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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한국상고사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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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상고사학보(Hanguk Sanggosa Hakbo)

  • 발행기관 : 한국상고사학회(Korean Ancient Historical Society)
  • 출처구분 : 학회
  • 간행물유형 : 학술저널
  • 발행주기 : 계간 (발행월:2,5,8,11)
  • ISSN : 1229-0084
한국상고사학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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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한국상고사학보 제100호 목차
한국상고사학보 제100호 목차
편집부
한국상고사학회 / 한국상고사학보 제100호 / 2018 / 1-4 (4 pages)
인문학>역사학 / KDC : 역사 > 아시아(아세아) / KCI : 인문학 > 역사학
한국상고사학회의 창립 30주년을 맞아
한국상고사학회의 창립 30주년을 맞아
최몽롱
한국상고사학회 / 한국상고사학보 제100호 / 2018 / 6-8 (3 pages)
인문학>역사학 / KDC : 역사 > 아시아(아세아) / KCI : 인문학 > 역사학
문헌사와 고고학의 만남을 위하여
문헌사와 고고학의 만남을 위하여
송기호
한국상고사학회 / 한국상고사학보 제100호 / 2018 / 9-15 (7 pages)
인문학>역사학 / KDC : 역사 > 아시아(아세아) / KCI : 인문학 > 역사학
길림-흑룡강성지역 신석기시대 어로구에 관한 검토
길림-흑룡강성지역 신석기시대 어로구에 관한 검토
이상규(Sang-kyu, Lee)
한국상고사학회 / 한국상고사학보 제100호 / 2018 / 17-50 (34 pages)
인문학>역사학 / KDC : 역사 > 아시아(아세아) / KCI : 인문학 > 역사학
초록보기
길림-흑룡강성지역의 어로구는 크게 어망추 및 작살과 기타 찔개살·단식조침·빗창 등으로 구분된다. 이 중 어망추는 석제와 토제로 대별되는데, 석제는 어망추홈의 양상에 따라 5가지 형태로 세분된다. 작살은 골각제만 확인되며 고정식과 분리식으로 구분되는데 전체형태 및 미늘의 수에 따라 14가지로 세분할 수 있다. 길림-흑룡강성은 한반도 면적의 3배에 달하는 상당히 넓은 지역으로 다양한 신석기시대 문화가 존재한다. 길장지역은 좌가산문화, 송눈평원지역은 앙앙계문화, 삼강평원지역은 신개류문화, 목단강유역은 앵가령하층문화로 대표되며, 각 문화는 지역에 따라 고유의 토기문화전통을 가지고 있다. 본고에서는 각 지역문화의 병행관계 설정 및 문화별 특징의 고찰을 통해 각 지역에 대한 어로구의 종합적인 검토를 하고자 한다. 시기의 구분은 어망추 및 작살의 양상에 따라 3단계로 구분하였다. 1단계는 좌가산1~2기·쌍탑1기·앙앙계문화 파산유형·신개류문화, 2단계는 좌가산3기·앙앙계문화 오복M2기·흥성1기·앵가령하층기, 3단계는 토성리기·오녀산성F48기·소랍합1기 을·석회장하층기에 해당한다. 공간적 양상에서는 각 단계에 따라 지역별 문화에 세부적인 차이가 있지만 큰 틀에서 송눈평원·길장지역 서편·삼강평원은 작살중심, 목단강과 길장지역 동편, 그리고 압록강 중·상류 및 두만강 중류역에서는 어망추 중심의 어로구양상이 확인된다. 도구조성에서도 어로구 중 작살 중심지역은 수렵·어로구가, 어망추 중심지역은 굴지구와 제분구류 등 채집·농경구가 주로 조합되는 양상을 확인하였다. 이는 생태환경 및 초기농경과 관련된 것으로 생각되는데, 어로구와 도구조성의 차이는 대체로 북위45°를 기준으로 나누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북위45°는 초기농경의 북방한계선으로 이와 더불어 환경적인 요소들이 두 어로문화권을 분리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한반도동북지역과 길림-흑룡강성지역은 일정부분 유사성과 차이점을 모두 지니고 있는데, 이는 각 지역별로 생업조건에 따라 지역성을 가지며 발전해왔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북방 유라시아 초원지역과 한반도 교류의 고고학
북방 유라시아 초원지역과 한반도 교류의 고고학
강인욱(Kang, In Uk)
한국상고사학회 / 한국상고사학보 제100호 / 2018 / 51-76 (26 pages)
인문학>역사학 / KDC : 역사 > 아시아(아세아) / KCI : 인문학 > 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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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한반도 북방계 문화의 계통에 대한 연구는 구체적인 접근에 이르지는 못했다. 그 이유는 북방 초원 지역과의 관계는 시기별로 지역과 공간을 달리해서 다양하게 전개되지만 그를 시공적인 맥락에 대한 이해가 없이 막연하게 북방계로 통칭했다는 데에 그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본 고는 한반도 북방계 문물의 유입을 시간과 공간적인 맥락에 따라 정리하고 특히 한국의 초기 철기시대 북방계 문물의 흔적과 주요한 관련이 있는 기원전 4~2세기대의 교류상을 살펴보았다. 필자는 이 시기 중국 북 방 장성지대에 널리 확산되는 사카계통의 문화에 주목했다. 그들은 毛慶溝유형으로 대표되는 기존의 오르도스 고원의 문화와는 이질적인 문화상으로 중앙아시아 일대에서 신장과 감숙회랑을 거쳐서 중국 북방으로 유입되었다. 이 세력은 사서에 따르면 서융, 북적, 적적, 정령, 임호, 누번, 동호 등으로 불리웠다. 특히 연나라 북쪽에 거주했던 사카계 주민인 동호는 연국과 대적했다. 연 신장두 30호묘에서 발견된 다양한 문화상은 이러한 연국이 장성 일대의 주민들과 교류했던 양상을 잘 보여 준다. 연국의 팽창은 북경 이북 연산산맥 일대에 거주하던 옥황묘문화의 해체로 이어졌고, 그들의 문화요소는 그 이동의 비파형동검문화권으로 확산되었다. 한반도 남부의 동물장식으로 대표되는 북방계문화는 이러한 중국 북방의 문화변동과 이어서 연결해볼 수 있다. 나아가서 중국 북방의 제후국과 중앙아시아 사카계 문화의 관련성은 한대 이전에 실크로드의 형성에 대한 자료를 제공한다. 이러한 사카계통 문화의 확산에 또 다른 배경은 기원전 4세기를 중심으로 중국 북방의 제후국들 사이에서 확산되는 영역화와 관련이 있다. 사카계통의 문화가 한국과 일본으로 확산되는 과정은 일본 카미고덴에서 발견된 기원전4~3세기 오르도스 지역 일대에서 사용된 동검의 거푸집으로 확인된다. 또한 경주 탑동에서 출토된 북방계 유물은 기원전 4~2세기대 오르도스 고원지대 일대 널리에서 발견되는 원형의 동물형 절약과 동물형 대구 장식의 원형인 동물저립문 들이 발견되었다. 이는 문헌에서도 확인되는 바, 진-한 시기 중국 장성 일대의 사회변동에 따라 사카계유물이 주변지역으로 확산된 결과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사카계 문화의 유입과 확산은 한반도 북방계문물의 유입과정을 설명할 수 있는 또 다른 예라는 점에서 한국과 북방교류의 실마리를 찾는 새로운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고고학자료로 본 沃沮와 挹婁
고고학자료로 본 沃沮와 挹婁
유은식(Eunshik Yoo)
한국상고사학회 / 한국상고사학보 제100호 / 2018 / 77-108 (32 pages)
인문학>역사학 / KDC : 역사 > 아시아(아세아) / KCI : 인문학 > 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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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목적은 고고학자료를 통해서 沃沮와 挹婁의 문화성격을 살펴보는데 있다. 고고학자료를 이용하여 지역집단의 실체와 문화성격을 검토하는 것은 아무리 정치한 분석과정을 거쳤다 하더라도 왜곡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이에 문헌기록에 보이는 역사적 맥락과 고고학자료의 시공간적 범위를 세밀히 비교검토하면서 옥저와 읍루를 살펴보았다. 옥저는 남옥저와 북옥저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함흥 일대의 남옥저는 세형동검문화와 낙랑계문화단계로 구분하였다. 이 지역은 위만의 복속과 한군현 설치 이후 서북한지역의 물질문화로 바뀌지만 재지계토기는 이전 시기의 토기 전통이 유지되었다. 북옥저는 두만강 중하류지역, 중국 수분하유역, 연해주 남부에서 확인되고 있는 단결-크로우노브카 문화로 비정하였다. 특히 북옥저는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 무렵에 단결-크로우노브카문화가 주변지역으로 확대되면서 문헌기록에 등장한 것으로 이해하였다. 읍루에 대해서는 夫餘에 臣屬한 정세, 문화사 관련 기록, 고고학자료의 시·공간성 등을체계적으로 검토하여, 漢代 挹婁는 흑룡강 중하류지역의 폴체 문화 2기와 三江平原 七星河 流域의 滾土嶺文化로 비정하였고, 魏晋代 읍루는 흑룡강 중하류지역의 폴체 문화 3기와 연해주 폴체 문화로 보았다.
삼국형성기 문헌사와 고고학의 접점
삼국형성기 문헌사와 고고학의 접점
여호규(Yeo, HoKyu)
한국상고사학회 / 한국상고사학보 제100호 / 2018 / 109-136 (28 pages)
인문학>역사학 / KDC : 역사 > 아시아(아세아) / KCI : 인문학 > 역사학
초록보기
이 글은 문헌사와 고고학의 相補的 硏究를 활성화하자는 취지에서 작성되었다. 이를 위해 三韓 國邑 및 三國 초기 都城과 관련한 최근 연구성과를 검토했다. 최근 연구성과에 따르면, 청동기시대 중후기 聚落의 위계구조는 3단계로 분화했고, 聚落群의 結集도 이루어졌다고 한다. 聚落群의 結集體는 三韓의 邑落에 비견되는데, 삼한 소국은 이러한 聚落群의 結集體를 바탕으로 출현했을 것으로 파악된다. 풍납토성의 환호취락과 춘천 우두동 유적은 삼한 소국의 國邑, 하남 미사리 유적은 읍락의 중심촌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미사리 유적에서도 우두동 유적의 정치적 중심지와 유사한 方形環濠와 각종시설이 확인되었다. 이는 삼한 소국의 국읍이 읍락 중심촌[邑]의 양적 집적을 통해 성립했고, 양자의 경관이 명확히 구별되지 않았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에 『三國志』 찬자는 三韓 國邑과 邑落 중심촌을 모두 ‘邑’으로 표기했다. 반면 3세기 중반경 고구려나 부여의 정치적 중심지에는 宮室, 宗廟에 준하는 祭儀施設, 창고와 감옥 등이 존재했다. 이에 『三國志』 찬자는 고구려와 부여의 정치적 중심지를 중국왕조의 都城에 비견해 ‘都’라고 표기했다. 三國 초기 도성은 三韓의 國邑과 명확히 구별되는 정치적 경관을 갖추었다는 점에서 삼한 국읍의 양적 집적이 아니라, 질적 전환을 통해 성립했을 것으로 파악된다. 실제 3세기 중반경 부여나 고구려는 삼한 소국과 명확히 구별되는 국가체제를 정비했고, 이를 바탕으로 도성의 경관을 갖춘 것으로 파악된다. 최근 연구성과에 따르면 백제도 4세기 전반에 영역을 확장하며 수취체계를 정비했는데, 이를 바탕으로 풍납토성을 거대한 토축성벽으로 개축해 도성의 경관을 갖추었다고 파악된다. 신라도 원삼국시대 말기부터 기존의 읍락집단과 구별되는 지배세력이 출현했고, 이들에 의해 斯盧國의 國邑이 新羅 都城으로 전환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삼한 소국의 국읍이 읍락 중심촌의 양적 집적을 통해 형성된 반면, 삼국 초기 도성은 질적 전환을 수반하며 성립했다고 파악된다. 이러한 점에 유의하면서 삼한 국읍이나 삼국 초기 도성과 관련한 문헌사료나 고고자료를 다각도로 분석한다면, 삼한 소국의 성격 및 삼국의 국가형성 양상을 더욱 체계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645년 唐의 高句麗 원정군 규모 推算
645년 唐의 高句麗 원정군 규모 推算
이민수(Lee, Min-su)
한국상고사학회 / 한국상고사학보 제100호 / 2018 / 137-164 (28 pages)
인문학>역사학 / KDC : 역사 > 아시아(아세아) / KCI : 인문학 > 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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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5년에 발발한 1차 高句麗-唐 전쟁은 太宗이 직접 親征했다는 점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높은 주목도에 비해 당이 동원한 병력 규모에 대해서는 통일된 견해가 없었다. 이에 우선적으로 선행 연구들에 대해 재검토를 한 바, 선행 연구는 다양한 사료 발굴로 인해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으나, 당의 行軍制와 문헌에 대한 분석이 다소 미흡한 부분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이에 본고에서는 선행 연구 성과를 참고 하되, 미흡한 부분을 보완하고, 나아가 기존에 인용되지 않았던 묘지명들과 문헌 사료를 참고하여 645년 고구려 원정군의 규모를 推算하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그 결과 遼東道行軍의 규모는 10만 명, 平壤道行軍의 규모는 7만 명 그리고 태종이 거느린 6군의 규모는 약 40만 명으로 도합 약 57만 명에 이른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이처럼 당이 645년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상당한 규모의 군사를 동원했기 때문에 당의 내부와 외부에서는 당이 100만 명의 군사를 동원한 것으로 인식하였다. 당시 공식적으로 집계된 당의 인구는 1,200만여 명이었으나, 折衝府에서 57만 명을 동원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실행하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이 57만 명에 이르는 군대를 동원할 수 있던 원인은 당이 주변국들을 멸망시키거나 복속시켰으며, 항복한 이민족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했기 때문이었다.
탄화물 분석을 통한 삼국시대 대두(大豆) 이용 방법 고찰
탄화물 분석을 통한 삼국시대 대두(大豆) 이용 방법 고찰
김민구(Minkoo Kim);류아라(Ara Ryu)
한국상고사학회 / 한국상고사학보 제100호 / 2018 / 165-187 (23 pages)
인문학>역사학 / KDC : 역사 > 아시아(아세아) / KCI : 인문학 > 역사학
초록보기
호남과 강원 지역에 소재한 삼국시대 주거지에서 덩어리 형태로 탄화된 대두(大豆) 잔존물을 발견하였다. 일련의 탄화 실험과 현미경 검경을 통해 다음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첫째, 탄화물은 주로 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다른 작물의 흔적은 확인되지 않는다. 둘째, 탄화는 콩이 덩어리 형태로 빚어진 다음에 발생한 것이다. 즉, 탄화 과정에서 덩어리가 생성된 것은 아니다. 셋째, 탄화물 단면에서 다공(多孔) 구조가 확인되는데 이는 대상물이 탄화되기 이전에 약간의 수분을 지닌 반죽 형태로 존재했을 가능성을 나타낸다. 관찰된 탄화물들은 주거지 바닥면에서 수습된 것이며, 주거지 내부에 저장되었던 음식 또는 음식의 재료로 생각된다. 분석 결과를 종합했을 때, 확인된 대두 탄화물은 메주 같은 두류 발효 식재료의 잔존물일 것으로 판단된다. 메주 또는 된장과 관련한 가장 오래된 국내역사 기록은 683년 신문왕대의 것이다. 고고학 자료상으로 메주 잔존물은 AD 3세기 이후 유적에서 빈번하게 발견된다.
일본 제국주의 시기 고고학 조사의 다양성과 평가
일본 제국주의 시기 고고학 조사의 다양성과 평가
이기성(Yi, Kisung)
한국상고사학회 / 한국상고사학보 제100호 / 2018 / 189-204 (16 pages)
인문학>역사학 / KDC : 역사 > 아시아(아세아) / KCI : 인문학 > 역사학
초록보기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고고학 조사는 식민지, 위임통치, 조차지 등 당시 일본의 영향력이 미치는 모든 지역에서 실시되었다. 이러한 고고학 조사는 기본적으로 식민지의 효율적인 통치를 위한 기초 조사의 일환으로 실시되었으며,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일본인에 의한 고고학 조사가 그 지역의 첫 고고학 연구 활동이었다.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고고학 조사는 일본과 직접적인 역사적 관련이 있는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으로 구분되며, 조사의 내용에서도 큰 차이를 보인다. 식민지 조선의 경우, 일본의 선사·고대 문화를 증명하는 보조 자료의 확보와 그것을 통한 식민 사관의 확립이 고고학 조사의 주된 목적이었다면 대만에서의 조사는 대만 원주민에 대한 기초 조사 그리고 관동주, 만주 지역에서의 조사는 대륙으로의 일본 진출과 궤를 같이하는 사전 조사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고고학 활동의 배경 에는 당시 일본 내에서 자유로운 발굴 및 연구 활동이 어려웠던 일본 고고학계의 상황이 깔려 있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 일본 고고학계에서는 이와 같은 당시의 사회적 상황을 근거로 제국주의와 고고학을 분리해서 평가하는 경향이 적지 않다. 본고에서는 일제강점기 각 지역에서 어떠한 고고학 조사가 이루어졌으며, 그것이 일본고고학과 어떠한 관계에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현재 일본 고고학에서 어떠한 시각으로 평가되고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흥수아이 1호는 과연 구석기시대 매장 화석인가?
흥수아이 1호는 과연 구석기시대 매장 화석인가?
이상희(Lee, Sang-Hee)
한국상고사학회 / 한국상고사학보 제100호 / 2018 / 205-217 (13 pages)
인문학>역사학 / KDC : 역사 > 아시아(아세아) / KCI : 인문학 > 역사학
초록보기
흥수아이가 4만 년 전까지도 올라갈 수 있는, 남한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구석기시대의 무덤이라는 주장은 학계의 면밀한 검증을 거칠 필요가 있다. 4만 년 전이라는 연대나 구석기시대 고인류의 화석이라는 주장은 근거가 미약하다. 뿐만 아니라, 매장의 의도로 만들어진 무덤이라는 가설 역시 추가적인 정보가 필요하다. 여러 정황상 흥수아이는 화석이 아닌 홀로세의 인골일 가능성이 높다. 추후 기술의 발달을 기대해 볼 수는 있겠으나 현재의 기술로 경화처리된 흥수아이의 인골을 시료로 이용한 절대 연대 측정은 어렵다. 따라서 더 이상의 파괴적인 조사 방법은 극히 조심스럽다. 시료의 파괴를 전제로 하지 않는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이 글이 흥수아이에 대한 온전한 논의를 활성화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본 지에서 전개된 논문 자료 조작 의혹 논란과 관련하여
본 지에서 전개된 논문 자료 조작 의혹 논란과 관련하여
편집자
한국상고사학회 / 한국상고사학보 제100호 / 2018 / 219-252 (34 pages)
인문학>역사학 / KDC : 역사 > 아시아(아세아) / KCI : 인문학 > 역사학
한국상고사학보 휘보
한국상고사학보 휘보
편집부
한국상고사학회 / 한국상고사학보 제100호 / 2018 / 253-256 (4 pages)
인문학>역사학 / KDC : 역사 > 아시아(아세아) / KCI : 인문학 > 역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