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문고 SCHOLAR 스콜라
이 자료는 국가지식 연계기관과의 협약에 따라 무료로 제공됩니다.
원문을 이용하시기 위해서는 연계기관의 정책을 따르고 있으니
궁금하신 사항은 연계기관을 통해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곧 연계기관으로 이동합니다
본문내용 바로가기
홈 > 인기논문

인문학

가장 많이 다운로드된 논문입니다.
1 이미지가 준비 중 입니다.
플라톤의『정치가』 에서 정치체제와 법률
김태경(Kim Tae-kyoung)
대한철학회 / 철학연구 / 철학연구 제96집 철학연구 제96집 / 2005 / 215~237 (23pages)
인문학>철학
초록보기
이 논문은, 지식에 의거한 최선의 통치나 정치체제 이외에, 법률을 토대로 하는 정치체제들의 경우, 그 법률은 '현실적인 법률'이 아니라 '이상적인 법률'이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밝힌다. 이때 '이상적인 법률'은 진리 자체는 아닐지라도 진리에 가장 근접한 '훌륭한 법률'이다. 이를 논증하기 위해 이 논문은『정치가』300c5-8의 해석을 토대로 이 대화편에서 논의된 '법률'과 '정치체제들'에 대한 언급들을 분석한다. 플라톤은 '현실적인 법률'에 기초한 정치체제들을 배제하려 하는데, 이는 '현실적인 법률'이 대중이나 의회에서 제정된 것들로 지식을 결여한 '훌륭하지 않은 법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정치체제들을 배제하더라도, 현실적으로 참된 지식을 지닌 왕도적 치자에 의한 통치가 실현되기 힘들다면, 차선으로 '이상적인 법률'을 토대로 한 정치체제가 긍정적으로 생각될 수 있다. '이상적 법률'은 대중이 아닌 '참된 치자'의 입법행위에 의해 제정된 것으로 완고하게 법률을 지켜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이상적 법률'은 참된 치자의 행위를 모방한 법률을 가리킨다. 만일 그런 법률의 제정이 가능하다면, 그 법률을 토대로 한 정치체제는 이상적인 왕도적 정체에 버금가는 차선의 것일 수 있다. 바로 이런 인식이 플라톤으로 하여금 말년의 대작인『법률』을 저술케 한 것 같다.
2 이미지가 준비 중 입니다.
그리스도교 사상 안에서의 인간존엄성 근거 - 토마스 아퀴나스와 마르틴 루터를 중심으로 -
김용해(Kim Yong-hae)
대한철학회 / 철학연구 / 철학연구 제96집 철학연구 제96집 / 2005 / 107~133 (27pages)
인문학>철학
초록보기
본 논문에서 필자는 그리스도교 사상과 전통은 인권과 인간존엄성의 이념을 어떻게 배태하고 있는지 연구한다. 특별히 그리스도교 사상사 안에서 인격개념을 완성한 토마스 아퀴나스와 인격개념을 개혁적 방식으로 이해하려고 한 마르틴 루터를 중심으로 살핀다. 그런데 두 사상가의 인간존엄성의 근거를 연구한다는 것은 방법론적으로 어려움이 많다. 왜냐하면 그들이 당시의 시대상황 안에서 근대의 인권 개념이나 인간존엄성에 대해 직접 언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양자의 사상을 각각 고유한 체계 안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하되, 신 인간 자연의 관계라는 전체적 맥락에서 인간을 어떻게 이해하고 파악하고 있는지를 살피고, 이를 바탕으로 인간존엄성의 근거동기를 추출해 내는 방식을 취한다. 토마스 아퀴나스에 따르면 인간은 필연적으로 영혼과 육체로 결합된 개별화된 하나의 실체, 즉 인격이며 이성적 본성을 지닌 존재이다. 인간은 이성능력 때문에 자기 자신에 대한 주체로서 자립할 뿐만 아니라 자신을 초월하여 神과 같은 신비의 세계로 개방되어 간다. 여기서 초월성은 바로 이성과 신앙, 철학과 신학이 서로 배제하지 않고 조화될 수 있는 지점이다. 따라서 토마스에게 있어서는 인간의 고유한 존엄성은 단지 이성 또는 자유와 자기규정의 능력에 있다고 하기보다 훨씬 더 신의 모상성에, 즉 인간이 말씀과 사랑에 참여하여 그리스도의 후계자로서 삼위일체적 신을 점점 닮아감으로써 이루어지는 초월적 자기변화의 가능성에 있다. 여기에 반해서 마르틴 루터는 인간은 창세기의 창조설화가 말하고 있듯이 타락한 본성, 즉 한계 지워진 이성과 죄에 물든 의지를 가지고 있는 존재이다. 타락한 본성을 지니고 있는 존재는 썩을 인간이고, 새 생명을 얻기 위한 질료에 불과하다. 인간은 신이 약속한 그리스도를 자기의 본질(형상)로 받아들임으로써 비로소 새 인간이 된다. 하느님이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해서 썩어 죽을 인간을 구원하여 자신의 자녀로 받아드리는 것을 의화義化Rechtfertigung라 한다. 인간의 구원과 구제를 위해 하느님의 은총과 주도가 필연적이다. 따라서 루터에게 있어서 인간의 존엄성은 인간 이성의 능력에 근거 지워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이로부터도 방해받을 수 없고 대체될 수 없는 의화, 즉 신의 인정認定 또는 신의 구원활동을 통한 인정에 근거 지워진다. 한편 그리스도교의 경전과 근본교리를 공유하고 있는 토마스와 루터는 커다란 맥락에서의 인간을 동일하게 이해하고 있다. 그들이 파악하고 있는 신(창조자), 인간 그리고 자연의 관계는 존재론적으로 볼 때 위계적이고 가치우열적이다. 즉 인간은 피조물로서 창조자 신과는 존재적으로 구별되며 자기 자신에 의해서가 아니라 신의 주도권에 의해서 구원되는 존재이다. 따라서 인간 존엄성과 인권은 본질적으로 인간의 신과의 떼어 놓을 수 없는 관계 안에서 근거 지워 진다. 이 관계를 그리스도교는 시대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강조했지만 철학적으로는 "인격persona" 개념으로, 신학적으로는 "신의 모상Imago Dei" 개념으로 설명하였다. 루터가 토마스와는 달리 '신과의 관계'를 인간의 본질내지 실체로 파악한 것은 성서에 입각한 새로운 그리스도교의 인간학을 기초해 낸 것으로 보인다. 루터는 전통적 스콜라 사상의 인간학이 강조한 주체 또는 실체로부터 실체사이의 관계성으로 그 강조점을 옮겨 왔다고 할 수 있다. 토마스 역시 인간존엄성의 근거를 인격의 특질에 보다는 인격의 신에 대한 개방성과 닮아감에 둔점을 주목해야 한다. 결국 루터와 토마스는 인간의 존엄성을 그리스도교의 핵심인 인간과 신의 소통적 관계에서 공통적으로 찾고 있다. 인간과 신의 관계를 강한 실체론과 약한 관계론으로 정리한 토마스는 인격의 자기 규정성 자립성을 관계실행의 전제로 보았고, 이러한 인격의 자립성을 통해서 신과의 관계로 나아갈 것이라는 낙관성을 담고 있는 반면, 루터는 인간성을 비관적으로 보았기 때문에 신과의 관계가 구원의 가능성을 여는 핵심이 될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강한 관계론과 약한 실체론을 전개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생각된다. 그리스도교의 경전이 가르치는 인간의 신모상성은 인간이 신에 대해 전인적으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도록 인간의 실존적 조건으로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에게도 이 의사소통이 불의하게 침해되거나 왜곡되어서는 안 되는 권리의 성격뿐만 아니라, 신의 부르심(의지)에 따라 자유의지와 이성, 실천을 통해 대응하고, 자신의 책임 안에서 자신을 발전시켜야 할 자각적 의무의 성격도 띠고 있다. 인간은 신에게 마땅히 져야할 신성한 의무를 통해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인권뿐만 아니라 인간의 의무 또한 강조하는 것이 그리스도교의 인간존엄성 이념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3 이미지가 준비 중 입니다.
마테오 리치의 예수회적 유교 해석에 대한 일고찰 :『천주실의』를 중심으로
정태식(Jung Tai-sik)
대한철학회 / 철학연구 / 철학연구 제95집 철학연구 제95집 / 2005 / 371~393 (23pages)
인문학>철학
초록보기
종교의 현실적인 실천에 따른 종교의 역사성은 사고논리와 행위논리로 구성되는 종교의 의미체계에 대한 새로운 해석 가능성을 허용하고 제공해 준다. 본 논문은 마테오 리치의 천주실의 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유교에 대한 예수회적 재해석에 대하여 논함을 목적으로 한다. 주로 자연법 내지는 자연신학의 논리를 가지고 선진유학의 경전을 참고로 하여 그리스도교 만의 독특한 사고논리의 주제를 논한 리치는 불교와 도교는 물론 성리학의 의미체계에 대한 도전을 주저하지 않았다. 따라서 본 논문은 지금까지의 천주실의 에 대한 평가를 재검토하고 리치가 예수회적 유교해석을 위해 계시나 계시신앙에 대한 언급대신에 인간의 자연이성과 철학적 사고능력에 호소하는 방식을 택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그 다음으로는 예수회 선교사로서의 리치가 기존의 유교전통이 지지하는 사고논리와 특별히 구별되는 주제들, 예컨대 천주의 존재에 대한 증명, 내세의 존재와 인간 영혼의 불멸에 대한 증명,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사고논리를 바탕으로 하여 실천되어져야 할 행위논리, 특히 덕성의 함양과 영생의 길 등에 대하여 논하고 있다. 논문의 주요 논지는 리치의『천주실의』가 보유(補儒)를 위한 작업일 수도 있고 선교전략의 일환일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그 당시의 지배적 정치 사회적 이데올로기였으며 정학이었던 성리학과 구별되는 새로운 방식의 유교 해석이었다는 것이다.
4 이미지가 준비 중 입니다.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 - 국가의 중립성을 중심으로 -
김영기(Kim Young-kee)
대한철학회 / 철학연구 / 철학연구 제95집 철학연구 제95집 / 2005 / 21~50 (30pages)
인문학>철학
초록보기
이 글은 자유주의자들의 중립성 주장에 대한 공동체주의자들의 비판에 대해 살펴보면서 중립성에 대해 우리가 취할 올바른 입장을 모색해보기 위한 것이다. 오늘날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 사이의 논쟁에서 가장 분명한 의견의 차이를 보이는 논쟁 가운데 하나는 '국가의 중립성'(neutrality)을 둘러싼 논쟁이다. '국가의 중립성'이란 사회구성원들이 서로 다른 다양한 종교적, 도덕적, 철학적 신념체계를 지니고 살아가는 현대 다원주의 사회에서 국가는 어떤 특정한 가치관을 편파적으로 지원ㆍ장려하여서는 안 되며, 국가는 그 여러 다양한 신념체계들에 대해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자유주의자들은 국가가 중립적일 때에만, 국민들 각자의 자율성이 존중될수 있다고 믿는다. 반면, 공동체주의자들은 오늘날 가정이 해체되고 전통적인 가치들이 무너지며, 각 공동체의 유대가 사라지게 된 것은, 바로 자유주의자들의 자아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이 국가의 중립성에 대한 믿음 때문에 국가가 시민들의 품성 교육에 관심을 쏟지 못하고, 사회에 적극적 관심을 갖는 참여적 시민들의 활동을 가로막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국가 중립성을 둘러싼 자유주의자들과 공동체주의자들의 주장에는 각각 우리가 귀기울여야만 할 점들이 있다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국가 중립성에 대해 우리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이 글은 자유주의자들의 중립성 옹호 논리들과 그에 대한 비판들에 대해 살펴본 다음, 중립성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옹호 방식인 정치적 자유주의와 이에 대한 공동체주의자들의 비판을 살펴보고, 마지막으로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입장에 대해 서술한다. 이 글은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입장은 위의 두 견해의 타당한 주장을 수렴하는 일종의 '공동체주의적 자유주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 하지만, 기존의 공동체주의의 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은 대체로 오해에 기반한 것으로서, 롤즈의 '정치적 자유주의'는 대체로 옹호될 수 있다고 본다. 그렇지만 문화와 사회 및 국가의 관계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는 '정치적 자유주의'에서는 미처 다루어지지 않은 문제로서 우리가 앞으로 다루어나가야 할 과제라고 확인한다.
5 이미지가 준비 중 입니다.
새로운 매체문화에서 주체, 의미 그리고 현실의 문제들 - 정보해석학적 논의를 중심으로 -
홍경자(Hong Keung-ja)
대한철학회 / 철학연구 / 철학연구 제96집 철학연구 제96집 / 2005 / 455~476 (22pages)
인문학>철학
초록보기
본 논문은 기술매체가 지배하는 매체문화에서도 문화의 해석학적 접근을 가능하게 했던 해석학의 기본개념들, 즉 '주체', '의미', '현실' 등의 차원을 새롭게 재규정하여 사이버공간과 같은 전자매체에서 더 이상 해석학의 역할을 기대할 수 없다는 일부의 부정적, 비판적 시각을 반성적으로 고찰함으로써 매체문화에서 해석학이 지니는 간과할 수 없는 의의에 대해 해명하고자 한다. 특히 정보처리와 통신의 결합인 정보통신 혹은 뉴 테크놀로지로 인한 새로운 매체문화의 정립과 이에 따르는 해석학의 과제들은 정보해석학적 관점을 통해 논의된다. 맥루한은 메시지를 수용하는 주체의 감각기관에 초점을 두면서 그 주체를 해석하는 존재가 아니라 감각적 존재로 설정하고 있다. 이러한 맥루한적 관점과 맥락을 같이 하는 급진적 매체론자들은 근대적 의미의 해석학적 주체에 귀속되는 이해와 비판능력이 더 이상 매체문화의 수용자에게서는 기대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전통적 해석학의 의의를 배제하지 않는 정보해석학이 문제 삼고자 하는 것은 주체가 단지 감각적 존재만도 아니며, 그렇다고 볼츠의 표현대로 단순히 미디어 복합체 내에서의 한 회로판에 불과한 존재만도 아니다. 왜냐하면 매체가 어떠한 양식이든 매체의 속성은 인간과 세계,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 개입하는 매개물에 지나지 않을 뿐, 결코 실체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 논문은 그 주체가 역시 인간이라는 점, 다시 말해 인간은 항상 해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 구조주의를 비판하게 된다. 결국 주체에 의한 의미구성과 의미해석의 계기를 결코 부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정보해석학은 정보의 이해와 해석의 실마리를 찾는다. 바로 그런 맥락에서 주체성의 문제를 단순한 고전적 주제로만 규정하지 않고, 주체가 가상 현실이 지배하는 정보사회에서도 여전히 의미구성의 담지자로서 기능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결국 매체문화에서도 해석주체에 의해 끊임없이 수행되는 의미론적 쇄신의 가능한 조건들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새로운 해석의 동기가 요구된다. 따라서 본 논문은 가상현실에서 이루어지는 매체텍스트의 이해와 해석을 급진적 매체론자들이 끝내 간과해 버린 주체의 해석행위를 회복시킴과 동시에 주체에 의한 텍스트의 의미구성을 무엇보다도 우선시하는 정보해석학적 관점을 통해 기술매체에 의해 생산된 다양한 텍스트들의 실천적 역할을 새롭게 재확인하는 데서 그 실마리를 찾고자 한다.
6 이미지가 준비 중 입니다.
비른바허의 생태윤리와 책임
권의섭(Kwon Ei-sub)
대한철학회 / 철학연구 / 철학연구 제96집 철학연구 제96집 / 2005 / 1~27 (27pages)
인문학>철학
초록보기
오늘날 기술적 힘의 증대는 더 이상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의무나 목적만을 지향할 것이 아니라 행위 결과를 예상하고 거기에 대한 구체적 책임윤리를 요구한다. 그것은 새로운 권력으로 등장한 기술적 행위로 인해 우리의 생존 자체가 파괴될 수 있다는 절박함에서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연과 미래세대에 대한 비른바허의 책임윤리를 책임의 기본관계인, '책임의 주체', '책임의 대상', '책임의 근거'라는 요소로 나누어 살펴보는 것은 의미 있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비른바허는 어떤 문제보다 구체적 실천을 요하는 환경문제와 관련해서는 그 윤리적 근거를 누구나 수긍할수 있는 구체적 사실에서 합리적으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도덕 판단자의 행복과 쾌락이라는 주관적 조건에 기초해 환경윤리의 원칙들을 이끌어내고, 구체적 실천을 도모하는 것이 모든 사람들이 수용할 수 없는 신학적, 형이상학적 신념에 기초한 정당화 방식보다 합리적이라고 비른바허는 보고 있다. 비른바허는 그의 공리주의적 신념에 기초해 감각중심적 입장을 지지하며, 이에 기초해 이성적 능력만을 강조하는 인간중심주의뿐만 아니라 자연주의적 정당화 방식까지도 비판하고 있다.
7 이미지가 준비 중 입니다.
返本還源과 禪學의 玄關 : 先驗現象學的 還源과의 類比的 解明
신오현(Shin Oh-hyun)
대한철학회 / 철학연구 / 철학연구 제95집 철학연구 제95집 / 2005 / 217~249 (33pages)
인문학>철학
초록보기
우리는 선불학의 철학적 이해를 목표하는 일련의 연구 작업을 시도하고 있는바, 연전에 그 일부를 두 편의 논문으로 발표한바 있는데, 여기 발표하는 이 논문도 그 일부를 이루는 것이며, 앞으로도 계속 지면이 허락하는 대로 발표할 계획임을 밝혀둔다.『禪·佛學의 哲學的 본성: 先驗-現象學的解明』(『哲學硏究』, 제86집)에서는 선·불학의 본성이 철학적임을 해명했고,『禪·佛學과 21세기철학』(동, 제92집)에서는 21세기철학에서 선·불학이 차지하는 철학사적 의미와 위상을 밝힌바 있는데, 이 논문에서는 선불학의 방법론을 다루고자 한다. 즉 선불학의 입문서로 인구에 회자되어온『十牛圖』의 사상을 참고하고, 특히 12세기 송대의 곽암사원의 저작으로 알려진『十牛圖』중 제9도 <返本還源>을 실마리로 삼아, 이를 후설-핑크의『선험적 방법이론의 이념』과 類比的으로 해명함으로써, 선학의 <반본환원>은 현상학의 <선험환원>과 함께 <禪學>이 禪學일 수 있기 위해, 또는 <哲學>에 입문하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할 필수관문임을 명증적으로 證示하려는 시도이다. "자기의 本心인 1) 소를 찾아(尋牛), 2) 발자취를 발견하고(見跡), 3) 소를 발견하고(見牛), 4) 소를 잡아(得牛), 5) 소를 길들여(牧牛), 6) 소를 타고 無爲의 깨달음의 세계인 우리 집에 돌아와서(騎牛歸家), 7) 이젠 소가 달아날 걱정이 없음으로 소같은 것은 다 잊어버리고 안심하여 (忘牛存人), 8) 다시 사람도 소도 本來空인 것을 깨달아(人牛俱忘), 9) 꽃은 붉고 버들은 푸른 그대로의 세계를 如實히 보고(返本還源), 10) 중생을 건지기 위해 거리로 나간다(立廛垂手)"는 10단계 가운데 가장 결정적인 階梯가 바로 <반본환원>이며, 선학의 방법론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이 반본환원의 禪學的 理念을 선험현상학의 <선험환원>과 대비적으로 해명하려는 것이 본 논문의 주제이다. 그리고 이 문제를 해명함에 있어서 우리는 同安察 禪師의「十玄談」의 방법개념도 함께 참고하였다. 이 논의에서 우리는 먼저 문제제기를 위하여 i) <형이상학적 물음(無問)과 형이상학 입문(無門)>을 다루고, 반본환원의 준비단계로 ii) <형이상학 關門으로서 無門關>을 거론함에 있어서 무문혜개의 <무문관>, 趙州의 <無字話頭>와 하이데거의 <무의 물음>을 비교ㆍ분석한 다음, iii) <무문관을 통한 반본환원>을 선험환원에 대비적으로 해명한 후, 우리의 iv) <결론>을 내렸다.
8 이미지가 준비 중 입니다.
메타 윤리학적 상대주의에 대한 진화론적 윤리학의 대응과 보완
김성한(Kim Sung-han)
대한철학회 / 철학연구 / 철학연구 제96집 철학연구 제96집 / 2005 / 53~76 (24pages)
인문학>철학
초록보기
에드워드 윌슨(Edward Wilson)이『사회생물학: 새로운 종합』을 출간한 이래 지금까지 진화론이 윤리에 시사하는 바에 대한 연구는 꾸준히 있어왔다. 마이클 루즈(Michael Ruse)는 관련 연구의 대표자 중의 한 사람인데, 그는 진화론이 윤리학에 시사하는 바를 전반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루즈는 이중에서 메타 윤리학적 상대주의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는데, 그는 언뜻 보았을 때에는 도덕이 상대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그러한 모습은 일차적인 도덕 명법이 변형되어 나타난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을 통해 상대주의를 극복하려 한다. 하지만 루즈의 대응은 일차적인 도덕 명법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가 분명치 않으며, 일차적인 도덕 명법이 여럿 있을수 있는 등의 문제로 인해 상대주의를 부정하는 논변이 되기 어렵다. 하지만 오늘날의 메타 윤리학적 상대주의의 대표자 중의 일인인 길버트 하만(Gilbert Harman)의 논의 또한 상대주의를 옹호하는 논변으로 충분치 못한 듯하다. 그 이유는 하만의 상대주의 옹호 논의의 핵심인 계약론적 관점과 관습주의적 관점이 상대주의를 옹호하는 논변으로 충분치 못해 보이기 때문이다. 싱어의 윤리 발달사적인 관점은 이들 두 사람의 논의를 어느 정도 보완해 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생물학적 이타성이 이성의 도움을 받아 관습 도덕과 보편주의 윤리로 발달해 나간다고 주장하는데, 이러한 기본적인 입장을 바탕으로 더욱 다양한 생물학적 특성들을 도덕의 기원으로 삼고, 관습 도덕의 단계에서 여러 문화와 집단 등의 형이상학적 배경이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해 볼 경우,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이 이들을 다양한 형태의 보편주의 윤리로 체계화하였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경우 우리는 기존의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메타 윤리학적 상대주의를 옹호해 볼 수 있을 것이다.
9 이미지가 준비 중 입니다.
토마스 아퀴나스 자유결단 이론의 의미와 한계
김율(Kim Yul)
대한철학회 / 철학연구 / 철학연구 제96집 철학연구 제96집 / 2005 / 135~162 (28pages)
인문학>철학
초록보기
1920년대 로땡은 의지의 자유에 대한 토마스의 이론이 주지주의적 심리결정론의 입장에서 주의주의적 입장으로 변화했다는 소위 '변화 테제'를 내놓음으로써 그 이후의 토마스 연구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본 논문은 토마스의 초기 자유이론, 즉 자유결단 이론을 면밀히 탐구함으로써, 그것이 주지주의적 특징을 지니기는 하지만 결코 심리결정론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을 밝힌다. 토마스 자유결단 이론의 주지주의적 특징은 자유결단이 지성의 반성적 판단으로부터 증명된다는 점에 있다. 토마스의 초기 자유이론에는 이러한 분명한 주지주의적 특징과 의지의 자율성 혹은 자기결정에 대한 원칙적 인정이 동시에 나타난다. 이 두 측면은 서로에 대한 적절한 설명의 근거가 될 수 있는 이론적 친화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서로 모순적 관계에 있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양립 가능한 이 두 측면 이외에, 우리는 어떠한 심리결정론적 입장도 토마스의 초기 저작에서 읽어낼 수 없다. 따라서 토마스 초기 자유이론의 한계는, 주지주의적 문제 지평 때문에 지성에 대한 의지의 자율성과 자기결정이 원칙적으로 인정되기만 했을 뿐 본격적, 체계적으로 주제화되지 못했다는 사실에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토마스의 초기 자유이론을 규정하는 자유결단이라는 개념 자체의 역사적 한계였다고 할 수 있다.
10 이미지가 준비 중 입니다.
인간 존엄성 테제에 대한 칸트의 증명과 문제점
문성학(Moon Sunghak)
대한철학회 / 철학연구 / 철학연구 제96집 철학연구 제96집 / 2005 / 239~263 (25pages)
인문학>철학
초록보기
필자는 이 논문에서 인간을 목적으로 대하라는 칸트의 말이 의미하는 바가 정확하게 무엇인지를 밝힌 뒤에, 인간은 자연의 궁극목적으로서 존 엄한 존재이며 따라서 무한한 가치를 지난다는 칸트의 주장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그리고 결론부에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중세의 기독교적 정당화와 칸트에 의해 대표되는 근세의 이성적 정당화가 부적합한 것으로 판명된 뒤에,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새로운 정당화 방식은 인간의 자연 종속성에 대한 인식에서부터 출발해야 함을 암시하고자 한다.
11 이미지가 준비 중 입니다.
기와로 본 百濟 熊津期의 泗비經營
조원창(Cho Weon-Chang)
한국고대학회 / 선사와 고대 / 선사와 고대 제23호 선사와 고대 제23호 / 2005 / 211~228 (18pages)
인문학>역사학
초록보기
King Seong of Baekje transferred the capital from Wungjin to Sabi in 538 and named the country Southern Buyeo. As it is today, it was not easy to move a capital of a country. In addition to dealing with the political interests, they must have got the people to perform engineering and construction work, and made public notices to the people because they had to build the palace, walls, and government offices. Judging from the archeological evidences that have been excavated and researched so far, that is the roof tiles(including Wadang), we can conclude that they started to manage Sabi, with Wungjin as their capital, some time between the late 5th century and the early 6th century. We can infer this from the Northern Wi(or Goguryeo) style of roof tiles excavated from the remains of a ruined temple of Buyeo in Yongjeongri. However, we can presume that they practically moved their capital in the early period of King Seong, judging from the Daetongmyeong Ingack tile and the Dongbeom Wadang of Daetong Temple Remains which were found in the majority of relics, such as Buso mountain fortress, the assumed palace site in Kwanbukri, the remains of Dongnamri, and the previous Cheonwang temple site in Guari. And the location might be the southern hilly districts including the present Buso mountain fortress, and the Guari and Dongnamri disctirts in the west. Through more advanced research into the earthen wares and flat roof tiles, we need to make clearer about the management of Sabi in the Wungjin period.
12 이미지가 준비 중 입니다.
웰빙에서 윤리로 - 잘 있음과 있음 넘어서기 -
문성원(Moon Sung-won)
대한철학회 / 철학연구 / 철학연구 제95집 철학연구 제95집 / 2005 / 93~110 (18pages)
인문학>철학
초록보기
본 논문은 '웰빙'(well-being)을 '잘-있음'으로 이해하는 가운데, 웰빙이라는 발상의 특성과 한계를 짚어보고자 한다. '잘-있음'이 '잘못-있음'과 대비되는 한에서 웰빙은 일종의 어긋남에 대한 바로잡음을 함축하는 것이고, 그런 점에서 웰빙은 소외의 극복을 내세우는 문제틀과 유사한 구조를 갖는다. 웰빙의 자연친화적인 문제의식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 가능하다. 철학사에서는 이 같은 구상의 선례를 장 자크 루소의 '잘-있음'(bien-être)에서 찾아볼 수 있다. 루소에게서 '잘-있음'은 우선 자연적 안락을 뜻하는데, 문명 세계에서는 이 잘-있음이 부와 연결되는 까닭에 불평등의 문제에 부딪힌다. 루소는 이러한 잘-있음의 모순을 '소유적 사랑'(amour propre)과 '자기 사랑'(amour de soi)의 구분을 통해 해결하고자 한다. 소유적 사랑은 자연스런 자기 사랑에 대비되는 인위적 관계의 산물이다. 그것은 비교와 경쟁을 부추키며, 자기 사랑에 따른 잘-있음을 넘어서서 탐욕과 억압을 낳는다. 그러므로 루소에 따르면, 우리에게는 소유적 사랑이 아닌 자기 사랑에 바탕을 둔 잘-있음의 회복이 필요하다. 이것이 우리가 루소에게서 따올수 있는 참된 웰빙의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잘-있음은 현재와 같이 소유적 사랑이 지배적인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실현하기 어렵다. 오늘의 상황에서는 오히려 '웰빙'이 새로운 소비 조장의 구실이나 사회적 구별의 징표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상상력을 통해 자연과의 교감을 회복함으로써 잘-있음을 성취할 수 있다는 견해도 있지만, 이것 또한 자칫 도피적인 몽상에 이르기 쉽다.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우리는 '잘-있음'의 문제틀 자체를 의문시하게 된다. '잘-있음'을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목표로 삼는 것이 과연 정당한 일일까? 레비나스는 우리가 있음(esse)을 고집하여 이해관계(intér-esse-ment)에 얽매이는 사태를 넘어서서, 있음과 다른 것, 곧 이해관계를 벗어남(dés-intéressement)으로서의 윤리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본 논문은 레비나스의 견지에 기대어, 잘-있음으로서의 웰빙이 지니는 한계를 성찰하고 있다.
13 이미지가 준비 중 입니다.
검은 매체, 하얀 매체 혹은 회색 매체 - 아도르노 매체비판의 재평가 -
이종하(Lee Jong-ha)
대한철학회 / 철학연구 / 철학연구 제95집 철학연구 제95집 / 2005 / 287~306 (20pages)
인문학>철학
초록보기
이 글의 목적은 지금까지 일반적으로 이해되어진 아도르노의 부정적 매체비판의 일면성을 지적하는 데 있다. 일반적 이해와 달리 아도르노는 매체의 이데올로기적 기능만을 주장하지 않았다. 아도르노는 1940년 중반 이후 매체의 계몽적, 긍정적, 중립적 측면들도 분명히 지적한다. 나는 아도르노의 부정적 매체비판, 매체에 대한 긍정적 언급, 매체중립성에 대한 주장을 각각 검은 매체, 하얀 매체, 회색 매체로 범주화하면서 텍스트적 사실에 입각해 재평가할 것이다. 이를 통해 아도르노의 부정적 매체비판에 대한 비판이 제한적 타당성만을 가진다는 것이 확인되며, 1960년대 이후 아도르노의 매체에 대한 평가가 긍정적으로 선회했다는 주장도 옳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영화의 예술성, 텔레비전을 통한 계몽의 가능성에 대한 아도르노의 언급이 자신의 기존 매체철학에 대한 단절을 의미하지 않는다.
14 생성문법연구 제15권 제4호
On the Dative Intervention Effect on Raising to Subject
Sun-Woong Kim
한국생성문법학회 / 생성문법연구 / 생성문법연구 제15권 제4호 생성문법연구 제15권 제4호 / 2005 / 649~660 (12pages)
인문학>언어학
초록보기
This paper is an attempt to explain a seemingly complex cross linguistic effect of dative intervention with special reference to raising. Languages vary in allowing raising across a dative element in the same context. English and Spanish occupies the extremes in terms of the dative intervention effect on raising. English allows raising over a full NP, a pronoun, and an A'-trace, while Spanish does not allow such a raising at all. Some previous approaches turn out to be operative only on some set of data but to fail on the other. A solution is proposed in terms of the division of labor between Match and Agree. To be concrete, raising over a dative experiencer is allowed if the movement is done solely under Match; the same raising is not allowed if the movement is done under Match and Agree. Without Agree, there is no Dative Intervention Effect guaranteed by definition. With this division, various cross-linguistic data are explained in a simpler way. In addition, the suggestion gets support from the object honorification phenomena in Japanese and in Korean.
15 이미지가 준비 중 입니다.
동무 이제마의 윤리관
최대우
대한철학회 / 철학연구 / 철학연구 제95집 철학연구 제95집 / 2005 / 395~415 (21pages)
인문학>철학
초록보기
이제마는 자신의 의학 이론을 종래 한의학자와 마찬가지로 유학 사상에 근거를 두고 전개하지만 의학은 물론 유학 이론까지도 새로운 시각에서 해석한다. 본고의 주된 목적은 동무의 윤리관을 전통적인 유교적 윤리 이론들과 대비적으로 검토함으로써 그의 윤리관의 차별성과 중요성을 밝히는 데 있다. 대비적 검토는 관점의 차이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주자와 다산의 윤리관을 비교하는 방법을 택했다. 주자는 천리를 중심으로 윤리관을 정립했고, 다산은 인간의 자율성을 기초로 윤리관을 정립했지만 그 자율성은 상제천과 직결되어 있다. 그러나 동무는 몸에 윤리적 행위 능력이 주어져 있다고 해석함으로써 몸 중심의 윤리관을 전개했다. 동무의 이러한 해석은 지금까지 윤리적 행위의 중심에서 배제되었던 몸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를 제공한 것이다. 특히 동무의 주장이 자신의 임상 지식에 근거한 주장이라는 점에서 볼 때 그의 윤리관은 인간을 유학과 의학 또는 과학적 지식을 접목시켜 종합적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 할 수 있을 것이다.
16 이미지가 준비 중 입니다.
[특집논문]생명공학과 몸의 윤리
강성영
한국신학연구소 / 신학사상 / 신학사상 2004년 봄호(제124집) 신학사상 2004년 봄호(제124집) / 2004 / 29~54 (26pages)
인문학>기독교신학
초록보기
Human beings arc facing 'The Era of Post-Genome' since the decode of Human Genome IS declared on June 26. 2000. The rapid development of biotechnology brings the hope to human beings about the prevention and cure of illness. and the preparation of food and resource. So there is no problem to call 21 st century as 'The Epoch of Biotechnology'. But materialistic reductionism and mechanistic determinism of modem science shadows the Human Genetic Engineering. Biological reductionism and DNA determinism make lots of ethical problems. Science can not be given up for the welfare of human society and it must be the opportunity lor the improvement of human society. But in the other hand. it is true that science includes the danger that will bring unexpected disaster to the human beings and the nature. This study purposes the advantage and disadvantage of biotechnology. Then it will criticize the eugenics motivation in the view of sociobiology after criticizing the view of world. life, and human of biology based on metaphysics. Based on this ethical evaluation. this study will suggest christian ethical alternative and task with considering the meaning of 'The Whole Body' in the Era of Post-Genome.
17 이미지가 준비 중 입니다.
키에르케고르의 '말할 수 있음 또는 없음'에 관한 고찰
임규정(Lim Kyu-jung)
대한철학회 / 철학연구 / 철학연구 제96집 철학연구 제96집 / 2005 / 391~417 (27pages)
인문학>철학
초록보기
이 연구의 의도는 '말할 수 있음 또는 없음'에 관한 키에르케고르의 사 상을 조명하는 것이다. 스스로 '말할 수 있음 또는 없음'은 자기에 대한 키에르케고르의 정의에 기초해 있는 자기의 존재론적 구조와 성격에 달려있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이러한 그의 개념을 이해하려면 자기에 대한 그의 정의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본고는 삶의 세 형식, 즉 돈 환의 삶 혹은 요하네스의 심미적 삶, 빌헬름 판사의 윤리적 삶, 아브라함의 종교적 삶을 차례로 살펴봄으로써 이러한 점을 밝혀보고자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논자는 본고에서 키에르케고르의 실존 사상에 함축되어 있는 그의 언어철학을 고찰하고자 한다.
18 이미지가 준비 중 입니다.
형신(形神) : 육체와 정신의 관계에 대한 중국철학의 담론 - 발생론과 기능론의 문맥을 중심으로 -
김성환
대한철학회 / 철학연구 / 철학연구 제96집 철학연구 제96집 / 2005 / 77~106 (30pages)
인문학>철학
초록보기
이 글은 중국철학의 형신론(形神論)에 대한 연구이다. '형신'은 육체와 정신을 지칭하는 용어로, 그 개념 안에 이미 형체와 정신을 일원적으로 파악하는 의미를 함축한다. 형체와 정신의 일원론은 중국철학이 태동하던 춘추전국시기에 본격적으로 형성되었다. 특히 전국시기의 사상가들이 기화론(氣化論)의 문맥에서 형신일원론을 정립했고, 이는 한대(漢代)를 거치며 중국적 인간 존재론의 주류 이념으로 자리를 굳혔다. 그런데 형신의 선후관계에 대한 논의는 형신론이 형성되던 초기부터 상당히 복잡한 양상을 지니고 전개되었다. 우선 무형적 정신(정기)에서 형체가 생겨난다는 신선형후(神先形後)의 형신관계론이 제기되었다. 이는 주로 자연철학적인 발생론의 문맥에서 언급되었다. 이와 달리 형체가 정신에 앞서 존재한다는 형선신후(形先神後)의 형신관계론도 대두되었다. 이는 주로 사회철학적인 기능론의 문맥에서 언급되었다. 그런데 이 두 이론이 반드시 대립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두 이론은 서로 다른 층위에서 펼쳐진 형신관계의 담론으로, 서로 충돌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상호보완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한편 형신 문제에 대한 다른 차원의 논의로, 남북조시기의 '신멸불멸 논쟁'이 있다. 이는 불교와 중국 전통철학 간의 논쟁으로, 사후에도 정신(영혼)이 존재하는가를 문제 삼는다. 중국 초기불교는 사후에 불멸하는 '영혼'의 존재를 전제로 윤회와 업보를 정당화했는데, 이는 중국 전통철학 진영의 비판을 불러왔다. 이 논쟁은 범진이『신멸론』을 발표하면서 정점에 이른다. 그는 '형신상즉(形神相卽)'ㆍ'형질신용(形質神用)' 등의 명제를 제시하고, 중국철학사에서 가장 특징적인 형신일원론을 정립한다. 오히려 역설적인 것은, '정신의 불멸'을 주장한 당시 불교 진영의 교설이 실은 불교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되었다는데 있다. 결국 불교의 '무아' 사상에 대한 이해가 심화되면서 이 논쟁은 자연스럽게 막을 내리게 된다.
19 이미지가 준비 중 입니다.
덕 윤리학의 토대와 포괄적 관심 - 아리스토텔레스에 있어서 -
박성호(Park Seong-ho)
대한철학회 / 철학연구 / 철학연구 제95집 철학연구 제95집 / 2005 / 111~135 (25pages)
인문학>철학
초록보기
근대의 결과주의와 계약주의 그리고 의무주의의 관점에서 덕 윤리학을 보면 윤리적 근본문제와 그것의 해결 방법에서 구별된다. 근대의 관점에서 보면 덕 윤리학 근본문제는 도덕적 권리와 의무의 원리가 아니라 인생의 목적이며, 문제에 대한 접근법은 당위의 내용을 밝히지 않고 행위의 방법을 설명할 뿐이다. 그래서 어떤 비판가들은 덕 윤리학이 모든 사람에게 책임을 부과하는 도덕법칙 개념과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고전적인 아리스토텔레스의 덕 이론을 '도덕과 무관한' 유형이라 분류한다. 그들은 덕이란 인간의 탁월성이라는 이상을 가지고 어떤 행위들은 좋은 것이라서 선택하고 다른 행위들은 나쁜 것이라서 회피하려는 성격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에서 덕이 행복(유다이모니아)의 수단이라고 평가될 경우에 어떻게 그 행위 자체가 선이 될 수 있는지, 비판가들은 그 덕의 도덕성과 토대에 관해 의문을 제기한다. 덕 윤리학을 도덕과 무관한 것과 도덕과 관계있는 것으로 구분하는 기준은 아리스토텔레스적인 덕 윤리학의 덕 개념에 관한 제한적인 해석에 의존하고 있다. 그런 비판가들은 덕의 소유와 덕 있는 행위를 위해 아리스토텔레스가 강조하고 있는 실천의 필요성 또는 덕의 실천적 의미를 간과 하고 있는 듯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자연적 본성과 이성에 따라 행복이 성취된 바람직한 삶을 '덕 있는 삶'이라고 희구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덕은 자연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문화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덕 윤리학에서는 포괄적 관심이 나타난다. 본고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윤리적 토대로 삼는 행복이라는 삶의 목적과 덕의 이성적 선택, 그리고 개인의 윤리적 덕과 공동체를 위해 바람직한 정치체제(폴리테이아)가 연결되는 덕 윤리학의 포괄적 관심에 비추어, 아리스토텔레스의 덕 윤리학 또는 그의 덕 개념에 대한 비판론이 간과한 의미를 찾아볼 것이다. 윤리학적 행복에 해당하는 정치학적 개념은 폴리테이아이다. 그가 모색했던 폴리테이아는 인간의 능력으로 성취할만한 바람직한 정치 체제이고 공동선이 무엇인지 숙고하는 다수에 의한 올바른 지배 형태이다.
20 이미지가 준비 중 입니다.
위험사회의 성찰적 책임윤리 - 막스 베버의 책임윤리와 울리히 벡의 성찰적 근대화 개념을 중심으로 -
박미애(Pak Mi-ae)
대한철학회 / 철학연구 / 철학연구 제96집 철학연구 제96집 / 2005 / 265~289 (25pages)
인문학>철학
초록보기
현대는 사실과 가치, 기술과 윤리, 과학과 인문학 등 기존의 익숙한 구분의 붕괴와 새로운 융합을 특징으로 한다. 책임윤리 역시 예외는 아니다. 인간적 책임의 대상은 이제 기존의 익숙한 대상, 즉 자기 자신과 이웃만이 아니라 자연과 타 생물 종의 생명, 아직 태어나지 않는 미래 세대까지를 포괄한다. 막스 베버는 심정윤리와 책임윤리를 구별하고, 그 근거 위에서 과학기술의 가치중립성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구별과 주장은 인간복제의 가능성에 직면하여 심각한 도전에 직면한다. 더 이상 우리는 우리의 행위 결과에 대해서만 책임을 질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미래 세대에 대한 책임 문제에 직면하여 베버 식의 구별은 더 이상 타당성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종교적 신념으로 부터 합리성의 분리, 가치로부터 사실의 분리와 함께 탄생된 책임윤리가 인간 상호간의 관계를 합리적으로 규정할 수 있다면, 그것은 과학 기술의 합리성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막스 베버가 서양 합리주의의 토대로 설정한 '합리적 생활방식'은 현대 위험사회에서도 여전히 가능한가? 이러한 물음에 대한 대답을 우리는 위험사회의 사회학적 분석으로 유명한 울리히 벡에게서 발견할수 있다. 벡에게 중요한 것은 '위험'이라는 현상의 객관적 실재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양산되고 있는 위험을 인식하고 해석하는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벡은 '성찰'과 '근대화'라는 두 이질적 요소의 결합을 시도한다.