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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 > 간행물 권호
  • 발행기관: 한국상고사학회
  • 간행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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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상고사학보(Hanguk Sanggosa Hakbo)

  • 발행기관 : 한국상고사학회(Korean Ancient Historical Society)
  • 출처구분 : 학회
  • 간행물유형 : 학술저널
  • 발행주기 : 계간 (발행월:2,5,8,11)
  • Print ISSN : 1229-0084
  • 등재정보 : KCI 등재
한국상고사학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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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時代 高塚의 封墳 盛土法 考察
三國時代 高塚의 封墳 盛土法 考察
심현철(Shim, Hyeoncheol)
한국상고사학회 / 한국상고사학보 제109호 / 2020 / 5-27 (23 pages)
인문학>역사학 / KDC : 역사 > 아시아(아세아) / KCI : 인문학 > 역사학
초록보기
삼국시대에 활발히 축조된 고총에는 고대의 다양한 토목기술이 집약되어 있다. 특히, 봉분을 쌓기 위한 방법과 기술에 대해서는 제방이나 토성 등과 함께 고대 성토구조물을 연구하는데 있어 중요한 요소로서 꾸준한 논의의 대상이 되어 왔다. 이러한 흐름에 맞춰 고분조사에 있어서도 단편적인 성토층의 파악에 그치지 않고 봉분 전체의 성토과정과 방법을 알아내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최근 봉분을 전면적으로 완전히 해체하면서 정보를 획득하는 소위 完掘 사례가 증가하였는데, 대표적인 예가 창녕 교동 7호분이다. 교동 7호분은 근래 보기 드문 정밀한 봉분조사의 대표 사례이며, 다양하고 방대한 양의 토층정보를 획득하였고 이와 관련된 상세한 내용이 보고되어 있다(우리문화재연구원 2014). 고총의 성토법과 관련하여 새로운 정보를 제공해줄 수 있는 좋은 자료이지만, 보고서가 간행된 이후 7호분의 봉분 성토법과 관련된 후속 논의는 그다지 활발하지 못하였다. 이는 보고된 내용이 워낙 방대하여 정리가 쉽지 않은 부분이 있고, 발굴자 외에는 관련 자료를 정확히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최근까지 교동 7호분과 관련되어 보고·발표된 내용을 바탕으로 봉분 성토와 관련된 내용을 종합적으로 재검토하였다. 그 결과, 그간 보고된 내용의 일부를 수정하고 7호분의 봉분 성토법과 관련된 중요한 특징을 확인하였다. 7호분의 봉분 성토는 크게 2단계에 걸쳐 이뤄졌으며 각 단계는 동시성토과 순차성토라는 성토방법의 큰 차이가 확인되었다. 단계별로는 성토단위의 수와 성토단위를 나누는 중심 분할선이 달리 확인되었다. 이외 성토단위별로 호석 축조가 나눠지는 것이 확인되었고 소분구상성토, 토제상성토, 내사향성토, 수평성토 등 다양한 성토기법이 한 고분 내에 적용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성토방법의 차이와 여러 성토기법의 적용은 봉분축조의 효율성과 안정성을 높이기 위한 결과이며, 여기에는 당초 설계된 봉분의 규모와 실제 고분이 입지한 동서 지형의 높낮이 차이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판단된다
주성분분석을 이용한 신라 중앙과 지방 토기 비교
주성분분석을 이용한 신라 중앙과 지방 토기 비교
남익희(Nam Ik Hee)
한국상고사학회 / 한국상고사학보 제109호 / 2020 / 29-53 (25 pages)
인문학>역사학 / KDC : 역사 > 아시아(아세아) / KCI : 인문학 > 역사학
초록보기
본고는 주성분분석을 통해 경주, 부산, 강릉 세지역의 이단투창고배를 분석하였고, 이 과정에서 육안으로는 쉽게 확인할 수 없는 지역별 특징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4세기 말엽에서 5세기 중엽까지는 지역별로 군집 양상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이후 5세기 말엽이 되면 세 지역의 토기는 거의 구분이 불가능할 정도로 유사도가 높아진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지역 간 유사도가 높아지는 것은 거의 동일한 수준의 ‘토기 생산체계와 기술’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본격적으로 경주지역을 중심으로 신라 중앙과 지방의 토기가 규격, 양식적으로 통일되어 가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주성분분석을 통해 각 시기마다 기본적으로 4개의 군집을 설정하였고, 이를 활용하여 기본적인 대분류가 가능하며, 일부 군집에 대해는 지역산, 또는 지역양식을 설정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하지만 유물의 형태를 기준으로 한 분류와 이를 통한 연구가 무용하다는 것은 아니며, 유물의 특성과 시기, 출토지역 등에 따라 주관에 의한 분류와 그를 활용한 연구방법이 더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음은 너무나 자명한 일이다. 결국 주성분분석은 기존의 연구방법으로는 파악할 수 없었던 분석 대상의 세부적 특징과군집을 설정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며, 통계학을 활용함으로서 그동안 고고학에서 소홀하게 보고 넘겼던 ‘객관의 확보’에 조금은 다가갈 수 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中國 南方地域 六朝時期 馬文化 考察
中國 南方地域 六朝時期 馬文化 考察
이종석(Lee, Jong Seok)
한국상고사학회 / 한국상고사학보 제109호 / 2020 / 55-84 (30 pages)
인문학>역사학 / KDC : 역사 > 아시아(아세아) / KCI : 인문학 > 역사학
초록보기
중국 商∼西漢 초기까지 최고위 계층의 고분에 말과 마차를 부장하고, 東漢·六朝時期 고분에는 馬俑을 부장하였던 것으로 보아 말은 교통·전투 용구로서 중국 고대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매우 높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東漢時期까지는 고분에 마구를 부장하는 상장습속의 사례가 잔존했으나 魏晉時期로 진입하면서 마구부장의 습속은 소멸된다. 이는 晉室의 남천으로 漢系정권이 長江下流域으로 이동하면서 순수 한계정권의 전통적 상장습속이 남조에서 보전된 반면 마구부장의 북방 초원계 습속은 완전히 배제된 것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즉 북방 초원계 민족과는 달리 漢系정권은 환경적으로 기마객과 말 사이의 유대감이 상대적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마구부장의 습속은 더욱 이질적인 문화로 작용하였을 것이다. 이와 더불어 남조시기는 빈번한 분쟁과 왕조의 교체로 인하여 말과 마구라는 사회적 자원이 극도로 희소해졌으며, 薄葬의 사회적 動因으로 인해 정치·군사·사회·문화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던 말과 마구의 부장이 여의치 않았던측면도 마구부장 습속의 소멸요인으로 감안해야 할 것이다. 고고 자료를 통해 본 六朝時期 중국 남방지역 馬文化는 시기별 마구, 말 사용 계층, 교통수단과 위세품으로서의 말 활용을 알 수 있었다. 문헌 자료에서 확인되는 말은 군사, 교통, 위세품, 헌상·교역, 사여, 등급 상징, 제사 등 다양한 방면에서 사용되었다. 말이 다양한 용도로 사용될 수 있었던 이유는 군사·교통수단으로서 최고의 위상을 차지하여, 국가는 말을확보하는 것이 중요하였고, 그에 따라 말의 사회적 효용성이 매우 커졌기 때문이다. 따라서六朝時期 중국 남방지역에서의 말은 사회적 효용성이 커짐에 따라 정치·군사·사회·문화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음을 확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