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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 말흘리고려시대 건물지의 성격에 관한 연구

A Study on Characteristics of the Changnyeong Malheuli Sites of Koryeo Period

주영민(Joo, YoungMin)

간행물명 : 한국상고사학보
권/호 : 한국상고사학보 제65호 / 2009 / 131~150 (20pages)
발행기관 : 한국상고사학회
간행물유형 : 학술저널
주제분류 : 역사학
파일형식 : 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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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한국어초록
본고에서는 별서건축과 사찰건축으로 상반된 의견을 보이고 있는 말흘리건물지의 성격을 밝히기 위해 발굴조사된 건물지를 A, B지역으로 나누어 개별건물지의 평면구조를 검토해보았다. 검토결과 건물지에서 난방용으로 온돌을 사용한 것과 벽을 설치한 것, 그리고 마루와 방이 연접하여 설치된 것을 알 수 있었으며, 이와 관련하여 그간의 연구와 다른 사실이 확인되었다.
온돌의 사용과 전파에 관한 그간의 문헌 중심의 연구 성과에 의하면 13세기 전기에 개경을 중심으로 중상류층의 기거처에 온돌 사용이 보편화되고 곉末에 한반도 남부지방으로 확산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중심연대가 12세기 중반에서 13세기 초기인 한반도 남부지방에 위치한 말흘리건물지에서 온돌이 보편적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아 온돌의 지방 전파시기에 대한 물적 증거를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實證遺構없이 문헌자료를 근간으로 마루와 방이 연접하여 설치된 시기를 13세기 代로 추정하던 그간의 연구와는 달리, 말흘리건물지의 조사로 마루와 방이 연접된 시기를 12세기 중기까지 볼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다음으로 말흘리건물지의 주거평면을 문헌자료와 비교하여 살펴본 결과 지방사회의 지배계층의 주택이 사원과는 달리 方池型의 연못을 중심으로 亭과 堂등의 건물이 배치된 별서와 담장을 두룬 ㅁ자형 형태의 살림집으로 구성된 것을 확인하였다. 또한 별서의 위치가 살림집과 멀리 떨어진 지역에 위치하지 않고 지척지간에 위치하며, 당대 별서건축이 도시를 지척에 두고 조영되고 있었던 사실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말흘리건물지를 조영하고 경영하였던 계층에 대해선, 이시기 별서건축이 지방으로 전파되지 못하고 주로 개경과 근기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과, 지방사회의 지배계층이 墓域施設墳墓를 차용하여 사용한 점을 근거로 지방사회의 지배계층인 중류층들로 추정된다. 아울러 말흘리건물지의 유력한 조영ㆍ경영세력으로서 창녕읍으로부터 2.5km 이격된 묘역시설분묘를 차용한 왕거민묘군Ⅱ –1의 조영세력이 주목된다.
이상과 같이 말흘리건물지는 중앙의 주거문화를 차용한 지방세력이 건립한 건축물로서, 實證遺構의 부재로 그 실체가 모호하던 지배층의 주거문화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영어 초록
This study examined plane structures of individual sites, dividing the excavated sites into A and B areas, in order to identify the nature of the Malheuli over which researchers have been divided into two groups with opposite views– sites for Byeol– Seo, or a villa which have designed for leisure, retire, recreation, and entertaining guests and those for temple. As a result, we found from the sites that Ondol, Korean underfloor heating system was used, walls were built, and adjacent construction of wooden floors and rooms, and there were different findings from the previous studies.
Existing history studies on the use and spread of Ondol indicated that Ondol was widely used for residence buildings for middle and upper class centering on Gaegyeong in the early 13th century and began to be spread to southern part of the Korean peninsula around the end of the Goryoe dynasty. However, the finding that Ondol was commonly used at the Malheuli sites in southern part of the peninsula during the period mainly from the mid 12th century to the early 13th century provides a possibility about time when Ondol began to be spread to southern regions. In addition, unlike the studies so far which assumed from literatures without site evidence that it was around the 13th century that wooden floors and rooms began to be built adjacently, the study has laid foundation for dating back up to the mid 12th century when they began to be adjacently built, from the findings about the Malheuli sites. Besides, comparison of housing plane structures of the Malheuli sites with related literatures has revealed that unlike a temple, houses of local governing class consisted of a Beolseo(Villa) having a pavilion and a house, centering around a Bangji– type pond and a ㅁ(Mium)– type resident building surrounded by a fence. In addition, Beolseo(Villa) was not far from the resident building, but very close to it, and Beolseo(Villa) buildings of the time were located near cities.
In regards to the class that designed and managed the Malheuli sites are thought to be the middle class as local governing class, from the fact that Beolseo(Villa) construction in this period was not spread to other areas, but concentrated around Gaegyeong and Geungi and that local governing class borrowed graveyard facilities. Furthermore, the study pays attention to the party that designed Wanggeominmyogun II– 1 which borrowed graveyard facilities, 2.5 km away from Changnyeong– eup as the most probable designing and managing party of the Malheuli sites. As summarized so far, the Malheuli sites built by local powers based on housing culture borrowed from the capital are considered as precious historical relics to give a hint on living culture of governing class of which real nature was unclear due to the absence of site evidence.

목차

요약
Ⅰ. 머리말
Ⅱ. 건물지 검토
Ⅲ. 건물지 성격
Ⅳ. 맺음말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