게임에서 나타난다. 이 경우 여성영웅의 여정은 기존 어드벤처 게임의 여정을 재맥락화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기존 게임의 하위 장르에 머문다. 반면 주체 중심적 탐험가 유형의 여성영웅은 주로 인디 게임에 등장한다. 이들은 유목적 주체로서의 면모를 드러내면서 대안적 게임의 규칙과 장르를 제시하고 있다
이 글은 자녀안법(恣女案法)의 성립과 변화, 실제 적용 사례를 검토한 것이다. 고려 예종 때 만들어진 자녀안법은 1477년에 제정되어 경국대전에 실린 재가녀자손금고법(再嫁女子孫禁錮法)의 기원이 된다. 사문화된 이 법은 1406년의 허응(許應)의 요청으로 부활한다. 허응은 기존의법에 세 번 결혼한 추가할 것을 건의하였다. 이것은 삼가를 비윤리적인 행위로 인식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것은 여성의 결혼 횟수를 윤리적 판단의 준거로 삼는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발상의 전환이었다. 1436년의 자녀안법은 삼가녀의 자손은 대성(臺省)과 정조(政曹)의 관직에 나아갈 수 없다는 보다 구체적인 조항을 추가했다. 아울러 자녀안 녹안의 담당 관청으로 사헌부를 지정했다. 1485년에 완성된 경국대전(을사대전)의 재가녀자손금고법은 재래의 자녀안법의 강화된 형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성의 성을 자손의 금고(禁錮)와 연좌한다는 발상은 자녀안법을 그대로 계승한 것이었다. 다만 삼가를 넘어 재가(再嫁)가 추가되었던 것이니, 을사대전의 재가녀자손금고법은 자녀안법의 과격한 연장인 셈이다. 재가녀자손금고법의 성립에는 수신전(守信田)의 박탈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그 전에 자녀안법이 계속 강력한 형태를 띠면서 여성의 성과 자손의 금고를 연관시키고 있었고, 또 대간(臺諫)은 그 처벌성 조항을 실현시키고자 하였다. 예컨대 1436년 이후 실제 자녀안이 작성되었고, 자녀의 자손은 대성(臺省)과 정조(政曹)와 정부(政府)의 관직을 얻은 자가 없었다. 이것은 자녀안이 실제 관철의 강도를 높여나가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녀안법의 집행은 매우 집요하였다. 세 번 결혼했던 왕씨의 자손들의 사환(仕宦)에 끊임없이 문제가 생겼던 것이 그 적실한 예다. 1429년 사헌부가 왕씨가 자녀임을 이유로 아들 김개의 우시직(右侍直) 임명을 철회 할 것을 요청한 것을 시작으로 1489년 김맹강의 상소까지 60년 이상 이 가문의 사환은 끊임없이 문제가 되었다. 왕씨의 자손은 왕실 및 명문거족과 통혼하는 집안이었지만, 그녀씨의 삼가는 계속 문제가 되었다. 한편 왕씨의 삼가는 허응의 법(1406) 이전에 있었고 또 그것은 왕명(태종) 에 의한 것이었다. 자녀안법이 적용될 수 없다는 것이 합리적 판단이었지만, 수용되지 않았다. 이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즉 여성의 결혼횟수를 윤리적 판단의 준거로 삼는 것은 이미 원칙화되어 있었던 것이다. 1487년 김맹강의 상언 이후 실록에서 김개․김한의 후손에 대한 언급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 조선시대 문집에도 김개․김한과 그들의 아들들의 이름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 크다. 명문거족과 통혼하고 있었던 왕씨의 자손과 가문이 1487년 이후 실록과 문집 등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은 대단히 의미심장한 것이다. 자녀안법은 일종의 명예형이었다. 자녀에 왕씨의 후손들을 둘러싼 요란한 시비는 가문에 불명예가 되었을 것이다. 사족들은 자연스레 이 불명예스러운 가문과의 혼인을 기피했을 것이고, 그 결과 이 가문은 차츰 사족사회에서 배제되어 나간 것으로 추측된다. 이 배제야말로 여성들의 재혼, 삼혼을 막는 엄청난 압박이 되었을 것이다. 자녀안으로 여성의 성을 통제하고자 한 남성-사족의 의도는 성공적인 것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투기는 모든 인간이 보편적으로 경험하는 감정/행위이지만, 조선에서는 여성만의 도덕적 굴레가 되어 다양한 담론과 문화적 의미를 산출하였다. 투기는 중국 고전에서부터 문제가 되었다. 여성 특유의 감정/행위로 인식되었고, 가족ㆍ나라의 안녕, 자손의 번성 등을 위해 투기하지 않는 것이 옳으며, 투기할 경우 자식에게 해가 되거나 가족 혹은 나라가 망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또한 칠거지악을 통해 구속력을 강화하기도 했다. 이러한 내용들이 조선에서 본격적으로 현실화되었던 것이다. 투기를 여성만의 부도덕한 감정/행위로 규정하고 있지만, 남성들에게도 투기의 감정/행위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 여성의 투기 사건과 비슷한 형태로 존재했고, 그 이면에는 남성의 욕망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도 한다. 다만, 투기를 문제 삼지 않음으로써 남성의 투기는 용인되어 갔던 것이다. 투기가 여성만 경험하는 감정/행위가 된 것은 성적 욕망이 남녀에게 보편적이라는 사실을 상기할 때 분명 비대칭적인 것이다. 이는 남성의 여성에 대한 권력의 집행이라고 할 수 있다. 투기를 윤리도덕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투기를 여성만의 윤리도덕의 범주로 설정한 것, 그것을 하나의 담론으로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남성의 여성에 대한 권력의 집행과정인 것이다.
이 글의 목적은 18세기 제문과 행장 등에서 임신과 이로 인한 전통시대 상층 여성의 죽음 관련 자료들의 양상을 살피는 데 있었다. 이로써 출간된 여성생활사자료집의 활용도를 높이고, 전통사회 여성에 대한 미시적, 생활사 연구의 가능성을 엿보고자 하였다. 17세기에서 20세기 초까지 여성생활사자료집이 여성의 미시적 연구를 가능하게 했다지만, 전통여성에게 가장 기본적인 임신, 유산 등에 관해서는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남성 문인의 글이니 그런 기록이 적겠지만 관련 자료가 아주 없지는 않다. 황윤석의 <記亡室生卒>은 임신과 출산은 물론, 유산과 어려서 죽은 자식까지 다 기록해 두었다. 유산을 암시하는 글은 18세기 여성생활 사자료집에서 모두 10편이었다. 어려서 죽은 자식에 관한 언급이 나오는 것은 모두 21편이었다. 거듭되는 출산으로 득병이나 죽음에 이르렀다고 적은 경우는 6편이었다. 신대우의 <祭亡女文>은 임신으로 오인하여 병을 키우다가 죽어가는 딸을 애달파 하는 장면이 글에 잘 나타난다. 임신으로 오인한 예는 6편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서명응의 <亡女鄭氏婦墓誌>은 딸이 해산한 지 7일 만에 죽었다고 하고, 해산 몇 개월 전에 이미 죽을 수도 있음을 알고 준비를 해두었다고 한다. 출산 도중 또는 직후 병을 얻거나 죽은 여성에 관한 기록은 18세기 여성생활사자료집에서 40여 편에 달했다
본고에서는 <사씨남정기>의 ‘사씨’와의 비교를 통해 <유씨삼대록>의 ‘진양공주’의 이상화(理想化) 양상의 특징과 의의를 살펴보았다. <사씨남정기>와 <유씨삼대록>은 17세기 후반~18세기 전반의 비교적 이른 시기에 창작된 장편소설로, 두 작품의 여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사씨와 진양공주는 장편소설의 여성인물 중 남녀 보편의 도덕적 인간형의 표준을 구현하고, 남편의 첩 혹은 둘째부인 등의 적국의 모함으로 인해 흡사한 갈등을 겪는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그런데, 불가와의 친연성이 높고 시문을 하는 정도의 사씨에 비해 진양공주는 유교 중심주의가 강화되고 성현군자와 같은 학자형 인물로 등장한다는 점, 남편에게 순종하는 사씨와 달리 진양공주는 도덕적 주체성이 강화되고 포용력이 극대화된다는 점, 사적 영역에 한정된 사씨와 달리 진양공주는 공적 영역에서 활약하면서 그 영광을 시가로 환원한다는 점, 돌아가신 시부모나 도승에게 도움 받는 사씨와 달리 진양공주는 뛰어난 예지력으로 시가의 해결사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였다. 진양공주는 사씨를 염두에 두고 고안된 인물 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여성인물의 이상화라는 큰 궤적에서는 동궤에 있지만 여러 모로 사씨와 대척점을 지닌 인물로서 형상화되고 있었다. 특히 진양공주는 사씨에 비해 도덕적·정치적 자율성이 강조되는 인물로, 충신연주지사(忠臣戀主之詞)의 우의 없이도 가장 이상적인 인간형으로 등장함으로써 여성에 대한 인식을 최고조로 고조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 의의를 갖는다. 여기에는 조선후기 사대부가 지식인 여성을 중심으로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주체라는 자각과 더불어 정치적인 글을 짓거나 상소문을 올려 공적 발언권을 가지려 했던 당대의 현실이 반영되어 있다. 그런데, 사씨에 비해 성녀와 같이 전지전능하고 자비로운 인물로 이상화된 진양공주는 결국 가부장제의 균열을 치유, 관리하는 해결사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적 성찰도 요구된다. 17∼18세기 당쟁으로 인해 극도로 혼란한 시기에 이상적인 여성으로부터 절대적인 위안을 받고 싶은 남성들의 욕망이 진양공주에게 투사되어 있으며, 이는 여성에 대한 과도한 짐 지우기의 한 양태일 수도 있다. 사씨에게는 가부장제가 작동한다고 해도 남편만이 존재하는 단출한 가부장제인 데 반해, 진양공주는 시부모를 비롯한 남편의 숱한 형제로 구성된 거대 가부장제에 포섭됨으로써 진양공주에게 주어진 권한이 시가를 위한 것으로 회귀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17세기 후반~18세기 전반 장편소설에서는 여성인물의 이상화에 큰 공을 들이며 <사씨남정기>의 사씨를 거쳐 <유씨삼대록>의 진양공주에 이르면 그 극점에 도달하는데, 진양공주와 같이 극도로 이상화된 여성인물은 당대 여성들에게 빛과 그림자를 동시 에 던져주고 있다.
<정수정전>은 친부모의 억울한 죽음과 이에 대한 여성 인물의 복수성취를 전체적인 서사의 얼개로 삼는 여성영웅소설이지만 효녀의 복수담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돌출적인 장면을 다수 포함한다. 이는 소설 내에서 정수정이라는 인물이 장수 제후로서의 정체성 및 효녀 충신으로서 의 정체성을 중심으로 스스로를 인식하고 해당 정체성들의 지속을 주장하면서 아내·며느리로서의 덕목을 등한시하는 데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정수정전>의 서술자는 그녀의 행동에 대해 비판적 논평을 덧붙이지 않고 서사의 결말 또한 이 인물에게 가문 외적 명예뿐만 아니라 가문 내 안정적 지위를 보장하면서 마무리된다 조선후기 사회는 부덕에있어 열이 충과 효를 압도하는 방식으로 위계가 공고화된 공간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정수정전 에서는 여성 행위자가 충·효·열가운데 어떠한 윤리적 가치를 우선적으로 추구할지의 문제가 문제화되고 있으며 정수정은 독자적으로 충·효·열 간의 위계를 설정하고 특정 덕목을 선택적으로 수행하는 행위자로 형상화된다. 이러한 견지에서 <정수정전>은 정수정이라는 인물을 통해 경합하는 윤리적 가치들의 위계가 행위자의 선택에 의해 재구성될 수 있다는 견해를 제시하는 한편 소설 속 행위자인 정수정의 선택을 옹호하는 소설이라고 새롭게 해석될 수 있다
본고는 1898년, 충청도의 유교 지식인 김상즙이 쓴 「본조여사」를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저자가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조선 여성의 자질이나 이상적 여성상을 추출해 보고자 시도되었다. 「본조여사」의 서지, 작가 정보 등에 대해서는 기존 논의가 있으므로 본고는 기존에는 다루어지지 않았던 분류 항목들을 비교 검토하고, 항목별 일화들을 구체적으로 분석함으로써 19세기 말, 20세기 초 유교 지식인들의 여성담론의 지형 속에서 「본조여사」가 지니는 차별적 지점에 대해 검토하였다. 12개 항목에 속한 일화들을 검토한 결과, 본조여사 에서는 열녀와 관련하여 분류 기준이 모호하게 사용되었고, 항목에 상관없이 여성들의 지적 능력, 안목 등이 반복하여 언급되는데, 특히 정치적 상황에서 판단을 해야 하는 일화들이 다수 있었다. 또 정절 이데올로기 및 전통적 부덕의 범주 안에 들어가는 일화들도 함께 수록되었다. 유교 지식인으로서 저자는 이렇듯 기존의 유교적 가부장제가 여성에게 덕목으로 강조해 온 내용들과 공통되는 것도 있었으나 차이점을 보여주는 것도 있었다. 우선 그는 더 이상 열녀를 남편에 대한 성적 종속성을 지키는 여성으로 국한 시키지 않은 채 기존의 열녀에 대해 수용한다. 또 그는 여성의 능력 중 지적 자질이나 정치적 판단력을 중시하며, 특히 여성의 고생이나 고통에 대한 공감도 보여준다. 저자는 전통적인 삼강오륜을 중시하나 근대전환기 조선 현실에서 그가 중요하게 생각한 여성의 자질은 당대를 헤쳐 나갈 정치적 판단력이었다.
본 논문은 근대 여성기행가사의 통시적 이해를 위한 작업의 하나로서, 1920년대 여성 기행가사 작품들을 분석하였다. 1920년대를 대상 시기로 한 이유는 이 시기에 전통적 주제였던 산수 유람에서 벗어나 근대체험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1926년 부산 여행을 다룬 <노정기>를 중심으로 근대체험의 재현 양상과 그 의미를 분석하였다 가사 <노정기>는 여행의 목적과 작품 구성에서 특징적인 변화를 보여준다. 여행을 위한 여행이라는 점과 목적지를 향한 노정이 확장되었다는 점이다 여행주체로서의 나에 초점을 맞추고 여행에 대한 욕망을 전면에 부각시킨다. 또한 당대에 마주한 실상을 충실히 재현한다. 작가는 여행에서 마주한 세태 풍경과 도시문명 체험을 상세히 재현한다. 우선 여행길의 일상에서 경험한 세태 풍경과 신문명을 시간적 경과에 따라 순차적으로 재현한다. 그것은 속도나 형태와 같은 시각적 체험 뿐만 아니라 질서와 규칙 등을 체감하는 것이기도 했다. 1920년대 여성 기행가사의 주류는 여전히 전통적인 산수 유람이며 이는 산수의 정취를 즐기고 글을 짓는 문화적 행위였다 반면 <노정기>를 비롯한 몇몇 작품은 당대의 실상인 근대문명에 대한 관심을 보여준 다는 점에서 변화가 시작된 시기이기도 하다 그 배경은 시속으로 표현된 당대성에 대한 긍정적 인식과 개인의 도시 문화생활에 기반한 취미 관념의 유행으로 이해할 수 있다 노정기 작가에게 근대성은 문화적 선진성과 아울러 여성들의 자유로운 활동이라는 내포를 지녔다 여기서 전통적 삶을 살고 있었던 작가가 취미나 근대성이라는 문화적 준거를 명시적인 개념으로 이해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것은 복장의 표상과 도회바람이나 시속 등의 시대적 분위기로 이해된다 그러면서도 이러한 당대의 실상에 대한 관심은 산수 유람의 규범성에서 벗어나 여행 속에서 보다 능동적으로 개인의 자유로운 활동을 추구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태도는 가문이라는 집합적 정체성과 공존하면서도 자유로운 활동 주체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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