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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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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에 꼬리말처럼 따라붙는 ‘시적인 노랫말’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본 연구는 이 질문에서 출발해 <노트르담 드 파리>의 감정적인 서사와 사회적인 서사, 두 층위에서 가사가 구현하는 시적인 특성을 분석하였다. 무용이 인간의 몸을, 음악이 소리를 이용해 서사에 참여하듯이, 가사는 음운, 통사, 어휘, 구두점 등 언어의 물질적인 특성을 이용해 담화의 의미화 과정signifiance에 참여한다. 예를 들어 감정적인 서사를 대표하는 <no.20 Belle>에서 각운 /el/은 에스메랄다로 인해 야기된 작중인물들의 동요와 갈등을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개인적인 프로조디prosodie personnelle 로 작용한다. 또한 위고의 사회적, 윤리적 성찰을 현대화한 “불법체류자들”의 서사에서는 각운/e/와 알렉산드렝의 운율을 통해, 한편으로는 소외당하고 추방당하는 이민자들의 숙명을, 다른 한편으로는 종교나 국적의 차별 없이 함께 살 수 있는 세상에 대한 꿈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이처럼 <노트르담 드 파리>에서 가사는 음악에 맞춰 스토리를 전달하는 1차원적인 서술도구가 아니라 스스로 ‘리듬적-프로조디적-시적’ 의미를 창출하는 은유와 상징의 주체로 기능한다. 가사를 정보전달의 수단을 넘어 한 편의 시로 다루고자 했던 <노트르담 드 파리>의 문학적 특수성이 드러나는 지점이다.
발자크는 프랑스 작가 중 법을 가장 많이 다룬 작가다. <인간극>에 등장하는 민법, 상법, 형법의 드라마는 19세기 당시 법정의 이미지와 소송의 사례들을 생생하게 전한다. 그런데 발자크 소설에 등장하는 소송 사례 중에는 어음 사기, 유산상속, 결혼계약, 그리고 파산 등 돈과 관련된 민사, 상사사건이 유난히 많다. 본 논문에서는 「잃어버린 환상」과 「세자르 비로토」에 나타난 상법, 특히 파산법 시행의 사례를 연구하였다. 이 두 소설은 19세기 당시 파산법이 어떠했는지, 그것은 어떻게 적용되었고 어떤 비판을 받았는지 등에 대해 생생하게 전한다. 본 논문에서 연구한 파산 관련 소설의 무대는 모두 왕정복고 시절이며, 소설 속 파산은 1807년 상법 제3권 437조-614조에 명시된 파산법을 따른다. 그런데 1807년 파산법은 채무자에게 극도로 엄격했기에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고 편법이 난무했다. 발자크는 이러한 법의 엄격성과 실제에서의 느슨함, 그리고 채무자에 대한 신병구속의 부당성과 소송절차의 남용 등에 대해 비판의 수위를 높임으로써 인간 사회에 만연하는 법의 악용과 부조리를 비판한다.
본 연구는 프랑스 포스트휴머니즘 문학 작품에 나타난 ‘포스트’ 시대의 특징적 자아에 관한 물음을 제기한다. 미셸 우엘벡의 소설 「어느 섬의 가능성」은 휴머니즘의 가치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오늘날 현대인의 자아가 해리화되는 양상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우리는 이것을 ‘내러티브 자아’와 ‘신체 자아’의 관계로 고찰하기 위해 자크 퐁타뉴의 신체적 세미오시스 이론을 분석 도구로 삼아 작품 분석을 시도하였다. 첫 번째 장은 ‘포스트’ 시대에 주체가 결핍된 가치를 실현함으로써 결핍을 채우는 표준 서사가 불가능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내러티브를 폐기할 수 없는 주인공의 곤경을 기술하였다. 이어지는 두 번째 장에서는 내러티브의 불가능성에 직면한 현대인의 자아(내러티브 자아)가 현실 층위와 메타 현실의 층위로 해리화하는 흥미로운 양상을 다루었다. 주인공의 신체-행위소는 한편으로 기존의 낡은 가치를 습관적으로 실현하는 행위를 반복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직 알지 못하는 새로운 가치의 출현을 감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는 ‘내러티브 자아’와 ‘신체 자아’를 중재하면서 둘 사이의 부조화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신체의 독창적인 전략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본 연구는 에밀 졸라의 소설『제르미날』 의 신문연재 텍스트 및 해당 신문에 대한 연구를 통해 19세기 매체환경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연재소설이 가지고 있었던 ‘교차성’이라는 특질에 관해서 고찰함을 기본 목표로 한다. 이를 통하여 ‘교차성’이라는 혼합적 개념을 통해 작가, 신문, 독자층이라는 각각의 생산자와 고객들이 신문과 신문연재소설이라는 매체 텍스트를 통해 서로 어떤 식으로 소통이 가능했는지를 밝힌다.
세 가지 언어와 문화가 공존하는 알제리 사회에서 프랑스어로 활동하는 알제리 작가들에게 있어서 언어적 상황은 그들의 작품에 어떻게 나타나는가? 그들에게 있어서 “어떻게 쓸 것인가”의 문제는 바로 그들이 처한 이 특수한 언어적 상황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고, 그 언어적 상황은 알제리 현대사에서는 특히나 많은 변화를 겪었다. 우리는 독립 전과 독립 후 서로 육십여 년의 차이를 두고 프랑스어로 작품 활동을 한 알제리의 대표적인 두 작가, 카텝 야신(1929-1989)과 카멜 다우드(1970- )의 작품을 비교 분석하여 변화한 언어적 상황과 그에 따른 프랑스어에 대한 그들의 입장이 어떻게 달라지고 그것이 어떻게 작품에 반영되는지를 살펴본다. 1956년 『네즈마』를 발표했던 카텝 야신에게 있어서 프랑스어란, 비록 그가 이 언어를 완벽하게 구사하고 이 언어로 사유하며 위대한 작품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내면에서는 여전히 나와 동화될 수 없는 타자의 언어로 남아 있었다면, 2013년 『뫼르소, 살인사건』을 발표한 카멜 다우드에게 있어서 프랑스어란 적들이 남기고 떠난 ‘주인 없는 재산’으로서 이제는 나의 일부가 된, 그래서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도구가 된다.
본 연구는 17세기 간투사 çà와 형태적 변이형 ça의 용법상의 관계를 통해서 이 시기의 철자법이 가지는 역할의 중요성을 보이고자 한다. 중세 프랑스어는 물론 고전 프랑스어는 한 단어가 여러 개의 철자로 표현될 수 있는 다양성을 가진다. 예를 들어 부사 çà의 화용화 결과물인 çà는 형태적 변이형 ça(cha, sa)와 철자상의 구별 없이 동일한 언어 단위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oh çà와 ô çà와 같은 구문에서도 나타난다. 16세기의 문법학자와 사전편집자들은 실제 발음과 철자상의 간극을 최소화하여 합리적인 철자법 체계를 구축하고자 하였고, 이러한 노력을 바탕으로 아카데미 프랑세즈 사전을 출간한다. 이와 함께 ça를 지시대명사 cela의 축약형으로 재해석함으로써 두 철자를 구별해야할 필요성을 느꼈다.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해서 본 연구는 프랑텍스트를 기반으로 동일한 조건(17세기)하에 자료체를 구축하여 이 시기의 çà와 ça의 실제 사용 양상을 살펴보았다. 철자법 개혁이 즉각적인 언어 사용상의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았지만, 이전 시기와는 달리 철자 차이에 따른 용법의 구분 또한 차츰 이루어지고 있었다.
외국어를 배우는 데 있어 문화능력이 중요한 요소로 자리매김 하면서 문화교육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것이 사실이다. 프랑스어 교육학 분야도 예외는 아닌데 최근 들어 문화교육의 방법론으로 각광 받고 있는 것이 ‘상호문화 교육’이다. 하지만 높아진 관심에 비해 관련 연구들의 상당수는 상호문화 교육이 무엇인지, 왜 필요한지, 또 그것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어떤 측면들이 고려되어야 하는지 등 관련 쟁점들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뒷받침 되지 않고 있다. 급기야는 세계화, 혹은 국제사회 이해교육 차원의 문화교육을 상호문화 교육과 동일시해버리기도 한다. 본고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프랑스어 교육학 분야에서 ‘상호문화적’interculturel이라는 용어가 적절한 맥락에서 사용되기를 제안하는 연구이다.
<똥파리>의 주요 등장인물들인 상훈, 영재, 만식, 영재엄마, 영재친구 등과 <언터처블 1%의 우정>의 필립과 드리스는 여러 장면에서 각각 자신들의 계급에 맞는 언어적 아비투스를 드러내고 있다. 이런 점에서는 부르디외의 아비투스 개념이 잘 적용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관객들은 영화 <똥파리>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대사인 ‘씨발놈아’라는 욕설에 큰 관심을 보였고, GV(guest visit, 출연진들의 관객과의 만남, 무대 인사) 현장에서 감독이 ‘씨발놈아’라는 말을 꺼낼 때마다 관객들은 환호를 보내기도 하고 또 그 욕설을 따라 했다. 그것은 욕에서 불쾌감이나 위협, 분노이외의 다양한 의미에 타인들이 동의했다는 의미로 들린다. 다시 말해 최소한 기층 도시빈민 이외의 많은 중산층이나 상류층 관객들이 상훈의 욕의 다양한 의미에 찬동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즉 욕설이 하층민만의 언어적 아비투스가 아니라 모든 계층의 언어적 아비투스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결론은 부르디외가 세 가지 계급으로 나누어 각 계급의 언어적 아비투스가 다르다고 가정한 가설에 어긋나는 것이다. 그리고 <언터처블 1%의 우정>의 몇몇 다른 장면들에서는 필립과 드리스가, 부르디외의 아비투스 개념이 예견하는 것과는 달리, 각자의 계급에 해당하는 언어적 아비투스를 드러내기는커녕, 정 반대 계급의 언어적 아비투스를 드러내고 있다.(그림 21과 그림 24) 이런 점들은 서로의 계급이 어느 정도 상대 계급의 좋은 점을 모방해 계급이 화합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구조화된 아비투스가 부르디외의 예견보다는 훨씬 덜 구조화되어 있어서 아비투스의 변형 가능성이 짧은 시간에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두 영화가 부르디외의 언어사회학 이론으로 분석될 수 있다는 것을, 또 한편으로 그 이론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퀘벡 페미니즘의 특징은 이론적 분석이나 학문적 연구보다는 자신들이 처한 정치사회적 문맥과 담론에 따라 대응하고 움직인 실천 운동이라는 것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시대의 요청에 따라 때로는 시몬느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나 크리스틴 델피Christine Delpy와 같은 프랑스 유물론 페미니즘 이론이 때로는 미국의 블랙 페미니즘, 퀴어이론, 교차성 이론 등이 여성의 정치사회적 현실을 분석하는 방법론을 제공하였다. 문화적으로는 프랑스와 가깝지만 지리적으로는 미국과 가까운 이유로 퀘벡의 페미니즘은 유럽과 아메리카, 두 지역 페미니즘 사상의 긴장, 타협, 그리고 새로운 모색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겪었다. 또한 식민지 지배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였던 경험으로 인하여 제3세계 탈식민주의 이론의 영향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퀘벡 페미니즘은 주변의 문화적 혹은 정치적 강대국의 이론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자신만의 지역적 전통과 문화를 만들고자 했다. 우리의 연구는 조용한 혁명기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퀘벡 페미니즘 운동이 정치사회적 변화에 따라 중요한 이슈를 만들어내고 여성과 페미니즘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형성하는지 페미니즘 단체의 활동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이를 위해서 퀘벡 정치사회에 대한 역사적 고찰과 함께 그 시기에 영향력과 동원력을 갖추었던 퀘벡 페미니즘 단체의 이념과 활동내용을 살펴보았다. 이를 통하여 퀘벡 페미니즘이 어떻게 더 이상 여성의 억압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혹은 페미니즘이 애초에 약속한 것들이 제도화된 페미니즘으로부터 더 이상 나올 수 없으므로 페미니즘의 폐기를 주장하는 서구 페미니즘과 차별화를 이루면서 동시에 오늘날 퀘벡의 정치사회적 담론을 비판하고 미래를 향해 추동해가는 힘을 지니게 되었는지 연구했다.
교육에 대한 권리는 대한민국에서와 마찬가지로 프랑스에서도 헌법으로부터 연원(淵源)하며 동등한 법률적 보호와 기본권으로서의 가치를 항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의 교육제도와 대한민국의 교육제도는 여러모로 상이해 보인다. 필자는 본 논문에서 철학적ㆍ법적 접근을 통하여 한국식 모델의 분석이 드러내는 민주주의에 대한 한국식 모델의 정당성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프랑스와 대한민국의 첫 번째 차이점은 개념상의 차이로서, 이는 인간의 가치와 사회 내부 혹은 사회 한 가운데 있는 인간의 제 위치에 관한 것이다. 프랑스와 대한민국의 상이한 인간관과 세계관은 대한민국 헌법 제 31조의 문구에 반영되며 해당 조문의 모호성(模糊性)은 우리를 세 가지 결과로 이끈다. 우선 민주주의적 접근에 필요한, 평등이라는 보편칙(普遍則)의 이해에 대한 프랑스와 대한민국간 시각 차이는 헌법 조문을 분석함으로써 드러날 것이다. 한편, 사회적 권리로서의 교육권을 보장하는 데 국가의 개입은 필수불가결하다는 점에서, 국가의 불개입을 정당화하기에 이르른 자유의 원칙에 대해서도 동일한 비판이 제기된다. 그다음 내재적 가치가 거세된 채, 자의적(恣意的) 법해석의 여지를 남기고 효율적인 법적 틀 없이 적용되는 교육권의 비민주적 성격이 검토될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이러한 법률적 공백(空白)이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표현되고 인간성을 상실한 채 교육의 수익성에 편향된 교육제도의 시행을 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실태를 드러낼 것이다. 필경 대한민국의 교육제도는 동양의 인간관•세계관과 서양의 법률 패러다임간의 양립 또는 절충의 한계를 반영한다. 법률과 도덕률간의 일관성이 모든 민주사회의 필수적인 구성요소인 바, 교육의 근간을 이루는 기본개념들에 대한 대대적인 고찰이 시급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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