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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전여성문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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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지식생산과 한국고전여성문학 분류체계 재구성 문제를 체계적으로 다루기 위해서는 다양한 관점들을 포괄할 수 있는 새로운 이론적 분석틀이 필요하다. 이 글에서 필자는 여성주의 지식생산에 관한 전통적인 젠더정치 관점은 후기 근대 한국사회에 들어 그 한계를 노정하기 시작했으며 이제 실천이론과 아고니즘 정치에 기반을 둔 관점으로 확장되어야 함을 주장한다. 이를 위해 필자는 다음과 같이 논의를 진행한다. 1) 필자의 선행연구에 근거해서 상징적 복잡적응계로서의 사회적 실천 개념을 제안하고 그 내용을 설명한다. 2) 페미니즘 정치에 대한 실천적 이해는 아고니즘 정치로 구현된다는 점을 주장하고 아고니즘 정치는 정체성 정치를 특수한 경우로 포함시킨 확장된 정치 전략임을 설명한다. 3) 신자유주의 논리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후기 근대 한국사회에서 사회적 실천들을 황폐화시키고 있는 편협한 경제적 효율성 개념을 대체할 확장된 효율성 개념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주장하고 대안으로 제시된 확장된 효율성 개념을 상세하게 분석한다. 4) 여성학 방법론과 페미니즘 정치의 실천적 전환을 통해 한국의 여성학은 서구의 경험과 관점에 기반을 둔 서구이론을 무차별적으로 적용한다는 혐의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5) 실천이론의 관점에서 미적 경험을 분석함으로써 사회적 실천의 적응적 조정에서 미적 판단의 창의적 역할을 드러내고 이러한 미적 판단의 특징이 바로 아렌트가 포착한 세계-구축의 순간에 작동하는 정치적 판단의 미적 특성의 원천임을 강조한다. 6) 마지막으로 이러한 논의로부터 실천이론이 여성주의 지식생산과 한국고전여성문학 자료의 새로운 분류방식이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체계적인 접근법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점을 주장한다. 특히 한국고전여성문학작품에 대해 지금까지 이루어진 기존의 소중한 연구에 기반을 둔 평가에 더해, 이들 여성작가의 작품이 규범적 실천을 통해 유교사회의 안정적 작동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남성작가의 작품에 비해 전통사회 구성원들의 공동 작품인 다양한 사회적 실천들의 적응적 변화가능성의 측면, 즉 창의적 측면에 대한 통찰을 제공해줄 수 있는 중요한 창이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글은 여성 문학사에서 지속되어 온 문제-시야에서 사라진 여성의 글/쓰기를 어떻게 가시화할 것인가, 여성의 지적인 노동을 여성주의 관점에서 어떻게 조명할 것인가-를 논의의 대상으로 삼는다. 남성 중심의 문학 정전에서 여성이 오랫동안 배제되었다는 인식은 이미 널리 공유되고 있으며, 여성의 잃어버린 문학적 유산을 회복하는 일이 비단 근세 시대 문학이나 영국 문학에 국한된 문제도 아니다. 그러나 근세 시대 영국 여성의 글/쓰기는 텍스트와 문맥의 관계, 생산과 수용 및 재생산의 관계, 젠더와 장르의 관계, 여성의 삶, 관점, 저술을 형성하는 역사적 특성들, 초기 출판문화와 현대 디지털 재생산 시대에서 필사본의 위치, 변화하는 저자성, 권위, 장르의 개념 등 여성주의 비평가들이 고심하는 대표적 문제를 점검할 수 있는 유의미한 현장을 제공한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답하려는 노력으로 이 글은 먼저 기존 문학 비평에서 여전히 잘 포착되지 않은 근세 시대 영국 여성의 글/쓰기 속성을 살펴본다. 이를 통해 근세 시대 여성의 글/쓰기를 여성주의적 입장에서 재생산하는 과정에 개입하는 이론적, 실천적 도전에 대해 짚어보고자 한다. 이 글의 후반부는 두 가지 질문에 대해 집중적으로 살펴본다. 근세 시대 여성의 글/쓰기와 지적 노동이 갖는 특징을 살린 채 가시화할 방법은 무엇인가? 근세 시대 여성의 글/쓰기에 대해 역사적 민감성과 세밀함을 갖춘 여성주의 연구를 양성하는데 디지털 아카이브가 기여할 방안은 무엇인가?
여성생활사는 여성사 가운데 일상에 대한 미시적 연구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 여성 관련 연구는 ‘사회 내에서의 여성의 위상’, ‘여성 대상 교훈서’, ‘가부장제와 관련한 여성’ 등에 초점이 맞춰진 경향이 강하였다. 이러한 연구는 대체로 여성을 위한 교훈서, 공식적 자료-법전, 실록 등을 기반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최근 10여 년 사이에 조선후기 여성 생활사 자료가 수집, 번역, 출간되면서 조선 후기 여성들의 일상 삶을 좀더 세밀하고 미시적으로 조망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거시적 관점에서 조선시대 여성을 연구한 성과와 미시적 성과를 통합할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되었다. 그러나 현재 여성생활사 자료 수집은 나름대로 한계가 있다. 우선 남성들의 기록이라는 점, 지배층 여성들의 삶을 보여주는 자료 비율이 크다는 점, 1차적 자료라는 점 등이다. 본 논문은 이러한 문제 의식에서 출발하며 향후 여성 생활사 자료 수집 방향과 재가공에 관한 효율적인 방안을 모색해보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우선 수집 자료 범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한문 산문에서 벗어나 여성의 죽음을 애도하는 만시(挽詩), 여성 및 여성들의 생활을 소재로 삼은 시, 남성들의 행장 속에서 여성에 대한 서술 내용 등으로 확대함으로써 자료의 양적 축적을 이룰 수 있다. 이러한 일차적 자료를 토대로 이차적 자료-메타자료 작성은 필수적이다. 이를 테면 여성 인물들의 생애를 재구성하여 여성 인물사전을 제작할 필요가 있으며, 여성을 중심으로 한 인물 관계도 및 혼맥도 작성 등이 필요하다. 그리고 각 작품에 대한 상세 해제를 작성하는 일도 필수적이다. 이는 각 작품에 대한 상세한 설명 뿐 아니라 그와 연계되는 작품, 인물, 사건, 외부적 정보 등을 통해 여성 관련 자료들을 통합적,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길잡이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궁극적으로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하고 여성생활사자료 아카이브를 구축하는 기초로서 기능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인문학, 공학 등의 학제적 연구가 필수적이며 이는여성생활사가앞으로나아가야할방향이라고생각한다.
본고는 상층 여성 중심으로 창작, 향유되었던 국문장편소설을 대상으로 여성 지식인의 존재 양상을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여성 지식의 성격과 특징을 진단한 후, 그 의의와 한계를 통해 국문장편소설이 고전 여성 지식 체계에 편입될 가능성을 타진해 보고자 한 것이다. 본고에서 살펴본 국문장편소설 속 여성 지식인은 시서(詩書)에 능한 문인(文人), 천문지리(天文地理)와 상수학(象數學)에 밝은 예지가(豫知家), 불의에 항거한 가문의 대변인(代辯人), 가문 내의 스승이자 교육자(敎育者), 문무에 능통한 병술가(兵術家) 등으로 분류될 수 있다. 이들 여성 지식인이 보여주는 지식의 성격은 먼저, 지식과 지혜의 교직(交織)이다. 이때 지혜는 개인의 덕성이나 개성과 같은 성향의 측면과 실생활에서 얻은 고유의 경험이라는 체험적 측면으로 나뉠 수 있으며, 이들이 지식 축에 교직되면서 개별적이고 독자적인 여성 지식을 형성하고 있다. 다음은 타자화된 지식으로, 여성 지식인들의 지식이 가문을 위한 이타적 수단 한 편에 그 자신의 억압을 승화하고 치유하는 수단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은 공감과 소통의 지식으로, 이는 여성 지식이 권력과 결부되지 않고 혹은 권력의 자장을 벗어나 작동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국문장편소설 속 여성 지식과 여성 지식인의 양상은 기존의 남성 지식을 여성의 것으로 재구축했다는 점과 남성보다 뛰어난 여성지식인과 여성 지식의 영역 확대에 대한 담론 형성이라는 의의를 지닌다. 다만, 당대 현실에서 나타나는 것과 같은 여성 경험의 지식화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현대의 정보사회에서 정보의 양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면서, 많은 자료들이 인쇄물 중심에서 디지털화된 다양한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 따라서 정보의 분류체계에 있어서도 전통적인 문헌 분류체계보다 좀 더 확장성이 있는 전개가 필요시 되고 있다. 특히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고 관련 학문이 발전하면서 이와 관련된 자료의 양이 많아지고 분야도 넓어지고 있어 이에 대한 새로운 시각의 분류체계가 요구되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여성주제 자료에 대한 효율적인 분류체계에 대한 방안을 제안하고자 국내외 문헌 분류체계 및 온라인, 디지털 컬렉션 등을 포함한 새로운 방향의 분류체계의 현황을 분석하였다. 또한 여성주제 분야에 대한 키워드를 국내 일간지의 빅데이터를 활용하여 시대별 여성관련 키워드의 변화를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분류체계에 활용하고자 하였다. 국내 일간지는 동아일보의 1947년부터 2014년까지의 신문기사에서 여성관련 단어의 빈도수와 연관 연관어의 변화를 10년 단위로 살펴보았다.
본고는 한국 고소설에서 남성 주인공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문재(文才)에 뛰어나지만 아직 과거로 출세하지 못한 젊은 남성 주인공 ‘재자(才子)’라는 인물 형상이 출현한 것을 조선전기의 전기소설로부터 찾았다. 문치주의가 강화된 조선전기에 이르러서야 재자가 소설의 남성 주인공으로 일반화되었다. 조선전기의 전기소설은 사랑과 신의의 문제를 소설의 주된 테마로 삼았다. 전기소설의 사랑은 직입적이고 충동적으로만 보인다. 하지만 곧 서사는 신의에 기반한 진중한 약속과 헌신의 이야기로 바뀐다. 17세기 전기소설은 이러한 테마를 한편에서는 보존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그것의 변주를 시도하고 있다. 열정적 사랑도, 굳은 맹세도 시간과 운명의 힘 앞에 부식될 수 있다는 것을 <주생전>은 보여주고 있다. 그런가 하면 <운영전>은 훈육으로도 억압할 수 없는 사랑의 감정을 지고의 가치로 옹호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주생전>과 <운영전>은 사랑의 가치에 대해 정반대의 입장을 취하고 있는 소설이다. 17세기 후반의 이른바 규방소설에서는 이런 다양한 재자의 형상이 또 다른 방향으로 극단화되고 정형화된다. 풍류를 좋아하고 여색을 밝히는 ‘풍류재자’는 사대부 남성층의 낭만적인 이상을 담고 있는 인물이다. <구운몽>의 양소유, <창선감의록>의 윤공자, <소현성록>의 소운성 같은 인물들은 스스로 짝을 찾고 부부관계도 능동적인 풍류재자형 인물이란 점에서 서로 닮았다. 하지만 풍류재자의 자질과 가문을 빛낼 덕성이 일치하란 법은 없다. <창선감의록>과 <소현성록>은 가문을 위해 기질을 억제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작품이다. 규방소설의 작가들은 가문을 창달시키고 일부다처의 중혼관계를 옹호하기 위해 여성들에게 질투하지 말기를 권장하며 남성들에게는 치우친 사랑을 가중화란의 원인으로 비판적으로 지목했다. 하지만 상호독점적인 사랑의 속성을 벗어난 부부관계는 유희이거나 예의의 관계, 아니면 우정적 연대일 뿐이다. 그렇다고 전기소설이 형상화했던 상호독점적인 사랑의 환타지가 문학사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야담이나 필기 등 한문단편소설을 통해 이는 지속된다. 여기서는 사람을 구원하기도 하고 파멸시키기도 하는 사랑의 힘이 강조된다. 마지막으로는 이러한 재자의 형상이 어떻게 소멸되는지를 살펴보았다. 소설이 사대부 남성층이나 규방 여성층의 범위를 넘어 중하층 독자층에게까지 확산되었을 때 영웅소설의 영웅 형상이 출현한다. 영웅은 재자의 후예이지만 재자의 자질을 무력으로 바꾸어놓는다. 재자를 추락시키는 것은 세태소설도 마찬가지다. 19세기 세태소설은 재자의 형상이 유지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이 논문은 17세기 중반~18세기 중반에 생산된 ‘득옥 이야기’의 전개 양상과 성격에 대해 연구한 것이다. 이 이야기는 『국당배어(菊堂俳語)』, 『이순록(二旬錄)』, 『성호사설(星湖僿說)』, 『청죽만록(聽竹漫錄)』 등에 각기 다른 버전으로 실려 있다. 득옥(得玉)은 인평대군(麟坪大君)의 저택에 출몰했다고 전해지는 여귀(女鬼)이다. 기생 출신으로 인평궁의 시비(侍婢)가 된 득옥이 죽음에 이르는 과정, 그 후 득옥 귀신이 일으키는 기이한 사건들이 서사의 주요 내용이다. 득옥의 죽음은 남성지배구조에서의 남성들의 성적 억압과 여성들의 질투에 의한 것이다. 억울하게 죽은 득옥은 직접 해원, 즉 복수에 나서고, 그가 일으키는 소동이나 피해의 규모가 커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다. 제시한 자료들은 여성 귀신이라는 타자의 형상을 보여준다. 이방인이자 출신이 미천한 득옥의 처지가 사건의 발단이 되고, 득옥 귀신의 불온함이나 공격성이 부각된다. 귀신의 원한을 풀어주는 과정이 없거나 불충분하여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며, 이에 따라 귀신은 인평대군 집안에 지속적으로 복수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텍스트 간에는 시차가 있으며, 이야기의 결구도 다르다. 가장 앞서 기록된 『국당배어』의 자료는 원한을 품은 여귀 이야기의 기본적인 형태이며, 그 결말은 인평대군 부부를 병들어 죽게 만드는 데 한정된다. 그러나 이보다 70여 년 이후에 지어진 『이순록』과 『청죽만록』, 『성호사설』에서는 득옥 귀신으로 인한 괴변(怪變)이 일어난 뒤 인평대군 가문 전체가 몰락하는 것으로 서술된다. 즉 멸문(滅門)의 동기로서 득옥이라는 불온한 타자가 설정된 것이다. 이것은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 등 실제 역사적 사건과 관련된 것으로, 득옥 서사와 인평대군가의 멸문이 연결되어 귀신담이 재해석되고 재생산된 것이다.
이 논문에서는 17세기부터 20세기 초에 이르는 총 조선후기 여성 생애사 자료 총 2,328편을 대상으로 열녀 담론과 미망인 담론을 추린 280편의 텍스트를 선정하여 총 목록과 서지사항을 제시하고, 조선후기 열녀 담론(사)와 미망인 담론(사)의 현황과 추이에 대한 통계해석적 분석을 시도했다. 조선시대 열녀의 정려 기준을 정하는 문제는 17세기에는 논쟁의 대상이 되었으나, 18세기로 가면서 점차 남편을 따라 죽는 ‘자결’이 기준점이 되는 추세를 보였다. 자결을 택한 여성의 거의 대부분(70%이상)은 남편이 사망 직후, 또는 상례 후에 자결했다. 기한을 두고 자결한 경우, 이들이 가정 내적 의무를 종료하기까지 자결을 유예했다는 점에서 그 삶은 ‘기약된 죽음’에 다름없었다. 열녀에 대한 가족과 지역민, 사대부와 국가의 관심은 정려나 급복 등 사회적 보상으로 표현되었고, 개인적 차원에서는 글쓰기를 통한 역사ㆍ사회적 인정과 지지의 형태로 이루어졌지만, 다른 시각에서 보자면 이는 ‘미망인’에 대한 사회적 ‘감시망’이 작동한 결과로 볼 수 있고, 여성의 자결은 이에 대한 자기 검열과 이념적 통제 결과로 해석할 여지가 충분하다. 자결 여성의 연령은 모든 시기에 걸쳐 20대가 가장 많았으며, 18세기는 30대, 19세기는 10대가 그 다음을 차지했고, 40대를 제외한 거의 모든 연령대에서 자결이 행해졌다. 여성의 자결은 대체로 음독이 우세했으며, 단식, 목맴 등이 그 뒤를 이었다. 남편의 사망 후에 여성은 자기 돌봄을 소홀히 하거나 단념하여 건강을 해쳤고, 이는 자결과 사망의 경계가 불분명한 요인이 되었다. 시기별로 자결하지 않고도 살아서 지킨 열행만으로도 정려된 경우가 있었지만, 대체로 이는 19세기에 급증했다. 19세기말, 20세기 초에는 작가 개인이 ‘열’ 관념을 재정의하면서 근대 초기의 변화하는 시대적 위기를 ‘열녀’를 표장하는 형식으로 대응하려는 추세도 나타났다. 그러나 여기에는 여성 자신의 목소리나 의지가 배제된 채, 작가가 사망 여성의 심정과 의지를 대변하는 해석학적 도치가 개입되는 위험성이 내포되어 있었다. 미망인 담론은 18세기의 자료(66편)가 가장 많은데, 이 시기에는 자결하지 않은 이유를 구태여 서술하지 않은 자료가 전체의 82%(54편)이다. 전 시기에 걸쳐 미망인은 거의 모두 장수했다. 미망인은 자신의 정체성이 ‘미망인’임을 확실히 인식했으며, 담론 내용은 여성의 가정 내적 의무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미망인의 기쁨이나 행복, 정서적 만족감 등을 기록되지 않아, 모종의 감정 통제가 서술 문법으로 작용했음을 알 수 있다. 20세기 초에 이르면 여성의 열행을 국가 행정과 윤리적 정통성의 모범으로 위치 지으려는 문화 정치의 시선이 확대되었으며, 여성의 의지와 심리, 정서조차 ‘남편의 마음’으로 대리-해석함으로써 여성의 당사자성을 박탈하는 해석학적 도치가 심화되었다.
조선후기 열녀의 삶과 죽음은 남성 사대부의 열녀전을 통해 유전되었다. 여성의 언어로 여성의 삶과 죽음이 기록되지 못했다는 점에서 열녀전을 여성 문학의 범주에 모두 포섭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열녀전 속 여성의 삶과 죽음이 모두 헛된 것이라 간주할 수는 없다. 열녀전에서 조선후기 여성적 삶의 실체와 사대부 남성의 욕망을 분리해낼 수 있다면, 열녀전이 재현된 텍스트로서 여성문학의 범주에 포섭될 수 있을 것이다. 조선후기 남성 사대부 문인들에게 회자되었던 열녀의 대표는 평민 출신의 향랑이었다. 다수의 문인들이 향랑 이야기를 입전하였는데 이들 남성은 처음에는 향랑 이야기의 사실성을 강조하는 경향을 보여주었지만 점차 사실성을 탈각시켜 낭만적 이야기로 윤색하기 시작했다. 낭만적 색채를 띠게 된 향랑전에서 여성적 삶의 실체는 사라지고 허구의 분식을 통해 비극적 정조만 남게 된다. 열녀에게 덧씌워진 낭만성은 남성의 욕망이 투사된 결과로 볼 수 있다. 남성은 여성의 삶과 죽음조차도 남성적 방식으로 전유한다. 열녀전은 남성의 욕망이 여성에게 투사된 결과물인 것이다. 남성 사대부들은 순절한 여성을 열녀로 칭송했지만 정작 죽은 여성은 대를 이을 자식을 기를 수도, 남겨진 부모를 모실 수도 없다. 이에 조선후기 남성 사대부들은 살아있는 열녀의 이미지를 만들어냄으로써 남겨진 아이와 부모를 여성이 부양하도록 그 책임을 전가하였다. 가부장제를 유지하기 위해 열녀로부터 죽음을 소거한 것이다. 또한 남성 사대부는 여성이 남편에 대해 의리를 다하기를 바라기도 한다. 조선후기 열녀는 남성을 위해 복수를 하는 한편 남편의 장례를 위해 고난을 기꺼이 감수하는 면모를 보여준다. 이처럼 열녀전은 여성으로서의 실존과 투사된 남성의 욕망이 공존하는 텍스트로서 면밀히 음미되어야 할 것이다.
본 연구는 조선후기 남성지식인이 남긴 유모 관련 기록들에 나타난 대리 모성에 대한 인식을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유모의 사후에 쓰인 남성지식인들의 기록은 대체적으로 유모의 삶 가운데 자신과의 인연을 중심으로 서술되며 유모로서의 근면함이 덕성으로 강조된다. 그 가운데 드러나는 유모의 현실은 본인의 자식이나 남편과는 정서적으로 친밀한 가정을 이루지 못하고 가혹하게는 자식을 잃는 경우도 생기며, 낮은 신분과 빈곤한 경제사정으로 인해서 모성의 전이가 강제되어 보살피는 아이에게 모성을 소진하고 정성과 바람을 투사하는 것이었다. 유모의 노역을 담당하는 인물들의 이러한 행동들은 기록자에게 주인 집안의 가족 일원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진정성으로 기억되기보다는 주인 집안에 대한 충성으로 읽혔다. 그러나 이러한 남성 지식인들의 글에서 유모에게 기대하는 자질이나 미덕과는 달리, 유모를 수유나 양육을 담당하는 대리모성으로서 사용 가능한 소유물로만 판단하지 않고, 본인과 그 가족까지 아우른 관계 속에서 모성을 가진 한 인간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존재했다. 유모의 노역을 하는 여성의 실체를 그 삶의 질곡 속에서 분명하게 보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선은 신분적으로나 젠더면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기 힘든 대리 모성에 대한 이해를 드러낸다.
『혜담집(蕙萏集)』은 윤제규(尹濟奎, 1810-1879)와 기녀 혜사(蕙史)가 주고받은 것으로 설정된 한시를 엮은 시집이다. 이 시집은 조선 후기에 부상하였던 자유연애의 갈망, 성적 욕망, 신분 상승의 의지를 다각적으로 보여준다. 또 연작 화답시 구성과 남자 화자의 태도, 시조의 수용을 살펴볼 때, 『혜담집』은 한시의 전통적 규범을 준수하고 있다기보다는 국문 문학의 영향이 강하게 감지되는 작품이다. 특히 성애 장면을 노골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주목을 요한다. 물론 『혜담집』은 평지돌출적인 것은 아니다. 도덕에 규제받지 않고 자유롭게 분출되는 성적 욕망이 19세기 문학 곳곳에서 확인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의 성적 경험을 노골적으로 형상화하는 것은 전례가 없기에 『혜담집』은 문제작으로 다루어질 필요가 있다. 아울러 『혜담집』은 화답시라는 특징적 구조에 기반하여 남성 화자와 여성 화자의 욕망과 그 충돌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보다 흥미로운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혜담집』 전반부에 비치던 혜사의 목소리, 신분 상승의 욕망은 점차 희석되어가고 도구로서의 육체만 남는다. 이는 남성 화자의 팽창되는 욕망하에 여성의 현실적 욕망은 축소되거나 외면 받는 국면을 시사해 준다.
본고에서는 <덴동어미화전가>에 나온 인명과 지명 등을 단서로 주인공 임 여인의 생애와 관련된 역사적 사실들을 고증했다. 먼저, 임 여인의 두 번째 결혼생활과 관련하여 언급된 ‘성 쌓던 조 등내’가 1871년 상주(尙州) 목사(牧使)로 부임한 조병로(趙秉老, 1816~1886)라는 점을 확정하고, 10대 후반의 임 여인이 상주의 이 승발과 재혼한 시기를 1869년경으로 비정했다. 다음으로 50대 초의 임 여인이 마지막 남편 조 첨지와 사별한 계기인 ‘수동별신굿’이 홀수 해의 정월대보름에 열렸고 1903년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열리지 않은 행사임을 고려하여, 임 여인이 ‘덴동어미’라는 이름을 얻게 된 상한선을 19세기말의 홀수 해로 추정했다. 이와 같이 고증에서 밝힌 바는 기존에 확정된 ‘병술년(1886) 괴질’과도 시기적으로 부합하며, <덴동어미화전가>에 재현된 주인공의 생애가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벽두까지 걸쳐 있다는 확실한 증거가 되어 준다. 다음으로 작품 후반부의 ‘봄 춘 자 노래’에 언급된 지명(地名)의 분석을 통해 <덴동어미화전가>의 바깥 액자에 해당하는 시공(時空)이 20세기 초 순흥의 비봉산(飛鳳山)이고, 참석자의 대부분이 순흥부(順興府)를 고향으로 둔 여성들이라는 점을 고증했으며, <덴동어미화전가>의 작가가 이 지역과 관련한 해박한 역사지리적 교양을 지닌 여성임을 추론했다. 한편 <덴동어미화전가>는 필사본 『소백산대관록』에 그 표제작인 가사 <소백산대관록>과 함께 수록되어 있다. <소백산대관록>이 순흥을 중심으로 한 소백산 인근의 역사지리를 구체적으로 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덴동어미화전가>와 자매편으로 논의될 필요가 있음을, 두 작품의 창작시기와 문체, 사용된 어휘의 유사성을 들어 제기했다.
이 글은 <서유록>에 나타난 노정과 글의 구성, 당시 새롭게 접하는 서구나 일본의 문물에 대한 태도, 자기재현 양상을 분석하여 강릉 김씨 부인의 문명의식과 여성의식을 살펴본 것이다. <서유록>은 강릉 김씨 부인이 1913년 강릉에서 서울로 여행한 기록으로, <경성유록>이라는 책에 <황성신문> 기사를 번역한 것과 함께 묶여 전한다. 강릉 김씨 부인은 서울 여행을 통해 일본 군대, 일본 사람들의 장사, 일본 사람들의 주택 등을 보고 분개하는 한편, 놀라워하며 문명개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강릉 김씨 부인은 문명개화를 위해 여성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데 그 논리와 어조는 당당하고 적극적이다. <서유록>은 향촌 출신의 여성이 서울 여행에서의 문명 체험을 통해 문명개화의 필요성을 깨닫고, 가족의 일원에서 여자계의 한 여성, 국민의 한 사람으로 인식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강릉 김씨 부인의 이러한 적극적인 태도와 인식은 전통적인 의식에 갇혀 있는 것으로 재현되던 구여성의 타자화된 이미지를 벗어난 새로운 구여성상을 재현한 것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본 논문은 權純九(1866~1944)가 편찬한 여훈서인 『부인언행록』(1916)의 간행배경, 체재와 편집원리 및 내용에 공존하고 있는 전통적 지향과 탈전통적 지향의 양상을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부인언행록』은 『열녀전』의 형식을 본 따 여성인물전기집의 형태로 편찬된 여훈서로, 보다 구체적인 분류 항목을 두어 한층 더 세밀하게 여성들을 규율하고자 하였다. 현토체 한문에 언해문을 붙인 형식과 어려운 어휘에 붙인 주석들은 여성들의 ‘국한문 리터러시’를 제고하는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부인언행록』은 전통 여훈서에 비해 세밀해진 덕목의 분류기준에 맞추어 원전의 맥락에 변형을 가하는데, 이것은 전범이 되는 여훈서를 재가공하고 편집하여 당대에 맞게 변개하는 근대전환기 여훈서 편찬의 일단을 보여준다. 『부인언행록』에는 전통적 가치를 고수하고자 하는 측면과 전통적 가치에서 벗어나 있는 측면이 공존하고 있는데, 전자는 ‘烈’과 ‘家’, 후자는 ‘學’이라고 할 수 있다. 『부인언행록』은 <守節>에 가장 많은 20명을 배치함으로써, 이 여훈서가 여성에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덕목이 무엇인지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여타의 세분화된 항목들에서도 열행을 나열하여 강조하고 있다. 『부인언행록』의 ‘烈’에 대한 강조는 식민지시기에 들어서도 결코 수그러들지 않은 烈에 대한 가치부여를 드러내며, 전통시대부터 지속된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완고한 통제가 얼마나 해체하기 어려운 문제였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烈’에 이어 『부인언행록』에서 지향하고 있는 전통적 범주의 가치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家’이다. 『부인언행록』은 전통적인 여훈서의 형식을 띠고 있는 만큼 그 내용에 있어서도 전통 여훈서들이 주요하게 다루고 있는 ‘가문의 며느리’로서의 역할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리고 이전에 비해 세밀해진 분류 항목을 세워 혼인에 의해 맺어지는 모든 관계들을 포용하고자 했다. 근대전환기 여훈서에서 가족구성원들 간의 화목을 강조하는 경향은 『부인언행록』만의 일은 아니었으며, 그 배경에는 당시 새로운 가족론이 대두되고 혈연적 가족주의가 비판의 대상으로 떠오른 상황이 자리하고 있다. ‘烈’과 ‘家’가 『부인언행록』이 고수하고 있는 전통적 가치를 대표한다면 ‘學’은 전통적 여훈서의 관행에서 벗어난 탈전통적인 측면이라고 할 수 있다. 전통시대에 여성의 학문 즉, 여성에 대한 문자 교육은 제한적이고 사적인 범주에서만 이루어졌으며, 여성의 글 읽기와 글쓰기는 권장되지 않았다. 그런데 『부인언행록』이 마지막에 <學問>이라는 별도의 항목을 내세워 여성들에게 학문을 권장한 것은 여훈서의 전통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근대전환기 여훈서들이 여성에게 학문을 권한 것은 여성 자신의 주체적 성장이나 계발을 위한 것이 아닌 자녀 교육을 위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그 시도를 평가 절하할 필요는 없으며, 그것은 전통시대 여훈서에서 보이는 여성의 학문적 활동에 대한 방어적 경계에 비하면 분명 긍정적으로 변모해가고 있는 지점이라고 평가할 만한 것이다.
본고는 배우 가수 이경설이 녹음에 참여한 유성기 음반 자료를 중심으로 그 전체 모습과 작품들을 살펴본 것이다. 이를 위해 2장에서는 먼저 이경설의 생애와 활동을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이어서 3장에서는 그가 녹음에 참여한 유성기 음반의 전체 모습을 제시했다. 이경설은 살아생전에 돔보 음반회사, 시에론 음반회사, 포리돌 음반회사에 유성기 음반 작품을 남겼다. 그런데 기존에 정보가 부족해서 이경설의 작품으로 잘못 알려진 예도 있는 바, 본고에서는 객관적 근거를 바탕으로 이경설의 작품 목록을 다시 작성했다. 이 또한 다른 자료가 발굴되면 수정하거나 보완해야 하겠으나, 현재로서는 최선의 작업이었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4장에서는 이제까지 이경설의 작품으로 보이는 두 편의 대중가요와 두 편의 극 작품을 소개했다. 이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거의 언급이 없던 부분인데, 본고에서는 이를 중요하게 생각하여 그의 삶과의 연계속에서 작품 분석을 시도하고자 했다. 극 작품 두 편 중 한 편은 ‘이경설 안(案)’이라 적혀 있고 실제 작품도 아직 발굴되지 않아서 그 온전한 모습을 알 수 없다. 다만 <결혼 전선 이상없다>라는 제목을 볼 때, 비극이 아닌 희극 작품이라 추정할 뿐이다. 반면에 그가 작사한 대중가요 <숨죽은 주장>은 가사와 음원이 현재 모두 발굴되어 있다. 그리고 <망향비곡>과 <망향비곡 주제가>는 음원은 아직 찾지 못했으나 가사지는 온전하게 남아있어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세 작품 모두 비극에 해당하고 이경설이 죽기 직전에 창작한 작품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경설 사후에 유작의 형태로 대중에게 소개되었다. 현재까지 광복 이전에 활동했던 여성 작사가로는 이준례, 김정숙, 최승희 정도가 알려져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제 여기에 이경설 이름을 한 명 더 추가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유성기 음반 중 극 음반에서 여성 작가를 거의 찾을 수 없는 중에 이경설이라는 여성 작가를 발굴한 것은 이 논문의 성과라 할 수 있다.
<아랑설화> 계열의 여성 원혼 설화들은, 여성 원혼 설화 중에서도 독립된 유형으로 분류되어 연구되어 왔다. 죽은 아랑이 원혼으로 등장해서 관아에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을 죽인 범인을 잡게 된다는 서사구조를 지닌 이야기들을 <아랑설화>류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그 해원과 문제 해결의 방식의 유표성 때문이다. 이러한 서사구조에 주목해 <마을, 아치아라의 비밀>(이하 <마을>)을 <아랑설화>의 현대적 변용으로 해석하고자 한다. 이는 기존 연구에서 지적되었던 <아랑설화>의 한계를 여성주의적으로 ‘번역’한 텍스트이다. <아랑설화>의 서사구조 분석을 통해 피해자인 아랑의 정체성, 아랑이 겪게 되는 젠더적 문제, 그리고 대리 해원자를 통한 공동체 내부에서의 해결이 나타나는가에 주목한다. 젠더적 폭력을 겪는 아랑형 여성이 등장하는가, 이러한 문제가 지연되거나 은폐되는가, 그리고 그 해결이 공동체의 질서와 연결되거나 공표되는가의 문제이다. <마을>에서는 아랑형 인물들이 복수화되면서 분화되지만 피해자와 문제 해결자는 구분되지 않는다. 피해자와 문제 해결자는 마을의 여성적 연대이며 모계 혈통의 자매를 포함하면서도 혈연관계로 한정되지 않는 넓은 의미의 자매로까지 확장된다. 이는 공동체의 복원이 아니라 마을 공동체의 불안과 해체를 야기하지만 그 과정에서 대안적 공동체의 가능성을 암시한다. <마을>의 문제 해결과 진실찾기는 오히려 가장 견고한 사회적 역할론인 혈연 신화에 대한 비틀기로 연결된다. 이는 <아랑설화>가 유지했던 공동체의 기반이기도 하다. 복수화된 여성 피해자들이 연대를 통해 자신들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마을>의 서사는 결국 공동체의 붕괴로 이어지진다. 그러나 거짓된 공동체의 붕괴는 새로운 연대를 통해 이루어졌고, 은폐와 비밀, 가부장적 질서가 지배하던 기존의 마을이 붕괴되면서 다음 세대에 이어질 대안적 공동체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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