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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한국상고사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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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상고사학보(Hanguk Sanggosa Hakbo)

  • 발행기관 : 한국상고사학회(Korean Ancient Historical Society)
  • 출처구분 : 학회
  • 간행물유형 : 학술저널
  • 발행주기 : 계간 (발행월:2,5,8,11)
  • ISSN : 1229-0084
한국상고사학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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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한국상고사학보 제101호 목차
한국상고사학보 제101호 목차
편집부
한국상고사학회 / 한국상고사학보 제101호 / 2018 / 1-4 (4 pages)
인문학>역사학 / KDC : 역사 > 아시아(아세아) / KCI : 인문학 > 역사학
靑銅器時代 무덤과 葬制의 變化
靑銅器時代 무덤과 葬制의 變化
宋滿榮(Song, Man-Young)
한국상고사학회 / 한국상고사학보 제101호 / 2018 / 5-33 (29 pages)
인문학>역사학 / KDC : 역사 > 아시아(아세아) / KCI : 인문학 > 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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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시대 장제 변화를 살펴보기 위하여 춘천 지역 청동기시대 무덤의 묘제와 매장주체부 규모, 그리고 장제와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검토하였다. 그 결과 매장주체부 길이 1.6m를 기준으로 신전장과 굴장으로 구분되는데, 이 기준에 따르면 춘천 지역 청동기시대 전기 전엽에 목관묘가 처음 조영되면서 피장자를 신전장의 방식으로 매장하였으며, 주구묘와 석축식 석관묘가 조영되는 전기 중엽에 굴장이 출현하였다. 청동기시대 중기에는 지석묘가 조영되면서 이차장의 장제가 출현한다. 신전장과 굴장 등의 일차장은 전 시기에 비해 비율이 감소하고 대신에 이차장 비율이 크게 증가하는데, 지석묘 매장주체부의 70% 가량이 길이 0.9m 이하로 제작되었다. 화장묘는 전기 전엽에 목관 내에서 피장자를 바로 편 자세로 화장(A1유형)과 더불어 매장하는 일차장의 형태로 출현하지만, 매장주체부가 목관에서 석관으로 변화하면서 전기 후엽에는 석관 내에서 목관 없이 피장자를 화장(A2유형)하는 방식으로 변화한다. 매장주체부 길이로 보아 굴장 자세로 화장, 매장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중기 중엽에 묘광 내에서 피장자를 화장한 후에 그 상부에 형식적으로 매장주체부를 조영하는 화장(B유형)이 유행하고 중기 후엽 또는 후반에 외부에서 화장한 인골을 석관 내에 안치하는, 이차장 형태의 화장(C유형)이 출현한다. 이와 같이 매장주체부 규모의 축소 과정은 장제 변화에 따른 것인데, 화장 역시 동일한 변화 과정을 보여준다
山東 岳石文化의 최근 연구동향과 쟁점
山東 岳石文化의 최근 연구동향과 쟁점
오대양(OH DaeYang)
한국상고사학회 / 한국상고사학보 제101호 / 2018 / 35-64 (30 pages)
인문학>역사학 / KDC : 역사 > 아시아(아세아) / KCI : 인문학 > 역사학
초록보기
현재 대다수의 중국연구자들은 龍山-岳石文化로 연결되는 山東地域 신석기~초기 청동기시대유적을 동이문화로 파악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당시에 과연 사회·정치·문화적으로 단일한 종족적 개념으로서의 동이관념이 존재하였을 지에 대한 의문이 강하게 제기된다. 동이의 정체성이 山東 또는黃河 하류유역 집단들 사이에서 형성·발전되었다면 동이라는 완전한 단어가 명문에 처음 나타나는西周시기, 이를테면 岳石文化의 붕괴 후 적어도 4세기 가량이 지나서야 출현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듯하다. 다음으로 중국 동북지역의 동이(동북고민족의 범칭)와 山東地域의 동이를 동일시하는 거대 동이담론의 이면에는 다음과 같은 의도가 간파된다. 고대 중국의 동쪽지역에는 중원의 華夏族과 경쟁하였던 별개의 종족집단이 존재하였다. 이들은 龍山文化단계에 黑陶文化라는 독특하고 고유한 토기문화를 발전시켰는데, 이를 당시 중원지역과의 지속적인 교류상 속에서 완성된 고대 중국문화의 정수로 평가한다. 수십 년에 걸친 연구 끝에 이 문화의 주체자들은 문헌 속에 표현된 동이집단으로 설정되었고, 이들은 大汶口-龍山-岳石文化로 연결되는 山東地域 선사문화의 계보 속에서 끊임없이 중원지역과 의 경쟁구도를 구축, 중국 고대국가의 발전기인 商周시기를 거쳐 華夏族에 완전히 통합되면서 현대 漢族의 주요 구성원이 되었다. 그러한 과정 중, 商末周初 동이족의 한 갈래(기자집단)이 중국 동북지역으로 이주하여 고조선문화를 개화시켰고, 그러한 배경 하에 山東의 동이족과 동북동이는 동일한 계보와 문화전통을 가진 하나의 역사·문화·민족공동체로 거듭나게 된다. 결론적으로 중국 동북지역에서 발원한 모든 고대 민족들을 전설 속 黃帝族의 후예로 삼는 소위 ‘遼河文明論’과 이지역 고대 민족들이 이룬 모든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시키고자 하는 ‘東北工程’의 허울아래 우리의 상고문화는 고대 중국문명의 방계문화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주변국가의 역사왜곡에 직면하여 하나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부분이 바로 그것이 명백히 잘못되었음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점이다. 문헌기록이 매우 제한적인 상황에서 주변국가의 역사왜곡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해서는 현지의 고고학 조사자료를 충분히 활용해야만 한다. 비굴할 필요도 없지만 자극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보다 전략적인 접근방식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 내부에서 형성된 공감대로써, 주변국가의 역사왜곡에 일침을 가할 수 있는 자료의 확보가 우선시된다.
고구려 무덤제사에 대한 고고학적 검토
고구려 무덤제사에 대한 고고학적 검토
강현숙(Kang Hyun-Sook)
한국상고사학회 / 한국상고사학보 제101호 / 2018 / 65-87 (23 pages)
인문학>역사학 / KDC : 역사 > 아시아(아세아) / KCI : 인문학 > 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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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고분 연구가 고분을 둘러쌓고 행해진 다양한 행위의 복원으로 확장되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이 글에서는 무덤제사의 복원을 염두에 두고 기존에 제의의 증거로 보았던 무덤 구조를 검토하였다. 무덤 구조를 검토한 결과, 무덤제사와 관련된 구조나 시설로 언급되었던 적석총에 잇대어 있는 부석시설이나 제대, 분구 위의 건물 등은 무덤에서 행해진 정기적인 제사와 직접 관련된 시설로 보기 어려웠다. 오히려 부석시설과 분구에서 출토된 기와의 1차 기능은 분구나 매장부의 보호에 있었을 것이며, 초대형 계단석실적석총의 분구 위 건물은 왕릉의 상징이자 무덤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였을 것이다. 제대로 보고된 시설은 주검의 매납 시 행해졌던 일회적 의식과 관련이 있을 것이나 구체적인 역할 은 현재 자료로 추단하기 어렵다. 주목을 끌지 않았던 계단적석총 층단의 ㄴ자상 판상석이나 석실의 입구의 유물 출토 상황은 주검 안치와 관련된 일회적인 묘전의례나 분구의례의 결과로 추정된다. 고구려의 무덤제사를 고분 구조에 기초하여 추론하자면, 주검 매납 시 행해진 일회적인 의례와 매납 후 행해진 정기적인 의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정기적인 제사는 4세기 중엽 이전에는 제사 때마다 마련된 제장에서 행해졌을 것이며, 4세기 중엽을 경과하면서 능묘가 마련됨으로써 일회적 가설식 제장과 함께 병용되었을 것이다. 6세기가 되면서 불교와 결합된 능사가 조성됨으로써 능사가 무덤을 보호, 상징하는 역할과 함께 능묘 역할을 겸했을 것이다. 주검 매납과 함께 행해지는 일회적인 묘전의례, 분구의례는 석실 내부의 석상, 제대나 계단 층단의 ㄴ자상 판상석등을 통해 유추할 수 있다
경주지역 신라 부착토우 연구
경주지역 신라 부착토우 연구
우정연(Woo, Jung-Youn)
한국상고사학회 / 한국상고사학보 제101호 / 2018 / 89-124 (36 pages)
인문학>역사학 / KDC : 역사 > 아시아(아세아) / KCI : 인문학 > 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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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황남동 석곽묘군에서 집중적으로 출토된 신라 부착토우의 공간적 편재성(偏在性)과 부착토우 제작자의 성격을 이해하기 위해 최근에 조사, 보고된 경주 쪽샘유적 출토품을 포함하여 현재까지 보고된 경주지역 신라 부착토우의 표현 대상과 방식을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지금까지 보고된 부착토우는 제작 방식에서는 과감한 과장과 생략 기법을 공유하면서도 그 표현 소재는 일정한 레퍼토리로 한정되는데 그러한 소재의 거의 대부분이 황남동 석곽묘군 출토품에서 확인됨을 알 수 있었다. 이러 한 부착토우의 공간적 편재성과 표현 방식의 공통성 및 소재의 한정성을 설명하기 위해 샤머니즘과 ASC 및 미니어처에 대한 비교문화적인 연구 성과를 검토하였다. 그에 기반하여 신라의 부착토우는 신라인의 일상이나 희로애락, 또는 재생, 다산, 장수 등에 대한 기원의 직접적인 반영보다는 샤먼의 ASC 경험에 대한 조형적 표현으로서 보다 구체적이고 일관적으로 설명되고, 그 황남동 석곽묘군에의 편재성은 6세기 전후 신라의 왕권 강화 정책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았다. 즉 신라의 부착토우는 신라인 전반이 경험하였던 일상에 대한 단순한 묘사품이나 재생, 다산, 장수 등에 대한 그들의 기원물이기보다는 샤먼 의례를 통해 그러한 경험 또는 바람이 정치적으로 전용(轉用, appropriation)되는 과정에서 제작되고 황남동 석곽묘군에 집중적으로 부장된 것으로 해석하였다
고령 고아동벽화고분의 성격과 대가야 지배층
고령 고아동벽화고분의 성격과 대가야 지배층
김준식(Kim Junsik)
한국상고사학회 / 한국상고사학보 제101호 / 2018 / 125-158 (34 pages)
인문학>역사학 / KDC : 역사 > 아시아(아세아) / KCI : 인문학 > 역사학
초록보기
고령 고아동벽화고분은 대가야 최고수장층의 묘역인 지산동고분군과 인접하여 위치하는 횡혈식석실이다. 고아동벽화고분에 대해 그 동안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으나 연화문 벽화 분석이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이에 석실 구조에 대한 고고학적 분석을 근거로 한 계보와 편년, 피장자의 출신과 성격에 관한 자세한 연구가 필요한 실정이다. 그리고 고아동벽화고분의 출현 배경에 대가야 수장층이 어떠한 목적으로 개입하였는지, 또한 그 관계에 관한 접근도 필요하다 생각하여 본 연구를 계획하게 되었다. 고아동벽화고분의 석실 구조는 공주와 부여지역에서 확인되는 터널형 횡혈식석실과 유사하다. 그 출현시점은 530년대 이후의 6세기 중엽으로 설정하였고, 축조 공인은 백제인이 중심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피장자 문제는 고아동벽화고분의 입지, 인접한 지산동고분군의 성격, 당시 역사적 배경과 관련지어 논하였다. 이에 고아동벽화고분의 피장자는 친백제계 대가야 고위층 또는 고령지역에 파견된 백제 관료의 두 가지 가능성으로 압축하였다. 고아동벽화고분의 출현 배경에는 대가야 지배층의 정치적 목적이 강하게 반영되었을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백제 선진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유물에 그치지 않고 묘제에도 반영되었을 가능성을 제시하면서 고아동벽화고분을 그 사례로 평가하였다. 아울러 이와 유사한 구조의 석실이 고령양식 토기 일색 분포권과 유사함을 지적하면서 그 의미와 가능성에 대 해 살펴보았다. 대가야는 당시 백제를 포함한 주변국의 흐름과 같이 횡혈식석실을 수용하였고, 이것을 통해 정치적 성장을 도모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나 역시 대가야 멸망에 가까운 시대적 상황에 의해 더 이상의 발전은 없었던 것으로 판단하였다.
한국상고사학보 휘보
한국상고사학보 휘보
편집부
한국상고사학회 / 한국상고사학보 제101호 / 2018 / 159-162 (4 pages)
인문학>역사학 / KDC : 역사 > 아시아(아세아) / KCI : 인문학 > 역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