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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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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학지(THE DONG BANG HAK CHI)

  • 발행기관 :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Institute of Korean Studies)
  • 출처구분 : 학회
  • 간행물유형 : 학술저널
  • 발행주기 : 계간 (발행월:3,6,9,12)
동방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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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다카하시 도루(高橋亨)와 조선민요의 발견
다카하시 도루(高橋亨)와 조선민요의 발견
구인모(Ku, In-mo)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 동방학지 제183집 / 2018 / 1-30 (30 pages)
인문학>기타인문학 / KDC : 문학 > 문학 / KCI : 인문학 >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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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제국대학 조선어학조선문학 전공 교수였던 다카하시 도루(高橋亨)의 강의 내용은 최근에 공개된 그의 강의록을 통해 윤곽이 드러났다. 다카하시 도루의 총 41책의 강의노트 중 이채로운 것은 그의 총 14책에 달하는 조선민요 관련 강의록이다. 다카하시 도루는 조선민요와 관련한 강좌는 1931년 단 한 차례만 개설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적지 않은 분량의 강의록을 남겼던 것이다. 알려진 바와 같이 다카하시 도루는 조선의 문학이란 대체로 지나의 모방이라고 간주했으며, 그래서 그의 조선문학 강좌의 내용은 한문학 위주로 구성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카하시 도루는 부단히 조선의 민요를 수집하여 강의록을 통해서 정리했을 뿐만 아니라, 다수의 조선민요 관련 논문을 발표했다. 그것은 다카하시 도루에게 조선문학 중 가장 조선적인 것은 바로 조선의 민요였으며, 조선문학의 연구란 조선민요에 투영된 조선인의 보편적 심성을 탐색하는 일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다카하시 도루는 이러한 조선민요의 소개와 연구야말로 일차적으로는 제국 일본의 국문학에 기여하는 일이며, 나아가 동아시아 제지역과의 비교연구에 기여한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다카하시 도루의 조선민요 연구는 근본적으로 제주도, 함경도 등 오지의 여성 민요를 주된 연구의 대상으로 삼았으며, 그러한 지방성과 타자성이 도리어 조선인의 보편적 심성을 보존하고 있다는 모순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리고 다카하시 도루는 그러한 조선민요의 연구를 통해 조선의 시가문학사를 통시적으로 서술하는 단계로도 나아가지 못했다. 그 결과 태평양전쟁 종전 이후 일본에서 계속된 다카하시 도루의 조선민요의 연구는 미완의 상태로 수습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카하시 도루가 미처 이루지 못한 조선 시가문학의 통시적 연구를 비롯하여, 그가 비조선적인 것이라고 간주했던 언문 문학의 유산에 대한 학문적 탐색은 그의 제자들에 의해 비로소 이루어질 수 있었다.
김태준 관련 새 자료 몇 가지
김태준 관련 새 자료 몇 가지
이윤석(Lee, Yoon-Suk)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 동방학지 제183집 / 2018 / 31-75 (45 pages)
인문학>기타인문학 / KDC : 문학 > 문학 / KCI : 인문학 >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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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이제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김태준에 관한 자료 몇 가지를 소개하기 위한 것이다. 이 자료를 통해 그에 대한 이해를 조금 더 깊이 할 수 있다고 본다. 첫째는 경성제국대학 예과의 학생 잡지 『청량(淸凉』에 실린 장자(莊子)에 관한 글이다. 김태준은 이 글을 한문으로 썼다. 둘째는 경성제국대학 조선문학 강좌 담당 교수 다카하시 토오루[高橋亨]가 정년퇴임한 뒤에 김태준이 강사로 선임되는 과정을 살펴본 것이다. 그리고 김태준의 『조선한문학사』와 『조선소설사』를 읽은 다카하시의 반응도 함께 살펴보았다. 셋째는 1945년 12월 김태준이 중국 연안에서 돌아온 후 1949년 11월까지 남한에서 나온 신문 기사 몇 가지이다. 뛰어난 학자이며 영웅적인 항일운동가에서 북한의 간첩으로 몰려 남한에서 사형당하기까지 김태준의 마지막 4년을 재구성해보았다.
고려 충혜왕대 저포제품의 상품성과 경쟁력 검토
고려 충혜왕대 저포제품의 상품성과 경쟁력 검토
이강한(Lee, Kang-hahn)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 동방학지 제183집 / 2018 / 77-113 (37 pages)
인문학>기타인문학 / KDC : 문학 > 문학 / KCI : 인문학 >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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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혜왕은 다수의 저포를 민간으로부터 확보한 후 삼현신궁의 채녀들로 하여금 특수가공케 했는데, 그렇게 해서 생산된 직물이 바로 14세기초 충선왕이 기획한 ‘직문저포’다. ‘직문’을 거쳤던 바 이미 상품가치가 강화된 제품이었지만, ‘직금(織金)’과 ‘교직(交織)’ 기법이 추가로 적용되면서 그 상품성은 물론 중국제품과의 이질성도 증강됐음이 확인된다. 충혜왕은 이런 직문저포를 중국에 수출했고 그 가격경쟁력이 낮지도 않았으며, 원제국시기 중국내 저포상품의 생산 및 유통이 송명대에 비해 적었던 점 및 그간 중국에 유입되던 동남아시아산 인피섬유의 양 또한 1330년대 감소한 점 등이 고려 직문저포가 중국시장 내에서 적지 않은 경쟁력을 발휘하는 데 기여한 것으로 추정된다. 서역으로의 수출 역시, 서역산 인피섬유 중 ‘저’의 비중이 현저히 적어 고려 직문저포와 서역산 동종직물 간 경쟁이 약했던 데다 ‘일칸국’ 직물 소비자들이 이미 동북아시아 직물전통에 상당정도 익숙해져 있었던 점이 고려의 직문저포에 유리하게 작용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대책문을 통해 본 조선초기 군주성학론
대책문을 통해 본 조선초기 군주성학론
도현철(Do, Hyeon-Chul)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 동방학지 제183집 / 2018 / 115-144 (30 pages)
인문학>기타인문학 / KDC : 문학 > 문학 / KCI : 인문학 >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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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정도전이 태종 4년에 근정전의 의미를 설명하면서 군주의 근면 정치를 제시하고, 태조 5년에 과거시험 문제로 군주의 근면 정치를 제시했다는 점에 착안하여, 태조 5년 과거 시험의 장원 급제자인 김익정의 답안지를 분석하여 조선의 정치이념을 살펴본 글이다. 조선왕조의 정치체제와 정치이념의 방향을 설정하였고, 왕조국가의 정치운영의 핵심인 이상군주론을 제시하였다. 정도전의 군주관은 조선왕조 건국기에 한양 도성 건설 사업의 과정에서 나타났다. 1395년(태조 4) 9월 경복궁이 완성되고, 근정전이라는 명칭을 통해 군주의 근면 정치라는 성리학적 군주상이 제시되었다. 다음 해인 1396년(태조 5) 5월 과거 시험 문제에서 정도전은 시험 문제로 군주의 근면한 정치의 구체적인 실천방법을 질문하는 것이었다. 이 시험의 장원급제자인 김익정은 성리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군주가 근면한 정치를 행하되, 근면하게 시행해야 할 올바른 정책에 대한 명철한 인식을 가질 것, 현자를 등용하여 군주의 명철함을 돕도록 할 것, 백성들의 실정을 파악하는 데 힘쓸 것, 당대의 급선무와 선왕의 전례에 어긋나지 않도록 할 것 등의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였다. 이는 정도전의 이상군주론에 부응해서, 김익정이 군주의 근면한 정치를 성리학의 성학론으로 풀어 정리한 것이다.
『택리지』의 篇目과 이본의 구조 및 계통
『택리지』의 篇目과 이본의 구조 및 계통
안대회(Ahn, dae-hoe)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 동방학지 제183집 / 2018 / 145-169 (25 pages)
인문학>기타인문학 / KDC : 문학 > 문학 / KCI : 인문학 >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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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세 가지 주제로 『택리지』 이본의 발생과 구조를 해명하였다. 『택리지』의 수많은 이본을 크게 초고본 계통과 개정본 계통, 『동국산수록(東國山水錄)』 계통의 세 가지 계통으로 나누고, 『택리지』 이본의 전체 구조와 성립과정에서 불거진 문제점을 찾아 분석하고 오류를 바로잡고자 하였다. 첫 번째로 이미 상식으로 굳어져 있는 사민총론(四民總論), 팔도총론(八道總論), 복거총론(卜居總論), 총론(總論)이란 편목의 설정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여 불합리하고 받아들이기 힘든 편목의 설정임을 논증하고, 『택리지』의 실상에 밀착하여 서론, 팔도론, 복거론, 결론을 합리적인 편목으로 새로 제안하였다. 다음으로 수많은 이본의 발생과 파생을 설명하는 주요한 안건으로 서발(序跋)과 권수제(卷首題), 서명(書名), ‘인심(人心)’ 항목의 변동 등 몇 가지 변수를 제기하여 초고본과 개정본, 『동국산수록』으로 계통을 나눈 근거를 제시하였다. 마지막으로 유중림(柳重臨)이 1766년 이전에 『택리지』를 대폭 축약하고 재편집하여『동국산수록』을 만들어 『증보산림경제』에 수록함으로써 독자적인 성격과 의의를 지닌 『동국산수록』 계통을 성립시킨 과정과 이 계통의 독특한 특징을 다섯 가지로 살펴서 『택리지』의 재편집과 편목의 설정 등에 미친 큰 영향을 분석하였다.
좌절과 방황, 새로운 가능성의 서사
좌절과 방황, 새로운 가능성의 서사
김유미(Kim, Youme)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 동방학지 제183집 / 2018 / 171-188 (18 pages)
인문학>기타인문학 / KDC : 문학 > 문학 / KCI : 인문학 >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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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연구에서 이옥(1760~1815)은 정조의 문체 정책에 적극적으로 맞서 자신의 문학세계를 일관되게 지켜 나간 체제 반항적인 인물로 이해된다. 하지만 정조의 강력한 문체 반정에 연루되어 좌절을 경험하기 이전의 작가는 과거 시험 합격을 통한 입신양명을 간절히 희망하였으며 소품/소설에 경도된 문학 작품을 쓰면서도 그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까지는 표출하지 않았다. 문체반정에 연루되는 1792년 이전 이옥 작품에서 보여주는 세계는 질서 잡힌 안정된 곳으로 등장인물은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미래를 기약하며 노력한다. 그러나 문체반정에 연루되고 두 번의 과거 실패 이후 작가는 입신양명이 전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는데, 그 시기의 서사에는 갑작스러운 재난에 봉착하여 절망하고 기존의 길에서 벗어난 불우한 자에 대한 이야기가 빈출한다. 세계는 옳고 그른 것, 현명함과 어리석음, 선악과 미추의 경계가 불분명한 혼란한 세계이며 어느 순간에라도 갑작스러운 재앙이 닥쳐 개인을 좌절시키고 삶의 방향을 틀어버리게 만들 수 있는 폭력적인 장소이다. 극심한 분노와 좌절의 시기 이후 즉 해배(解配)이후에는 자신의 개성적인 글쓰기에 가치를 부여하고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이옥의 생애에서 겪은 좌절과 방황, 새로운 가능성의 서사를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 「중어」(衆語)이다. 표면적으로 이 작품은 농사에 관한 서술이나 이옥 자신을 화자로 내세워 자신의 삶에 대한 고찰에 집중하였기 때문에 작가 삶의 은유로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사람에게 유익한 보리, 홍화, 차조 경작 경작과 정원 조성에 실패하는 과정을 서술하면서 이옥은 기존에 추구하였던 삶의 방향에서 이탈되었다. 거듭되는 도전과 실패에서 좌절한 화자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이 다름을 깨닫게 되고 자신과 세상의 관계를 이전과는 다른 방향에서 정립하고자 하는 노력을 보여준다. 「중어」는 이옥의 체제 반항적 문학 세계가 작가의 태생적 기질이라기보다는 문체반정 시기를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하였고 해배 이후에 자리를 잡은 것임을 보여준다.
末松保和(1904~1992)의 學術史와 식민주의 역사학
末松保和(1904~1992)의 學術史와 식민주의 역사학
신주백(Sin, Ju-Back)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 동방학지 제183집 / 2018 / 189-234 (46 pages)
인문학>기타인문학 / KDC : 문학 > 문학 / KCI : 인문학 >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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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末松保和라는 식민주의 역사학자의 學術生涯史를 통해 식민주의 역사학이란 무엇이고 한국사 학계에서 그에 대한 태도에 엇박자가 난 이유를 찾아보는 데 목적이 있다. 末松는 폭넓은 조선사 연구 뿐 아니라 방대한 분량의 자료집을 간행하고 다양한 목록을 만들었으며, 번역과 서평까지 게을리 하지 않은 매우 성실하고 역량 있는 역사학자였다. 그의 왕성한 연구 활동은 식민지에 파견된 제국의 관학자라는 우월한 특권적 지위로도 보장되었다. 하지만 식민주의 이데올로그로서의 활동은 일본이 패전하며 식민지를 상실함에 따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귀국 후에 대한제국을 식민지화한 일본의 행위를 공개적으로 옹호하는 역사이념을 생산하지 않았다. 대신에 전근대 조선사에 관한 연구와 그 밖의 다양한 학술 활동을 왕성하게 벌이는 한편에서, 자신의 연구를 심화하는 연구서를 간행하였다. 그 중 『任那興亡史』(1949)가 가장 대표적인 업적이었다. 식민지 조선에서 식민주의 역사이데올로그로 활동하던 末松에게 任那는 본국의 朝廷과 이해를 함께하는 일본의 한 지방이자 內地가 延長된 곳이었다. 총동원체제 시기에 임나는 神代를 관통한 사상원리의 역사적 근거를 찾을 수 있는 곳이었다. 일본이 패전한 후 귀국한 末松는 실증을 포장하는 이러한 시대 인식을 전혀 내세우지 않으면서 더 종합적이고 精緻한 實證으로 임나사를 다듬는 한편, 임나와 韓族의 지배피지배 관계를 중앙과 지방의 관계에서 植民과 被植民 關係로 바꾸어 바라보았다. 그의 任那史 연구는 일본의 학술공간에서 末松란 학자의 존재감을 보장한 성과물이었다. 하지만 그의 연구는 실증이란 이름으로 한국사의 예속성을 드러낸 결과물이었다. 末松는 50년대 후반을 지나며 滿鮮史體系의 흔적을 벗어났지만, 자신의 실증에 오류가 있다고 보지 않았으므로 임나에 관한 생각을 죽을 때까지 바꾸지 않았다. 실증 연구를 통해 과거의 인식을 바꾸면서 한일간의 과거를 청산하자는 입장이었던 그로서는 당연한 태도였다. 한국과 일본의 후학들은 이러한 변화에 주목하지 않았다. 無知했거나 回避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사 학계는 실증을 통한 식민주의 역사학의 해명이란 측면에만 몰두하고 존재의 태도와 조건에 주목하지 않았다. 때문에 한국사 학계는 실증 대 실증으로 식민주의 역사학을 비판하고 극복하는 방안을 찾을수록 실증에 가려진 또 다른 숨은 진실을 제대로 드러낼 수 없었다. 오히려 학문의 고립성을 정당화해주고 제국의 이해를 반영하는 식민주의 역사학이 얼마나 뛰어난 학문인가를 증명해 주는 ‘위대한 역설’에 빠지는 경향도 있었다
박정희 시대 낙농진흥정책과 낙농업의 발달
박정희 시대 낙농진흥정책과 낙농업의 발달
이은희(Lee, Eunhi)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 동방학지 제183집 / 2018 / 235-270 (36 pages)
인문학>기타인문학 / KDC : 문학 > 문학 / KCI : 인문학 >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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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말부터 지식인 사이에 낙농업 논의가 있었다. 낙농업이 경종농업의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유가공업과 연관한 농공업을 진작시켜 농업근대화를 이룩하는 영농방식이라고 믿었다. 1965년부터 박정희 정부는 낙농진흥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박정희 정부는 기업농이 낙농업 발달을 선도하고, 소규모 겸업낙농가가 뒤따라가는 낙농진흥계획을 수립했다. 정부의 기업농 육성책에 힘입어 1960년대 후반 도시자본가 사이에 ‘축산 붐’이 일었다. 하지만 기업농은 규모만 클 뿐 경영은 재래적이었다. 낙농진흥으로 젖소수가 증가하며 사료비가 앙등하자 기업농은 초지조성과 낙농업을 포기했다. 낙농선진국과의 차관은 초지조성과 사양기술지도를 중시했다. 1960년대 캐나다, 서독, 뉴질랜드와의 낙농차관은 정부의 예상보다 오래 걸렸고, 규모도 줄었다. 1971년부터 발효된 IDA 차관은 기업농 육성 대신 가족노동력을 주축으로 하는 소규모낙농을 권했다. 정부는 소규모 겸업낙농가 중심으로 낙농단지를 조성하는 것으로 수정했다. 소규모낙농가는 차관으로 제공된 기술지도를 받고, 시행착오를 거치며 집약적 낙농방식을 습득하였다. 그 결과 1970년대 중반 소규모낙농가 생산성이 대규모낙농가보다 높아졌다. 그러자 정부는 1970년대 후반 유가공업체가 전국낙농가를 분할·관리하게 했다. 박정희 집권기 낙농업발달은 한국농업이 근대화 자본주의화 되는 과정이었다.
정신의학자 한동세(韓東世)의 문화정신의학과 여성 및 비규범적 성애 · 성별 배제의 성격
정신의학자 한동세(韓東世)의 문화정신의학과 여성 및 비규범적 성애 · 성별 배제의 성격
김대현(Kim, Daehyun)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 동방학지 제183집 / 2018 / 271-309 (39 pages)
인문학>기타인문학 / KDC : 문학 > 문학 / KCI : 인문학 >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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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70년대 한국의 정신의학계는 정신분석을 기반으로 한 역동정신의학과 더불어, 정신질환에 있어 한국인의 사회문화적 특수성과 주체성이 강조되는 문화정신의학이 유행하였다. 이러한 학문적 조류 가운데 정신의학자 한동세는 한국인의 정신적 특성을 동서양의 이분법에 입각한 동양적 정체성으로 규정하고, 여성에 대한 성적 억압과 성을 말하지 않음 을 한국인의 젠더·섹슈얼리티적 특성으로 보았다. 여성에 대한 그의 편견은 학술논문보다 대중매체에 기고한 글에서 보다 적나라하게 드러났고, 비규범적 성애·성별 실천을 다룬 그의 논문에서는 이러한 한국인의 젠더·섹슈얼리티적 특성 때문에 한국에서는 애초에 “성도착증”이 적게 나타난다는 주장을 다시금 학술적으로 정당화했다. 이는 역동정신의학과 사회정신의학 양자 모두의 측면에서, 낙인과 관련된 사회적 특성을 학술적 분석의 대상이 아니라 전제로 삼은 결과였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연구는 1980년대까지 “성도착증” 연구의 연구사로 인용되었다. 이렇듯 특정한 사회문화적 정체성을 “본성”으로 이해하는 것은, 여성 및 비규범적 성애·성별 실천에 대한 인지적이고 체계적인 배제를 불러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